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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 계묘년

청량산(2023. 10. 15)

산행지 : 청량산(淸凉山, 고도 870m)

(위치)   :  경북 봉화군 명호면과 재산면, 안동시 도산면과 예안면 일대   

산행일 : 2023. 10. 15

행사단체 : 까치산악회

산행거리 : 4.83km/트랭글 측정거리

산행시간 : 4시간 22(시작 10:51, 종료 15:13) - 휴식시간 1시간 28

실 산행시간 : 2시간 54

평균속도 : 1.5km

날 씨 맑 음

주요구간별 소요시간 :  06:33분 구리시 출발

                                     10:36 주차장(입석) 도착

 

10:51분 산행시작

11:16분 경일봉, 응진전 갈림길

11:23분 청량사(1.27km, 인증 7)

11:34분 자소봉 갈림길

12:03분 뒷실고개(2.05km, 자소봉 갈림길)

12:14분 이정표(자소봉 : 0.9km, 1코스 : 11.8km/하늘다리 : 0.1km, 1코스 안내소 : 3.1km)

 

12:16분 하늘다리(2.42km)

12:24~ 13:07분 점심식사(43)

13:16분 장인봉 갈림길

13:29분 청량산 장인봉(2.96km, 인증 : 15)

13:43분 장인봉 갈림길 회귀

14:23분 두들 갈림길(4.17km, 시멘트 포장길 시작, 휴식 : 8)

14:45분 청량폭포 입구 주차장

 

  청량산의 특징 :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어 예로부터 작은 금강산이라 불리어진 산으로

이번에 산행한 청량산은 고대에는 수산(水山)으로 불리어지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청량산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조선시대 풍기군수 주세붕이 청량산을 유람하며 명명한 12봉우리(6.6)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청량산에는 현재 청량사 유리보전과 웅진전이 남아 있으며 퇴계 이황이 공부한 장소에 후학들이 세운 청량정사와

통일신라시대 서예가 김생이 글씨공부를 한 곳으로 알려진 김생굴,

대문장가 최치원이 수도한 풍혈대,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쌓았다는 산성이 있다.

 

  청량산은 1982년 경상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청량산 하늘다리는 해발 800m 지점의 자란봉과 선학봉을 연결한 길이 90m, 1.2m의 현수교량으로

국내에서 가장 길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택리지>저자 이중환은 이 청량산을 다음과같이 표현했다 한다.

'밖에서 보면 다만 흙묏부리 두어송이 뿐이나 강 건너 골 안에 들어가면 사면에 석벽이 둘러 있고,

모두가 만 길이나 높으며 험하고 기이한 것이 이루 형용할 수 없다.'

 

  경북 봉화군의 청량산(870m)은 낙타 혹 같은 봉이 연립, 그 기이한 경관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산이다.

산수화를 연상시키는 이 청량산은 봉화읍에서 동남쪽으로 29km, 안동시에서 동북쪽으로 24Km 에 위치하며

사람들의 손때가 묻을까 두려운 듯 다소곳이 숨어있다.

금탑봉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봉우리 12,8개의 동굴, 12개의 대와

신라 문무왕 3(663) 원효대사가 세운 청량사를 비롯한 절터와 암자, 관창폭포 등 수많은 관광자원을 갖고 있다.

  청량산 도립공원 표석 뒤로 퇴계의 '청량산가' 시비가 있으며, 청량산행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퇴계는 도산서당을 지을 때, 이곳청량산과 현재 도산서원 자리를 두고 끝까지 망설였을 만큼

청량산을 사랑하고 아꼈다고 한다.

청량산은 퇴계뿐만 아니라 원효, 의상, 김생, 최치원 등의 명사가 찾아와 수도했던 산이며,

그들의 이야기가 곳곳에 남아 전설처럼 전해온다.


퇴계의 청량산가에 나오는 6.6봉은 주봉인 장인봉을 비롯하여 외장인봉, 선학봉, 자란봉, 자소봉,탁필봉,

연적봉, 연화봉, 향로봉,경일봉, 금탑봉, 축융봉 등 12봉우리를 말하며 모두 바위병풍을 두른듯이 산 위에 솟아있다.

또 신라 때의 명필 김생이 서도를 닦았다는 김생굴을 포함하여

금강굴, 원효굴, 의상굴, 방야굴, 방장굴, 고운굴, 감생굴 등 8개 굴이 있다.

 

특히, 김생굴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 오는데,

옛날 김생이 이 굴에서 9년 동안 서도를 닦은 후, 스스로 명필이라 자부하고 하산할 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러자 한 여인이 나타나 자신도 9년 동안 길쌈을 했으니 솜씨를 겨뤄보자고 한다.

이리하여 컴컴한 어둠 속에서 서로 솜씨를 겨루었는데 길쌈해 놓은 천은 한올 흐트러짐이 없는데 반해

김생의 글씨는 엉망이었다.

이에 김생은 다시 1년을 더 정진한 후 세상에 나와 명필이라 칭송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밖에도 최치원이 글을 읽었다는 독서대를 비롯하여 어풍대, 풍혈대 등의 12대가 있고,

최치원이 마시고 정신이 총명해졌다는 총명수와 감로수 등의 약수가 있는데 물맛이 달고 시원하다.

또 역사적 유물로 청량사와 응진전, 오산당, 청량산성 등이 있다.

오산당은 김생굴 앞에 있는데, 퇴계가 문인들과 강론하던 곳에 후학들이 세웠다고 한다.

청량산 남쪽 축융봉에는 옛 산성터가 남아있는데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와 쌓았다고 하는 청량산성이다.


청량산은 옛 기록에서 이르되 6.6, 8(), 3굴을 가진 바위 산이다.

이 산의 중심에 앉은 청량사에서 두루 바라뵈는 9개 봉우리와 그 바깥쪽 3개 봉우리 합해 12봉을

사람들은 청량산 6.6봉이라 불러왔는데,

이는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날 속이랴 못믿을 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물 따라 가지 마라 어주자(漁舟子) 알까 하노라' 는 퇴계 이황의 시에서 유래한 말일 것이다.

기암봉들이 모여서 미로와 같은 산릉과 계곡을 이룬 한편 입구만 틀어막으면 안심이었을 이 청량산은

피신처로도 적격이었다. 이 청량산으로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들어온 적이 있다.

공민왕은 청량사 법당 유리보전의 현판 글씨를 자신이 청량산을 찾았던 명확한 흔적으로 남겼다.

 

물론 그 누구보다 이 산을 먼저 찾아들었던 이는 스님네들이다.

신라 문무왕 3(663) 원효대사가 연대사란 이름의 절을 지금의 청량사 자리에 세웠고,

그후 무려 27개나 되는 사암이 이 청량산 안에 들어 앉았다고 한다.

 

청량산과의 첫 대면에서는 차마 그 말을 믿기 어렵다.

청량사와 응진전 두 사암이 자리은 것만도 용하다 싶을 정도로,

사방에 보이는 것은 몽땅 암봉이며 하나같이 수직으로 깎아질렀다.

거기에 절이 앉기는커녕 사람이 걸어 오를 틈새나마 있을까 의심스러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층암절벽들 사이로는 교묘하게 길이 나 있으며, 여기저기에 커다란 법당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념으로 구도열을 사를 암자 정도는 너끈히 앉힐 만한 공간이 널려 있다.


<청량산고증>에 따르면 청량산의 원래 이름은 수산(水山)이었으나

청량사 주위가 특히 절승이므로 산을 청량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영천지(榮川誌)>에는 낙타 타 자를 써서 타자산(駝子山)이라 기록되었다고 하니,

이는 곧 청량산봉들이 낙타의 혹과 흡사한 데서 유래했을 것이다.

 

<청량산 등산지도>

지독하게도 인연이 없었던 청량산을 드디어 찾게 되었다.

20여 년 전부터 수없이 계획을 했었으나

그때마다 급한 용무가 발생하여 미루어지고 또 미루어졌던 청량산이 되겠다.

그러나 부실해진 발목으로 수없이 많이 등장하는 계단길이 부담스러웠었던 청량이었다.

 

테이핑을 단단히 하고 인연이 멀었던 그 청량산과 인사를 나눈다.

말로 들었던 그대로 산은 깊고도 깊은 모습으로 인간의 발길을 거부하는 듯한 산세를 보여준다.

그 급한 산세에 도전하겠다고 온 천지에 계단나라 천국을 지어 놓은 것 같은 청량의 모습이었다.

 

점점 꽤를 부리는 까치 산우님들 덕분(?)으로 계획했던 등로는 죄다 짤라 먹고,

지도상 3코스 “입석 ~ 청량사 ~ 하늘다리 ~ 자인봉 ~ 청량폭포”의 최단 코스로 짧은 만남을 하게 되었다.

 

  ▼ 4시간여를 달려 온 전용버스가 좁은 도로를 따라 올라 "입석 주차장에" 도착하였는데

온통 가스가 덮혀 있어 청량산 속살을 감추고 그 산세를 전혀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 주섬주섬 산행준비를 마치고 정자 앞에서 단체사진으로 오늘 청량산과의 첫 인연을 시작하게 된다.

  ▼ 10:51분 산행시작

어린시절 주름잡고 다녔었던 달동네 계단길을 연상시키는 입석바위 건너편의 들머리로 첫발을 내딪게 되는데,

산성과 축융봉은 도로 건너편 반대쪽이라고 이정표가 알려 주고 있다.

    등로 초입은 마치 절개지를 연상시키듯 좌측은 낭떨어지 지형으로 안전로프가 쭈욱 이어져 있는 모습이고,

   11:16분 "응진전, 감생굴, 자소봉" 갈림길

우리 계획은 우측의 "응진전, 감생굴, 자소봉" 방향이었거늘 참석회원들 모두가 마치 사전에 약속이나 한듯

청량사 방향으로 직진을 해 버리니 일명 짤라먹기를 하게 된다.

우측으로 진행하여 응진전과 감생굴을 만나고 가도 별 차이가 없는데.... ㅠㅠ

    그 갈림길에서 11분간 진행하자 송림 나뭇가지 사이로

청량사가 그 자태를 빼꼼히 보여 주고 있는 모습을 만나게 되고,

    5분후 "약차를 그냥 먹는 집"이라는 "청량정사"와  또 하나의 갈림길(경일봉, 응진전)을 지나게 된다.

조금전의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진해하면 감생굴을 만나고 여기서 합류를 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니,

천상 나중에 시간을 만들어 한번 더 청량과 인사를 나누어야 될성 싶어 진다.

▼ 외관상 찻집으로 보이는 청량정사를 위키백과에 물어 보았다!!

 

봉화 청량정사(奉化 淸凉精舍)는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에 있는 건축물이다.

1991년 5월 14일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244호 청량정사로 지정되었다가,

2017년 5월 15일 경상북도의 기념물 제176호 현재의 명칭으로 지정되었다.

 

송재 이우(1469∼1517)가 조카인 온계와 퇴계, 조효연 등을 가르치던 건물이다.

그 뒤 퇴계 이황 선생이 이곳에 머물며 성리학을 공부하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이황(1501∼1570)은 '동방의 주자'라 불릴만큼 뛰어난 성리학자이며 평생을 검소하게 살다간 사람이다.

그는 숙부인 이우를 따라 이곳에 와서 학문을 익혔다.

또한 여기서 성리학을 연구하며 후학을 양성하였고 국문시가인 '도산십이곡'을 지었다고 한다

건물은 앞면 5칸·옆면 1칸 반 규모로 이루어져 있다.

  ▼ 그 청량정사에서 3분후 청량사 입구에 도착하게 된다.

이 청량사는 최근에 가을 단풍철이면 "산사 음악회"를 개최하여 전국에 그 명성을 잔잔히 알려 주고 있는 절집이 되겠다.

 

청량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청량산 연화봉(蓮花峰) 기슭에는 내청량사(內淸凉寺)가, 금탑봉(金塔峰) 아래에는 외청량사(外淸凉寺)가 있다.

두 절은 모두 663년(문무왕 3)에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창건연대로 볼 때 의상은 중국에 있었으므로 원효가 창건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창건 이후 오랫동안 폐사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중건 등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다만, 창건 당시 승당(僧堂) 등 27개의 부속건물을 갖추었던 큰 사찰이었다는 것만 전하여지고 있다.

현재의 두 절은 비록 거리가 다소 떨어져 있지만 상호 연관적인 관계에 있다.

 

내청량사는 부대하는 당우로 볼 수 있는데,

전자를 유리보전(琉璃寶殿), 후자를 응진전(應眞殿)으로 별칭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현재 여승의 수도처가 되고 있는 두 절은 극히 사세가 미약하며,

단지 유리보전만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되어 있다.(출처 : 위키백과)

  ▼  청량사 전체를 감상하면서 유리보전 앞마당으로 걸음을 옮기게 된다.

  ▼  앞마당 한켠에서 풀빵을 만들어 파는 보살님들에게

"팥소를 좀 더 많이 넣어 주세요"라 농짓거리를 하면서 골려 먹어 보는데 응답은 충분하단다...

 

그러면서 가던 발걸음이 저절로 늘어지며 청량사를 감상하게 된다.

  ▼  청량사 건물중 가장 중요(?)할 수 있는 "유리보전"을 지나 등로는 계속 이어진다.

  ▼  즉, 등로는 유리보전 뒷쪽으로 "하늘다리" 이정표를 따라 가게 되는데

청량사 경내를 감상하면서 진행하다 보면 저절로 이길을 걷게 되는 편안한 형국이다.

  ▼  11:34분 자소봉 갈림길

유리보전 뒷길로 올라 서면 자소봉을 만날수 있는 갈림길을 만나지만 역시나 우리는 짤라먹기에 여념이 없으니

좌측의 "장인봉, 하늘다리"길로 진행을 하게 된다.

  ▼  우측의 자소봉길이나 좌측의 하늘다리 길이나 엄청시럽게 올라 서야 하는 계단길을 똑같은 데칼코마니 오름길이다.

  ▼ 12:03분 뒷실고개(자소봉 갈림길)

드디어 능선인가 싶더니 "뒷실고개"라는 삼거리 길을 만난다.자소봉과 하늘다리를 이어주는 중요 포인트로 좌우측길 모두 계단, 또 계단길로 조성되어 있게 된다.

 

어쩌면 이 계단들이 조성되지 않았다면 산객들이 꽤나 애를 먹게 될 지형이 되겠으니,또 한번의 계단길을 준비하기 위하여 잠시 숨을 돌리면서 간식으로 목을 축이고 가는 회원님들이다.

  ▼  12:16분 하늘다리

마치 극기훈련 하듯 계단길을 넘고 넘어 서자 등장하는 하늘다리를 만나게 된다.

이 하늘다리는 해발 800m 지점의 선학봉과 자란봉을 연결하는 다리로,

연장 90m, 통과폭 1.2m, 지상고 70m의 국내에서 가장 긴 산악 현수교로 2008년에 준공되었다.

  ▼ 점심식사(12:24~ 13:07분 점심식사(43분 소요)

그 하늘다리를 놀이 삼아 건넌후 안부에서  삼삼오오 밥상을 펼쳐 놓고 식사를 하게 된다.

  ▼  식사장소에서 뒤돌아 본 하늘다리와 청량산 연봉들 모습을 잡아 보았다.

  ▼ 한번 더 우왁스런 계단길을 통과하여...

  ▼  13:16분 장인봉 갈림길

청량산 정상인 장인봉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장인봉을 만나후 이곳으로 되돌아와 청량폭포 방향의 좌측길로 하산을 해야 하는 중요포인트가 되겠다.

몇명 회원은 이 갈림길에 아예 베낭을 벗어 놓고 홀몸으로 장인봉을 찾기도 하였다.

  ▼ 장인봉 만나러 가는 등로도 예외 없이 계단이 등장한다.

이 수많은 계단을 조성하기 이전에 산객들은 어떤 방식으로 이곳을 지났을지 자못 궁금해 지는 대목이다.

  ▼ 아내와 내가 올라 설 무렵 앞선 회원들은 이미 내려 오고 있는 모습이다.

  ▼ 13:29분 청량산 장인봉(인증 : 15분)

갈림길에서 13분만에 장인봉을 만난다.

많은 산객들 틈바구니에서 줄지어 서서 기다림을 갖고 인증샷을 하게 된다.

 

이 장인봉에서 직진을 하게 되면 "두들마을 ~ 금강문 ~ 관광안내소" 코스를 만나게 되는데

그 코스는 유난히 더 계단이 많아 우리는 청량폭포 길로 하산로를 계획한 것이다.

 

  ▼ 13:43분 장인봉 갈림길 회귀

장인봉에서 인증을 한후 조금전 만났었던 갈림길로 되돌아 내려와 우측의 청량폭포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하신길에서의 계단은 조성한지 제법 오래되어 보였다.

  ▼ 하산로에서 자란봉 부근을 확인해 본 모습이다.

  ▼ 이번에는 최근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계단을 또 만나게 되고,

  ▼ 대피소로 사용된 것 같은 폐시설물을 지나서,

    14:23분 두들 갈림길(시멘트 포장길 시작, 휴식 : 8)

시멘트 포장길이 등장하는 두들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일부 회원들은 여기서 또 먹자파티를 즐기고 있다.

잠시 후에 하산식을 할 터인데 정말 대단한 식욕들을 보유한 모습에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 "두실마을 농산물 장터"란 건물 앞을 지나자 마자,

  ▼ 14:45분 청량폭포 

청량폭포 앞에서 산행을 마무리 하게 된다.

더불어 계단 지옥에서 벗어나게 된다.

  ▼ 시설지구에 있는 음식점에서 솔잎 숯불구이로 하산식을 한후 귀경길에 오르게 된다.

  <동영상 : 하늘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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