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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포르투칼

26. 스페인/포르투칼 제 6 일차(2022년 07월 06일, 수요일) 6. 파티마 성당 야간 미사

 스페인/포르투칼 제 6 일차(2022년 07월 06일, 수요일)

6. 파티마 성당(FATIMA Basilica) 야간 미사

 

 

76일 전체일정 1. 리스본(Lisbon) 이동후 중식 바깔라우(iEmpty Parasendif baccala)

                             2. 툭툭이 투어 전망대(Miradour da Senhora do Monte)

                             3. 벨렘탑(Torre de Belém)과 제로니모스 수도원(Jerõnimos monastery) 외관 탐방

                             4. 신트라(Sintra) 탐방후 파티마 Hotel Snata Maria 입실

                             5. 파티마 성당(FATIMA Basilica) 주간 탐방

                             6. 파티마 성당(FATIMA Basilica) 야간 미사

 
 

<파티마 개념도>

 

파티마 대성당(Basílica de Nossa Senhora do Rosário de Fátima, FATIMA Basilica )

이곳은 널리 알려진 대로 1917년 5월 13일 인구 1만 명도 않되는 작은 마을로

파티마의 한 목초지에서 양치기를 하면서 사는 열살의 루치아, 일곱 살의 히아친타 ,아홉 살의 프란치스코

세 명의 어린이는 코바다 아리아에서 함께 작은 돌담을 쌓으며 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번개와 같은 섬광이 내려치면서 아이들 앞에 있는 떡갈나무 위에 성모마리아가 나타 났다.

 

열 살의 “루치아”에게 매우 아름다운 묵주를 들고 있는 성모는 세 가지의 비밀을 말해주었는데

그들 3인은 그 비밀을 갖은 협박과 탄압에도 굴하지 않아 발설하지 않았고

밧줄로 허리를 묶고 고행을 자처하였다.

 

그들의 예언의 진실은 1917년 7월 13일 아이들에게 약속한 대로

성모마리아는 10월 13일 “태양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신문기자와 사진기자를 포함한 7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하늘에서 이상한 현상으로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번개가 치고 다시 빛을 현란하게 보내어 3인의 말을 증명하여 주었다.

 

1928년 바실리카식 대성당의 건축을 시작하여

1953년 10월에 봉헌한 ‘파티마성당’은 ‘로사리오성당’이라고도 한다.

포르투갈 리스본 한적한 시골 마을 파티마는 인구 8천의 도시에 불과하지만

성모 발현일인 매년 5월 13일과 10월 13일에는 수 백만 명의 세계 순례자들이 방문하는 세계 성지순례지다.

 

광장 왼쪽 성모 마리아가 발현했던 자리에 세워진 성당은

원래는 초라한 성당이었으나 딴 건물을 덧씌워 지었으며, 수 많은 참배객을 위하여 스피커 시설까지 해 놓았다.

 

소성당에는 왕관을 쓴 로사리오의 여왕(마리아)이 합장하고 서 있는 상과

마리아가 세 양치기를 만나는 성단화가 있다.

 

3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광대한 광장 북쪽에 있는 네오 클래식 양식의 대성당이다.

중앙에 64m 높이의 탑이 있고, 좌우의 주랑에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그린 벽화가 있다.

제단 왼쪽에는 자신타 마르투와 프란시스코 마르투의 묘가 있다.

그들은 불과 9세와 10세의 어린이었다. 세 어린이 중 루시아는 코임브라의 수녀원에 들어갔다.

 

<파티마의 성모님 발현>

  1. 발현 : 1917513일은 토요일이었다. 그날 정오경, 한줄기 밝은 빛이 아이들을 비추었는데,

그들은 코바 다 이리아의 나무 위에서 찬란한 모습의 어떤 부인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

이 첫 발현 때, 그 부인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그리고 전쟁의 종식을 위해 기도 하라고 이르시면서,

매달 13일에 다시 오겠다고 말씀하셨다.

 

ㅠㅠ그 후, 발현은 613일과 713일에도 일어났다.

네 번째 발현일인 813일에는 어린이들이 지방 당국으로부터 방해를 받고 코바 다이리아로 가지 못했으나

19일에 그 부인을 만났다. 913, 부인은 전쟁이 끝나도록 로사리오를 바치라고 이르셨다.

 

끝으로 1013, "부인"은 당신을 "로사리오의 모후"라고 알려 주시고, 기도하고 보속하라고 다시금 이르셨다. 그날, 놀라운 천상적인 현상이 일어났다. 태양이 빙빙 돌면서 하늘에서 떨어져 땅에 쳐박히는 듯한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어린이들은 첫 발현날 인 513일처럼 일찍이 그곳을 향하였다. 3만 명의 대군중들이 어린이 주변에 몰려 있다가 신비로운 이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어린이들이 코바 다 이리아에서 본 환시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19301013일이다.

레이리아의 주교는 오랜동안 조사 검토한 뒤에 코바 다 이리아에서 로사리오의 성모 공경을 허가했던 것이다.

발현 얼마 뒤에 두 어린이는 선종하였다.

발현은 보았으나 말씀은 듣지 못했던 프란치스코는 191944일에 선종했고,

동생 히야친타는 1920220일에 하느님 품에 안겼으며,

유일한 생존자인 루치아는 수녀가 되었다.

 

  파티마의 어린이들에게 동정 마리아께서 발현하신 것은 세계 제 1차 세계 대전 중인 1917년 여름이었다.

레이리아 교구의 작은 마을 주민들은 대개가 가난한 사람들이고, 또 소농이었기 때문에

매일같이 들과 가축들을 돌보아야만 했다.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한 어린이들도 양치는 일을 맡고 있었다.

 

  루치아 도스 산토스는 10세였고, 그녀의 나이 어린 사촌 동생 프란치스꼬(7)와 히야친타(9)가 곧 그들이다.

그들은 루치아의 책임 아래 양을 쳤는데, 자주는 아니지만 들판에서 무릎을 꿇고 로사리오 기도를 즐겨 바쳤다고 한다. 1916년 여름에는 한 천사가 몇 차례 발현하여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를 가르쳤다는 것이다.

 

  2. 메시지 : 파티마에서 성모님이 발현하실 때 조그마한 참나무 위에 서 계셨다.

그 참나무를 베어 발현하셨을 때의 모습대로 꼭 같은 모양의 성모상을 세 개 조각하여  전 세계의 분쟁지역을 순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한국전쟁 때 방문하시어 최전방까지 순례하셨다.

 

  파티마에 발현하신 성모님은 공산화 되어 가는 러시아와 공산당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라고 당부하셨다.

이 말씀에 따라 공산주의에 대적해 기도로써 싸우는 군대라는 뜻으로 푸른 군대가 창설되었다.

 

  파티마의 공적인 메시지는 루르드의 메시지와 거의 같다.

어린아이들을 통하여 마리아는 조인들을 위한 기도와 로사리오 기도 그리고 보속행위를 하라고 요구하셨기 때문이다.

1013일의 말씀은 이렇다

 "나는 생활을 개선하고 죄로 인하여 우리 주님을 슬프게 하지 말며,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도록 신자들을 권고하기 위하여 왔다.

나는 이곳에 나를 위한 성당을 원한다.

사람들이 그들의 태도를 개선한다면, 전쟁은 곧 끝날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어린이들에게 어떤 "비밀"도 일러주셨는데, 푸치아가 이 중의 몇 가지를 전달하였다.

아마도 추측하건데, 머지 않은 장래에 또 다른 전쟁이 있으리라는 예언과 함께,

티없이 깨끗하신 마리아 성심에 관한 공경이 주 내용인 듯하다.

그러나 루치아가 받은 마지막 비밀은 요한 23세 교황님께 맡겼다.

 

  루르드에서 처럼 파티마의 "발현"은 수많은 순례자가 몰려들게 하였다.

1917년 여름부터 시작된 순례는 놀라운 숫자에 달하였는데,

그 들중에는 포르투갈인들도 있었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도 많았다.

 

1931513, 발현에 대한 교회의 공식 인정이 있은 다음부터는 순례자들이 수백만에 이른 것이다.

교황님들도 파티마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비오 12, 바오로 6세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가 파티마를 순례하고 기도하였다.

교황님들의 이런 관심이 순례자의 수를 더욱 많게 하였고, 발현 장소에 성전을 짓게 된 계기가 되었다.

 

순례자들은, 이 한적한 곳에서, 마리아께서 어린이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을 다시금 묵상하며

마리아 어머니의 말씀을 실행하기로 다짐하는 것이다.

 

  3. 파티마와 교황 : 성모님이 발현하신 그 장소에 조그마한 경당을 세웠다.

  19421031, 비오 12세는 파티마의 성모 발현 25주년을 기하여 모여든 순례자들에게 라디오-메시지를 보냈다.

성모님께 감사와 충성을 드리고 기도하라고 권하신 뒤, 교황은 세상을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에 봉헌하신 것이다.

 

  이것은 파티마 사건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1946513, 비오 12세 교황은 파티마 성모상 대관을 위하여 라디오-메시지를 보냈다.

여기서 교황은 "파티마의 장관(壯觀)""

티없이 깨끗하신 여왕이시며,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모성적인 자애로운 성심의 활동"이라고 하시고,

마리아의 끊임없는 보호가 포르투갈에 내릴 것이라고 하셨다.

또 교황은 마리아가 천상적이며 우주적인 여왕이심을 찬양하시며, 파티마 발현의 중요성을 역설하셨다.

 

 

  ▼ 저녘 식사후 잠시 휴식을 취한 후 9시 30분 부터 시작하는 미사에 참석하기 위하여

다시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지금 시간은 밤 9시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낮처럼 훤하였다.

    인구 8천명의 소도시이기에 조용하다 못해 한적한 모습으로 이따금 지나는 관광객들만 드물게 보이는 거리풍경이다.

 

 '성 삼위일체 성당(lgreja Santissima Trindade)’

2007년 10월에 준공된 성 삼위일체 성당(Basilica daSantissima Trndade)은 서쪽 끝자락에 있다. 

세계 여러나라 언어로 된 성서 인용구가 적힌 넓은 창문 과

각각의 사도에게 쳐진 성서 인용구가 적힌 12개 청동 문이 있다.

 

대성당을 마주보고 있는 성 삼위일체 성당(lgreja Santissima Trindade) 들어가는 입구 벽에

각국 말로 성경구절이 써있는데 우리나라 글로는 “내가 너희에게 진실로 말한다 !!!라는 문구외에 ‘

어느 누구도 업수이 여기지 말라’는 시편에 나오는 성경구절이 적혀 있다.

 

성삼위일체 대성당 입구에는 독일 출신의 포르투칼 거주민이 기부한

베르린 장벽의 조각품이 공산주의 몰락의 감사로 받처져 있다.

 미사는 매일 8번의 실리카에서 일곱 번의 망령들의 예배당에서 열린다.

 

  ▼ 성당에 도착하여 낮에 찾아 보지 못했던 삼위일체 성당을 우선 만나보게 되는데
이 삼위일체 성당은 많은 관광객들로 추가 건설한 성당이라 한다.
우선 성 삼위일체 성당앞의 철십자가 예수상이 눈에 들어 온다.
이 철십자가상은  조각가 '로버트 SCHAD'에 의해 제작된 예수상은 추상적인 현대적 감각으로 세워졌는데 인상적이다.

  ▼ 이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 세의 동상을 만난다.

요한 바오로2세는 81년 파티마의 성모마리아의 발현기념일인 513

성베드로 광장에서 총격을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이듬해 513일 감사기도차 파티마를 방문했을 때

다시 일어난 스페인 광신도의 암살기도도 모면한 뒤 파티마에 대한 깊은 애착을 보여 왔다.

교황은 이날 파티마에서 전 세계 60만명의 카토릭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모의 계시가 있은지

2년 만에 폐렴으로 사망한 프란치스쿠와 하친타에 대한 시복식을 집전했었다.

 

1982512, 요한 바오로 2세는 파티마를 순례하시고 성모 발현 65주년을 기념하였다.

이때 교황은 동정 마리아의 중재하심에 감사드리고,

세상의 만백성을 마리아의 티없이 깨끗하신 성심께 새롭게 봉헌하셨다.

1982513, 파티마의 성모 첫 발현일을 즈음하여 교황은 발현장소에서 미사를 거행하신 후,

75세의 가르멜 수녀이며, 발현을 증언했던 세 어린이 중의 유일한 생존자인 루치아에게 성체를 영하여 주셨다.

이때, 교황은 파티마의 메시지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부합된다고 역설하였다.

( 마리아 사전 - 최정오 역편 / 마리아회 감수)

  ▼  성 삼위일체 성당 앞에서 대성당을 배경으로 클로즈 업을 한 후 성당안으로 들어가 본다.

  ▼ 성당은 지하로 내려가게 되 있었는데 그 입구에는 알려진 대로 ' 성서 인용구가 적힌 12개 청동 문'이 등장한다.

앗!! 그런데 이 사진에는 10개 뿐이다.

2개는 오데로 간건지??

 

  ▼ 성 삼위일체 성당 내부  성당 중앙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이 있고 벽은 화려한 금빛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으며,

대성당을 마주보며 우측 중앙쯤에 베르린 장벽 일부분이 전시되었다 하고,

 슬로베니아 예술가 마크로 이반 루프니크 모자이크 작품 아일랜드 예술가 캐서린 그린의

예수그리스도를 묘사한 제단뒤 장식이 있다하는데 오늘은 개방이 되지 않고 있어 그 실체를 확인하지 못하였다.

 

다만, 벽에 낙서(??)처럼 보이는 그림들이 쭈욱 배열되어 있고,

복도 한쪽에서는 무슨 기도 모임을 하는 모습만 확인하고 말게 된다.

  ▼ 그리고 내용을 알 수 없는 조형물을 대하게 된다.

  ▼ 이 그림은 참나무 위로 발현하신 성모님과 세 어린이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보인다.

  ▼ 성당 내부를 보지 못한 실망감으로 이내 밖으로 나오면서 요한 바오로 6세 동상을 만나게 된다.

성지 성 삼위일체 성당 우측에 있는 성바오로 6세 동상은 조각가 아킴코레이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요한 바오로 6세는 교황 재위기간이 1963621167886일이다.

본명은 조반니 바티스타 엔리코 안토니오 마리아 모티니로 이탈리아 사람으로

교황 요한 23세의 유지를 이어받아 제2차 바디칸 공의회를 개최하여 교회의 쇄신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였다.

또한 교황 비오 12세 이래 교회의 국제화를 게속 이어가도록 기초를 다졌으며

동방정교회와 개신교등 다른 노선의 기독교 지도자들과 역사적 모임을 갖고 협정을 맺음으로서

기독교 교파간의 일치와 관계 개선을 도모하였다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제3회기 폐막식에서(19641121), 바오로 6세는 

마리아께서 만국 공의회와 교회를 축복해 주시며,

이 세상의 끝없는 수평선에서 눈을 돌리지 않도록 복되신 동정녀께 열렬히 기도하자고 말씀하시고,

이 천상 어머니께 전 인간 가족을 봉헌하셨다.

 

마리아께 대한 봉헌의 쇄신을 당부하셨다: 1967513, 코바 다이리아의 성모 발현 50주년을 기하여,

바오로 6세는 파티마로 가서 기도와 평화의 순례를 하셨다.

그때 교황은 복되신 동정녀 공경과 본받음에 대한 권고를 전 교회에서 보내셨는데,

이 권고의 제목은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이다.

여기서 교황은 교회의 어머니의 티없이 깨끗하신 성심에 대한 봉헌을 새롭게 하라고 모든 신자들에게 촉구하셨다.

(인간 가족을 성모님께 봉헌하심)

  ▼ 이제사 땅꺼미가 내리고 대성당 주위에 조명이 들어 오기 시작한다.

철십자 예수상 아래로 오체투지를 하며 기도하는 신자들을 바라 보면서 미사참전을 위하여 넓은 광장을 가로질러 가본다.

    마침 소성당에서 옆에서 미사에 쓰일 양초를 판매하고 있어 아내와 나도 하나씩 손에 들고 미사 시작을 기다린다.

   미사는 대성당이 아닌 소성당에서 집전이 되고 있는데

이 소성당은 성모마리아의 발현이 있었던 자리에 1919 4월2 8일 작은 경단을 짖기 시작했으며,

1920 5 13일 동정이신 성모님을 모셨고, 1921년 이 경단에서 이 경단에서 봉헌하는 것이 허락 되었다. 

  ▼ 드디어 미사가 시작되더니 잠시후에는 성모님을 모시고 광장을 한바퀴 도는 행사가 치루어 진다.

모든 참석자들은 경건한 몸과 마음으로 그 성모님을 따라 함께 걷게 된다.

  ▼ 제대에는 작은 경단과 성모 마리아님을 모시고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님 모습!!

  ▼ 대성당 회랑에 그려진 예수님 수난 벽화는 낮에는 그저 그렇게 보였는데 조명을 받고 있는 지금은

무척 밝은 모습으로 비추어 지고 있었다.

  ▼ 광장을 돌던 성모님이 제자리를 찾아 가면서 드디어 미사를 마치게 된다.

참석자들은 손에 들고 있던 초를 그냥 버리지 않고 이처럼 잘 보관하여 끝까지 불타게 하고 있었다.

  ▼ 수 많은 참석자들로 인하여 헤어졌던 한근 부녀도 다시 만나 호텔로 돌아 가는 중이다.

  ▼ 산타마리아 호텔 내부 기념품 가계에 전시된 마리아님을 한번 더 만나는데

방금 미사에 참석을 했던터라 그런지 낮에 보았을 때와는 먼가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 왔었다.

  ▼ 호텔 1층 외부 간이 휴게소에 둘러 않아 맥주 한잔으로 오늘의 고단함을 풀고

내일 만날 톨레도에 대한 기대감을 갖는 시간을 보내고 12시가 지나서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

<동영상> 파티마 성당 야간 미사 1
 
<동영상> 파티마 성당 야간 미사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