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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포르투칼

29. 스페인/포르투칼 제 7 일차(2022년 07월 07일, 목요일) 3. 톨레도 대성당(Toledo Catedral)

 스페인/포르투칼 제 7 일차(2022년 07월 07일, 목요일)

3. 톨레도 대성당(Toledo Catedral)

 

77일 전체일정 1. 톨레도로(Toledo) 이동, 중식 : 이베리꼬/하몽(iamon iberico de cebo)

                            2. 산토토메(Iglesia de Santo Tomé) 교회

                           3. 톨레도 대성당(Toledo Catedral)

 

                             4. 꼬마열차 투어 - 알칸따라 다리(Purnte de Alcantara), 전망대 등

                             5. 마드리드(Madrid)로 이동하여 석식

                             6. 마드리드(Madrid) 야간탐방 : 산미구엘시장, 마요르 광장 등

                             7. 마드리드 시내버스 체험후 유로스타 아레나스 핀토(EUROSTARS ARENAS PINTO) 호텔 입실

 

 

 

                                                                                     <톨레도 탐방 개념도>

 

톨레도 대성당(Toledo Catedral) : 스페인 가톨릭의 총 본산

스페인 가톨릭의 총 본산인 톨레도 대성당은 1493년에 완공되었으며

귀족들만이 다녔었다는 성당이란다.

 

고딕양식의 화려하면서도 장엄함이 묻어나는 성당으로 중앙에는 면죄의 문이 있고,

오른쪽에는 사자의 문, 왼쪽에는 시계에 문이 있다.

내부는 22개의 예배당과 신약 성경과 성도를 주제로 하는 스테인드 글라스와 보물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날 수석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톨레도 대성당은

이슬람 왕국 시절에는 회교사원이 있었던 곳이었다.

1086년 알폰소 6(Alfonso)에 의해 톨레도가 수복된 후

이 회교사원은 카톨릭 성당으로 개조되었다.

 

1212년 나비스 데 톨로사 전투에서 대패한 아랍 세력은 결정적 타격을 입었는데

당시 알폰소 8(Alfonso)와 대주교는 승전을 기념하기 위하여

대성당을 다시 기독교 성당으로 재건축하기로 하여

1221년에 기초공사가 이루어지고,

건축가는 1227년 마르틴(Maestro Martín)으로 알려져 있다.

 

이슬람의 탄압으로 만들어진 이 거대한 건축물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치루어 졌을까?

오스만 제국이 적국을 정복하면 3일간 병사들에게 약탈과 강간이 허락 되었었다 한다.

 

유럽에서도 가장 뛰어난 고딕양식 중에 하나라는 톨레도 대성당의 어마어마한 크기에

그 모습을 한 번에 다 사진에 담기가 어려울 정도다.

 

성당 내부는 화려하지 않은 중세 성당의 모습으로,

원형의 돌을 만들어 한층 한층 쌓아 올려 만든 거대한 기둥과

테인드글라스 창에서 나오는 채광이 은은한 경건함을 일으키는 곳이었다.

 

과거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은 구석이 있어 

천장의 문양은 알함브라의 모습과 언뜻 닮아 보인다.

우리나라의 팔만대장경이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깍아 냈듯이,

활자 인쇄가 발명되기 전의 시대에 성경을 일일이 손으로 쓴 필사본으로써,

라틴어로 쓰여져 일반인이 읽기 어려웠기 때문에 옆에는 그림으로도 그려져 있다.

 

성당의 중심 예배당으로 가면, 철문으로 막혀 있고 그 철문 위에 예수님의 상이 올려져 있다.

창틀 안 정면에는 재단 병풍에 성경 속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듯 조각되어 있어 예수님의 일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맨 위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 함께 십자가에 매달렸던 두 명의 도둑들도 함께 좌우에 새겨져 있는데, 그 중 한 명인 우도가 예수님께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한 반면, 좌도는 무시했다고 한다.

이는 바로 임종 직전의 인간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못받아 들이는 상황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 예수님 상은 항상 당시 우도를 바라보며 대답한 모습을 표현하여

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이라 한다.

 

이곳에는 특이하게도 백색의 성모상이 있다.

아기 예수를 안고 미소를 짓는 모습이 우리나라 신라시대 미륵보살의 인자한 미소와 많이 닮아 있다.

 

성당 안 보물실에는 금빛으로 번쩍이는 보물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성당 전체의 모습을 본따 그 한 가운데 성채를 모신 것으로,

18kg과 순은 180kg으로 외관을 만들었다가 나중에 도금이 되었고,

12,000개가 되는 금은의 나사로 일일이 76개월에 걸쳐 조립하여 만든 것이라 한다.

그 외 다이아몬드 및 각종 보석들이 십자가와 천장에 박혀있는 대단한 보물이다.

 

그 비싸다는 백색 대리석으로 성경 속 왕과 성자의 모습을 사방에 모두 조각해 놓았고,

그 밑의 호두나무로 만든 성가대 좌석에는 이사벨 여왕의 군대가

그라나다 알함브라에서 이슬람 군대를 몰아내는 44개의 내용이 조각되어 있다.

 

이곳의 감실에 초가 켜져 매달려있다는 것은 바로 성체가 모셔져 있는 곳이니,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일반인들도 이곳 바깥에서 미사를 들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촛불 위에 빨간색 타원형은 바로 추기경의 모자로써 바로 이곳 밑에 추기경 이 묻혀있다는 것을 표현 하는 것이다.

이 성당에는 18명의 추기경이 묻혀 있다고 한다.

 

다른 쪽 천장에는 바로크 풍의 프레스코 화가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실제와 달리 인물이 길게 묘사되고 흑색의 바탕에 원색의 칼라가 사용되었던 매너리즘시대 그림으로,

르네상스 시대 인간의 모습을 멋지게 더 잘 표현하기 위한 것과 달리,

작가의 이미지를 집어 넣은 차별화된 새로운 화풍이었다고 한다.

이탈리아어 마니에라(maniera)’에서 유래했으며,

성숙기 르네상스 고전주의의 쇠퇴를 뜻하거나 고전주의에 대한 반동을 일컫는다.

나중에 고흐, 고갱 등의 인상파에 영향을 주었다고 하여 재조명되었다고 한다.

 

  

  ▼ 산토토메 교회에서 만난 '매장'이란 그림에 빠져 아직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이번에는 톨레도 대성당을 만나러 간다.

이 대성당은 스페인 성당의 총본산이라 할 정도이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조금 전에 만났었던 외관의 모습만큼 그 내부는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질지 기대감을 품고 걸음을 옮긴다.

  ▼  예의 좁은 골목길 마다에는 기념품 상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걸으면서 심심할 걱정은 없게 된다.

  ▼  성당 외관 자체의 규모가 크고 성당 주위의 정황도 전체 사진을 촬영할 만한 공간이 없는 곳이다.

간신히 간신히 노력하여 이만큼의 사진만 건지게 되었는데, 

톨레도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톨레도 대성당은 구시가지의 좁은 골목길에서도

높은 탑이 보이기에 어디서든 보이기에 금방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정문으로 보이는 곳은 철창으로 막혀 있으니 골목길로 다시 들어 서야 하는 형국이다.

 

 원래 정면(正面 Fachada Principal) 모습은 두 개의 탑이 양쪽에서 서로 대칭을 이루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높이가 92m이고, 내부에는 고르다(Gorda)라고 하는 약 18.000kg 하는 대형 종이 설치되었다.

반부 공사가 끝난후 한쪽은 원래 설계와 다르게 8각형의 원형지붕으로 마무리 되었다

  ▼ 대성당 정면에 위치한 사자의문(Puerta de los Leones)은 1452년에 첫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당시에는 성모승천 을 정의하는 뜻으로 기쁨의문 이라는 이름이 붙혀져 있었으나

17세기 1646년에 사자상 철창문이 세워지면서 사자의 문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건 모지??

큰 대문을 외면하고 마치 개구멍(??) 같은 좁은 입구로 들어 서며 톨레도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대성당이란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 출입구로 아마도 패키지 팀의 출입로가 아닌가 하였다.

  이 그림은 그 작은 출입문이 위치한 톨레도 대성당 외벽면 모습이다.

  어쨋거나 대성당 안으로 들어 가자 우선 스테인드 글라스가 인사를 한다.

그런데 사진이 흔들렸다.

첫 빵부터 말이다!! ㅠㅠ

 

성당의 규모가 크고 스페인 카톨릭의 총본산인 만큼 많은 카톨릭의 유물과 보물들이 이곳에 있기에

김신웅 과장이 열심히 설명해 주었지만 그 내용을 모두 여기에 담지 못하고

다만, 메모에 의지하여 기억나는 데로 기록을 남겨 본다.

.

  ▼ 사자의문 내부(Puerta de los Leones) 로 16세기 중엽에 변화를 격게 되는데

상부는 정형적인 르네상스 양식이 서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도록 호도나무에 아름다운 문양을 새긴 문짝이 만들어 졌다.

이곳에는 '알폰소 데 로하스'라는 사제의 무덤이 안치되어 있다

   성당 내부는 화려하지 않은 중세 성당의 모습으로,

원형의 돌을 만들어 한층 한층 쌓아 올려 만든 거대한 기둥과 스테인드글라스 창에서 나오는 채광이

은은한 경건함을 일으키는 곳이었다.

  ▼ 중요한 보물들은 모두 철창안에 갇혀(?) 있는 모습이다~~~

  ▼ 세레자 요한이 힘들어 할 무렵 성모님께서 요한에게 나타나 밈음을 굳게 해주신 일화가 있는데

이 돌은 성모님께서 요한에게 준 돌의 일부분으로 이 돌을 만지며 기도를 하면 아들을 얻을 수 있다는 돌이다.

당연히 철창 속에 갇혀 있는데 거의 모든 탐방객들이 줄지어 서서 엄지손가락을 얻으며 소원을 빌고 있는 모습이다.

  ▼ 보물실(寶寶物室 門 Puerta del Tesoro) 입구

성당내 보물실은 성 요한 소예배실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은 보물실로 들어가는 입구로 그야 말로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 그 보물중에서도 김신웅 과장이 가장 열성적으로 설명을 해준 작품이 바로 이것이었다.

바로 '성체현시대(聖體顯示臺 Custodil)'로 성체를 보관하는 성체 현시대는

12.000개의 금으로 된 나사로 7년 6개월에 걸쳐 조립했을 만큼 섬세하다.

 

그리고 아래 받침은 은으로 만들어 졌으나 나중에 금으로 도금되었다.

그 외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 등 각종 보석들이 십자가와 천장에 박혀 있는 대단한 보물로

이 성체현시대는 남미 마야민족의 후손들에게서 수탈해온 18kg의 순금으로 만들어졌다 한다.(아래 동영상 참조)

세비야 대성당 중앙 예배당의 벽도 이와 마찬가지로 남미에서 수탈해온 순금 1.5톤으로 만들었다 한다.

대단하다라고 밖에 할말이 없는데 여기서 의문점이 든다.

 

인간의 세계에서야 예로부터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양육강식적으로

남의 나라에서 수탈해온 재물로 자기 뱃속 채우는 것을 머라 할 수 없겠지만,

이런 수탈된 재물로 성당을 꾸민 것에 대하여 예수님은 어떤 생각과 판단을 내릴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과연 잘했다고 칭찬하실런지~~~??), (아니지 않나 싶다!!)

 

한편, 이 성체현시대는 코르도바 매스키타에 있는 성체현시대와 같은

16세기 독일 공예가 '엔리케 데 아르페' 작품으로 스페인 성체현시대 중에 제일 걸작으로 꼽히는데

이 보물을 성당의 연례 행사인 '성 체축일(Curpus Christi)'에는

성당 밖으로 들고 나가 시내를 한 바퀴 돌아 온다 하니

아마도 대단한 행사기 치루어지지 않겠나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 그 비싸다는 백색 대리석으로 성경 속 왕과 성자의 모습을 사방에 모두 조각해 놓았고,

그 밑의 호두나무로 만든 성가대 좌석에는 이사벨 여왕의 군대가

그라나다 알함브라에서 이슬람 군대를 몰아내는 44개의 내용이 조각되어 있다.

이곳의 감실에 초가 켜져 매달려있다는 것은 바로 성채가 모셔져 있는 곳이니,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일반인들도 이곳 바깥에서 미사를 들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촛불 위에 빨간색 타원형은 바로 추기경의 모자로써

바로 이곳 밑에 추기경 이 묻혀있다는 것을 표현 하는 것이고, 이 성당에는 18명의 추기경이 묻혀 있다고 한다.

  성당의 중심 예배당으로 가면, 철문으로 막혀 있고 그 철문 위에 예수님의 상이 올려져 있다.

창틀 안 정면에는 재단 병풍에 성경 속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듯 조각되어 있어 예수님의 일생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너무나 화려한 모습이고 사실적인 표현인지라 감탄의 연속이고 한 화면에 담지 못하여 여러장으로 나누어 담게 된다.

철창으로 막혀 있어 사진촬영에 많은 애를 먹게 된 결과인데

나누어 찍다 보니 실감도 떨어지고 감흥도 떨어지지만 실제로 본 이 예배당의 모습은 환상적이었는데,

 

맨 위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 함께 십자가에 매달렸던 두 명의 도둑들도

함께 좌우에 새겨져 있는데, 그 중 한 명인 우도가 예수님께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한 반면, 좌도는 무시했다고 한다.

이는 바로 임종 직전의 인간들이 예수님을 받아 들이고, 못받아 들이는 상황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 예수님 상은 당시 우도를 바라 보며 대답한 모습을 표현하여,

항상 고개를 오른 쪽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라 한다.

그 예배당의 중앙 모습이고,

  ▼  이것은 왼쪽이며,

  ▼ 마지막으로 우측사진이니 이 세개의 그림을 머릿속으로 한장으로 그려서 연상을 해야 하는 형편이다.

  아~~ 요건 머였지??, 에라 모르겠다. 그냥 통과~~~ !!

요건 지금 턱보아도 파이프 오르간일 터이고,

  ▼ 아래 사진에 등장하는 '백 성모상(Virgen Blanca)'은 14세기 초 프랑스에서 조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가대실 상부에 설치된 두 대의 커다란 파이프 오르간은 그 제작양식에 있어서 서로 다른데

좌측 화려한 오르간은  바로크 양식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우측의 오르간은 신 고전주의 양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성가대실 외벽은 '떼노리오 추기경' 시절인 1376년 부터 1399년에 걸처 완성되었다.

이 벽에는 수많은 대리석 기둥이 벽속에 박혀 있는데

이는 옛 회교사원 의 기둥들을 장식용으로 재활용한 것이란다.

그런데 아기 예수를 안고 미소를 짓는 성모님의 모습이 우리나라 신라시대 미륵보살의 인자한 미소와 많이 닮아 있다.

우연의 일치까??

위 설명과 일치시키기 위햐여는 아래 사진들을 쭈욱 연결시켜 보아야 한다,

  

  ▼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들어 오는 햇빛과  어우러진 파이프 오르간!!

그리고 그 오르간 주위를 감싸고 있는 금박재질의 그리고 하단의 대리석(?) 부조들이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 역시나 고개를 우측으로 돌리고 있는 예수님 모습...

  ▼ 잠시후 김신웅 과장이 급한 걸음으로 안내를 하더니 천장에 '뜨란스 빠렌떼(El Transparente)"를 소개한다.

뜨렌스 빠렌데의 진면목은 맞은편 돔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빛과 어우러질때 그 환상적인 자태가 나타난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대리석 기둥의조각들이 빛을 받을 때면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듯 보인다며,

이 톨레도 대성당에서 꼭 보아야 할 것중 하나라 하며 강조했던 김과장의 얼굴 모습이 기억된다.

  ▼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를 떠받치고 있는 아기 천사들은 바로크풍의 조각들의 특징이다.

이 성모님과 아기천사들의 알현을 마지막으로 톨레도 대성당 탐방을 마치게 된다.

 

<동영상> - 성체 현시대(聖體顯示臺 Custod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