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스페인/포르투칼 제 6 일차(2022년 07월 06일, 수요일)
3. 벨렘탑(Torre de Belém)과 제로니모스 수도원(Jerõnimos monastery) 외관 탐방
7월 6일 전체일정 1. 리스본(Lisbon) 이동후 중식 바깔라우(iEmpty Parasendif baccala)
2. 툭툭이 투어 – 전망대(Miradour da Senhora do Monte)
3. 벨렘탑(Torre de Belém)과 제로니모스 수도원(Jerõnimos monastery) 외관 탐방
4. 신트라(Sintra) 탐방후 파티마 Hotel Snata Maria 입실
5. 파티마 성당(FATIMA Basilica) 주간 탐방
6. 파티마 성당(FATIMA Basilica) 야간 미사
포르투칼 리스본 (Portugal Lisbon)
리스본은 포르투칼의 수도로 대서양에 면한 항구 도시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두 번째로 가장 중요한 재정적, 경제적 중심 도시이다.
유태인 대학살 때 이곳 리스본에서 탈출한 10만여 명의 유태인들 중에는
러시아계 유대인 마르크 샤갈, 독일 태생 막스 에른스트, 항가리 태생 작곡가 벨라 바르토크,
독일 反戰 작가 레마레크, 프랑스작가 앙드레말로 등 자유를 찾아
미국행 여객선을 여기서 승선했다 한다.
<15세기 해양대국 포르투칼>
리스보아(현지인들은 리스본을 '리스보아'라 한다)는 폴투갈의 수도로 인구가 250만 명으로
포루투갈 전체 인구가 천만이라니 리스본의 위치를 짐작하게 하고,
포르투갈은 남한 크기와 비슷하다.
15세기 세계 최강의 해양대국으로 브라질을 식민지로 삼는 등 엄청난 부를 향유하면서
강대부국으로서 프라이드가 강했으나 지금은 동유럽을 제외한 EU국가중 가장 빈국에 속한다.
카톨릭의 성지로 이름난 파티마 지구 등 관광지가 많고 날씨가 좋아 유럽의 관광객이 들끓는다.
그래서 유럽의 휴양지라고 할 정도로 관광대국이다.
특히, 대서양과 지중해 바다를 끼고 있는 포루투칼은 해양국으로서의 천혜의 조건뿐만 아니라
습기 많은 서유럽의 날씨와는 달리 기후도 너무 좋다.
과거 영국의 지배를 받아서 인지 영국인의 별장이 많고,
영국인에게는 하기 휴양지로서 이곳을 최고로 꼽는단다.
과연 축복받은 땅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리스보아를 가로지르는 떼주 강은 스페인의 톨레도에서 시작되어
이곳 리스보아의 젖줄이 되고 있는데 강폭이 16km나 되어
이를 건너기 위한 2개의 명물 다리(바스코다가마교, 4.25교)가 있다.
'바스코다가마 다리'는 다리 폭만 16km나 되는데
상류에서는 동력배는 통행을 못한다 하는데 자연보호를 위한 조치라 하고,
다리 왕복이 32km로 달리기 코스로도 이용된다고 한다.
리스본에는 아직 한국인이 120명 정도 밖에 살지 않아 한국식당도 없어,
한국 관광객에게는 좀 불편한 요소가 되는데
중국 식당이 400개 정도가 산재해 있어 주로 이를 이용 한다고 한다.
포루투칼에서 유래된 말들이 많이 있다.
흔히들 사용하는 빵, 카스테라, 컵 등이 모두 포루투칼어이다.
임진왜란 때 우리가 어려움을 당했던 일본의 병기 조총도 일본이 포루투칼에서 수입했던 무기이다.
포루투칼도 여늬 국가와 같이 유로화를 사용하면서부터 물가가 뛰어 생활이 어렵다고 한다.
특히, 땅값이 뛰어 바닷가 휴양지는 뉴욕보다 비싸다고 한다.
38도선을 우리와 같이 가진 포르투칼은
해양국이라 해산물이 풍부하고 유럽의 아시아라고 할 만큼 쌀이 많이 생산된다.
레몬과 오렌지, 올리브가 많이 생산되고, 코르크의 세계 제1생산국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계속 보이는 것은 콜크 재료인 참나무, 올리브 농장, 그리고 오렌지 나무들이다.
그리고 대구, 정어리와 같은 생선이 풍부해 생선요리가 다양하다.
6월의 정어리 축제는 유명하다.
또한, 에스프레소 커피는 이곳의 명물이다.
진한 커피향 때문에 매니아들이 많지만 설탕을 타야만 마실수 있다.
포르투칼 제2의 도시인 포르트의 와인도 유명하다.
포르트 지방의 포도에 브랜딩하여 19%의 진한 레드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포루투칼의 주 소득은 관광상품이지만 그 외 농산물과 광물질인 돌,대리석 수출도 많다고 한다.
포루투칼 사람들은 무뚝뚝하고 부끄럼이 많은 민족으로 키도 작고 머리 색깔도 동양인처럼 검으며,
이웃인 스페인과 영국과의 지리,역사적인 분쟁으로 고통을 많이 받은 민족으로
우리와 동질감을 많이 느끼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에게 노쇼의 화신으로 불리우는 호나우드는 진상이다.
<3F의 포르투칼>
포르투칼하면 생각나는 세가지가 있으니 모두 'F'로 시작되는 말이다.
축구인 풋볼은 특히 포르투칼 사람들은 미친다. 우민화 하는 첫 번째 정책의 하나다.
그리고 애환의 한이 서린 국민노래 '파드'가 있다.
지난 1999년 79세로 작고한 포르투칼의 국민가수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는
3일간이나 국장을 치룬 파드의 대부이자 국민영웅이다.
'아말리아 로드리게스' 이후 최고의 '파두' 가수로 평가받는 여가수는 '미샤'인데
수년 전 가을 서울에서 공연을 가진 바 있다.
오랜 세월 포르투갈인들의 한과 삶의 애환을 달래 주었던 '파두'는
이제 프랑스의 '샹송', 이탈리아의 '칸소네'와 더불어 전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카토릭 성지로 꼽히는 '파티마'는 워낙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성모마리아가 발현한 곳으로 '루시아' 등 세 소녀가 목격한 곳이기 때문이다.
▼ 광장 중앙에 솟아 있는 원기둥 정상에는 독립 브라질의 첫 번째 왕인 '동 페드로 4세'의 동상이 있다.
▼ 그러는 와중에 광장의 중심인 분수사진을 건지게 되었고, 유명한 물결무늬 바닥타일이 함께 보인다.
▼ 광장 바닥의 무늬 타일 사진도 득템하게 된다. 예쁜처자 들은 덤이다!!
▼ 포르투칼 국기가 바람에 펄럭이는 이 건물은 확인이 되지 않는다.
▼ 시간은 부족한데 리스본 시내 도로 정체가 심하였다.
다행히 우리 드라이버가 이곳 포르투칼 사람인지라 길을 잘알아 요리조리 돌아 갈수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는 멘트가 흘러 나온다.
어느 순간 차창 밖으로 벨렘지구가 언뜻 보이더니 4.25 다리 밑으로 전용버스가 방향을 잡아 진행한다.
우리의 잠수교, 반포대교와 같이 2층 구조로 되어 있는 장면을 확보하게도 된다.
▼ 전용버스에서 하차하여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수상 비행기 모습이다.
이 수상 비행기는 1922년 이곳을 이륙해서 수상 비행기로는 처음으로 대서양을 횡단 행던 비행기로
벨렘탑 옆으로 리스본을 출발하여 남미의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횡단 비행에 성공한
쌍엽 경비행기로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 것이다.
▼ 그 수상비행기에서 떼주강 하구쪽 즉, 대서양 방향으로 벨렝 탑(Torre de Belem)이 바라다 보인다.
이 탑은 바스코 다가마의 원정을 기리는 '벨렘 탑' 으로 제르니모스 성당과 함께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탑은 강 하구로 넓은 잔디밭 위에 유도화가 지천이었다.
이 아름다운 유도화는 강력한 독성 때문에 독나무라 불리기도 한다.
독성의 위력은 청산가리 독성의 6천 배이며, 섭취할 경우 구토 복통 설사 증세를 보이며,
심할 경우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또한 나무를 태운 연기를 흡입하여도 치명적이므로 주의 해야되는데
해충을 방지한다 하여 포르투칼이나 스페인 유적지와 고속도로 중앙 분리대에 어김없이 피어있다.
15세기 후반에 존Ⅱ세는 강 남쪽에 Caparica에서 카스카이스와 상 세바스티앙(또는 토레 벨하)의 요새에 의존하여
구스의 입구에 대한 방어 시스템을 설계하였다.
이들 요새는 완전히 강의 입구를 보호하지 못했고, 추가적인 보호시설이 필요하였다.
이에 왕 마누엘에 의해 명령을 받고 건설을 위한 자재 763개의 리오즈 블록과 504개의 돌을 처음 받기 시작하여
로드리게스 프로젝트에 대한 재무를 뒷받침 받아 큰 목선 군함이 1000톤의 선박이 요새가 완공될 때 까지
구스의 입구에서 하구를 보호하는 리스본의 수호성인을 그려
'세인트 빈센트 탑'이라고도 부르는 벨렘탑(Torre de Belem)은
1515년 마뉴엘1세의 하명으로 군사 건축가 프란시스코데 이루다(Franciseo de Belem)의
설계로 짖기 시작하여 마누엘 사망전 1519년에 완공되었다
15세기 초반 주앙2세 시절부터 리스본을 방어하기 위하여 태주강 어구에 요새를 지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한다.
지금은 12m 폭에 30m 높이의 벨렘탑이 태주강 북쪽 강가에 붙어 있지만
건설 당시에는 태주강 가운데 있는 작은 섬에 세워졌는데
1755년 리스본을 강타한 대지진의 영향으로 흐름이 바뀌면서 섬이 강가에 가까워졌고,
벨렘탑은 테주강과 대서양의 경계를 표시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6각형의 보류와 직사각형의 4층탑으로 구성되는 벨렘탑은
리오즈(lioz)라고 부르는 연한 베이지색의 석회석을 사용하여 포르투칼 특유의 후기 고딕인 마누엘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하부 보루의 난간에는 강 쪽으로 17문의 대포를 거치 할 수 있었다.
1층에는 지사의방(Sala do Governador)으로 불리는 8각형의 방이 수조로 연결되고
북동쪽과 북서쪽 구석으로는 망루로 연결되는 통로가 나있다.
2층에 있는 왕의방(King′s Hall)은 강을 내려다 볼수 있도록 한쪽 벽만 있는 통로로 연결되며
구석에 있는 벽난로는
3층에 있는 청중의방(Sala das Audiencias)으로 연결되었다
4층에는 아치형 천장이 있는 교회가 있다.
1580년 스페인과의 전투에서 패한 다음 벨렘탑은 1830년까지 감옥으로 이용되었는데
이곳 1층에 갇힌 죄수들은 하루 두 차례 민물이 들어올 때마다
바닷물에 잠기지 않기 위하여 안간힘을 써야 하는 끔찍한 곳이었다 한다.
1655년에는 태주강으로 들어오는 배로부터 세금을 받는 세관과 배들이 태주강을 항해 할 수 있도록
도항을 지원하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그래서 이곳은 지중해의 관문이라 불리는 장소로
벨렘탑 내부로 입장하지 않고 벨렘탑 자체를 구경하려면 일몰시간에 맞추면 더욱 아름답다 하지만
우리는 입장도 못하고, 일몰시간도 아닌 지금 후다닥 인증샷만 남기고 떠나야 한다.
▼ 리스본으로 진입할때 이용하였던 4.25다리가 잘 보인다.
저 '4.25다리 (Cristo-Rei, with 25 April Bridge)'는 1962년 착공하여 4년만에 준공되었으며,
이 다리는 이중 교량으로 상단에는 자동차가 그리고 하단에는 기차가 다닌다.
처음에는 Salazar Brirdge라 불렀으나 1974년 카네이션 혁명이후
독재자로 찍힌 Salazer의 이름이 떨어진 대신 혁명 기념일 4월 25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이 다리는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와 똑 같은데 금문교 설계자가 똑같이 만들었다고 한다.
태주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의 길이는 2.3km 이다.
오른편 강건너 언덕(Almada)위에는 두 팔을 벌린 예수상이
높이 82.60m 양팔간격 28m 로 1959년에 준공되어 서 있는데 포르투칼의 식민지였던
브라질 리오 데자이네로 상징물인 구원의 예수상(1931년)을 그대로 복제한 것이라 한다.
그 4.25 다리 조감도와 예수상을 넷상에서 구하여 참고삼아 이곳에 옮겨 보았다.
▼ 대서양에서 불어 오는 강풍과 햇쌀을 맞으며 벨렘탑 앞으로 걸어가 사진 한장씩 건지고
제자리로 돌아 가게 된다.
'타구스(테주)강의 귀부인'이라는 별칭이 붙은 벨렝 탑은 1515년에서 1521년에 걸쳐 이뤄진
바스코 다 가마의 위대한 발견을 기념하기 위해 테주 강변에 세워진 건축물이다.
포르투갈 공식 홈페이지에는 스페인 출신의 수호성인 성 빈센트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탑이라 한다.
▼ 입구에 있는 수상비행기를 다시 만나고,
▼ 아스라이 보이는 예수상과도 이별을 준비하는데,
▼ 공원에 않아 담소를 나누는 청춘들이 아름답게 바라다 보인다.
▼ 공원 입구에 주차된 우리 전용버스를 다시 만나게 되는데,
▼ 아차차차~~ 한 녀석 빼묵었다. 바로 "발견 기념비"로 하마터면 큰일 날뻔 했다.
이 발견기념비(Padrao Descobrimentos)는 바스쿠다가마가 황해를 떠난 자리에 세워졌다는데
1960년 엔케리 항해왕 사후 500년을 기념하여 세워진 것으로 높이가 53m 이다.
항해 중인 범선 모양을 한 이 기념비는 수 많은 인물 조각상이 줄지어 서 있다.
맨 앞 뱃머리에 서 있는 사람이 앤리케 항해 왕이고
그 뒤에는 신천지 발견에 공이 큰 모험가 천문학자 선교사 등이 따르고 있다.
기념비 동쪽면에는 바람을 가득 안은 돛을 단 “갈리온선”의 선두에는 엔히크 왕자가 서있고
그뒤로는 동쪽과 서족의 경사면을 따라서 각각16명씩 대 탐험을 대표하는 군주.탐험가. 지도제작자.
예술가.과학자 그리고 선교사 들이 석회석으로 조각되어 있다
바스쿠다가마는 동쪽에 있는데 선두에 있는 엔히크 왕자의 뒤로 두 번째로 위치하고 있고
처음으로 세계일주를 한 마젤란은 엔리크 왕자 뒤로 다섯 번째 위치에 있다
발견 기념비 서쪽면에는 맨앞이 엔리크 왕자이고 모험가 천문학자 선교사가 따르고
포르투칼 국민시인 루이스 바스드 카몽이스( Luis Vaz de Camões 1524-1580)가
엔리크왕자 뒤로 여섯 번째 위치한다.
엔히크 왕자는 포르투칼 아비스 왕가의 왕자(Infante)이며, 초창기 포르투칼 제국의 주요 인물이다.
아프리카를 돌아 아시아로 나가는 항해로를 개척한는 것을 지원하였다.
포르투에서 아비스 왕가 시조 포르투칼 주앙1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Infante) 라는 단어는
왕위 계승자가 아닌 귀족을 말하는 것이다.
1415년 북아프리카의 회교도를 공격하여 공을 세웠으며,
1418년 이후 아프리카 서안에 많은 탐험선을 보내 항로를 개척하였다.
세인트 빈센트 곶에 천문대와 항해 연구소를 세웠으며
탐험 항해가들을 파견하여 마두라 보자도르 곶. 베르데 곶 등에 닿게 하였다
1446년에는 북위 약15°에 있는 감비아 강에 도달하였다.
이와 같은 그의 노력으로 인도항로를 발견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였다
형의 손자인 중앙2세 때 1481년 포르투칼이 식민지를 크케 확장하게 되는 기반을 다졌으며,
엔히크가 보낸 항해가들은 북아프리카 연안 대서양에서 마데일 제도 아소르소 제도 등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이런 발견과 더불어 그들에 대한 개척정신을 칭송하는 것은 유럽인들 기준이 된다.
여타의 다른 민족들에게 특히, 아프리카 계인들에게는 식민지 시대가 도래함과 동시에 노예무역이 극성을 이루게 되니
과연 이런 행위들에 대하여 칭송하는 대열에 나는 무작정 동참하지는 못하겠다.
▼ 다시 공원 앞을 지나면서 지하도로를 건너게 된다.
지하도로에는 잡상인들과 거리의 악사들이 활동하고 있는 모습은 우리의 지하도로 분위기와 별차이 없어 보였다
▼ 바스쿠다마가 정원 옆을 지나면서 제로니모스 수도원을 가장 가까이서 만나는 위치해 도착한다.
수도원 내부에는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눈길을 끌고 있으며,
높다란 천장을 받치고 있는 기둥과 기하학적인 천장 조각에 압도된다는데
성당을 지을 무렵 포르투칼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야자수 모습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포르투칼을 스페인에 통합시킨 필리페 3세가 1604년 제로니모스 수도원을 왕가의 묘소로 사용하도록 한 이래
포르투칼 왕실이 나라를 되찾은 다음에도 성모성당은 왕실의 묘소로 사용하였다 하고,
입구 좌우측에는 1880년 성당으로 옮겨진 바스쿠다가바와 루이스 바스드 카이몽스 두 사람의 석관이 있는데
당시 유명한 조각가 “코스타모타”가 신 마누엘양식으로 조각한 것이란다.
그리고 제단 밑에는 히브리어를 라틴어 성경으로 번역한 ‘성 제르니모’의 형상이 누운 채로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내부입장은 일정에 없이 이처럼 외관만 살펴 보고 지나게 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제로니모스 수도원 (Jerõnimos monastery)’
성 제로니모(St.Jeronimos)는 5세기 이탈리아 성인으로
성서를 처음으로 그리스어(히브리어)를 라틴어로 번역한 성인이다.
16세기 포르투칼 전성기를 이끈 마누엘 1 세(재위1495-1521)는
성모와 제로니모 성인을 기리던 엔리케 왕자를 기념하기 위하여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항로 무역에서 거둔 5%의 관세를 재원으로 하였는데 연간 황금 70kg에 달했다 한다.
후기 고딕의 마누엘 양식으로 지어진 수도원은 1501년 1월 착공하여 100년 뒤에 완공되었다.
디오고 드 보이타카(Diogo de Boitaca)가 처음 설계하고 후안 데 카스탈루(Juan de Castiho)가 이어서 건축을 맡았다.
마뉴엘 양식은 포르투칼에서 15-16세기에 걸처 발달한 특이한 후기 고딕 양식으로
당시 국왕 마누엘(Manuel) 1세의 이름을 따서 “마뉴엘 양식”라 불리고 있다.
세부적인 장식의 소재로서 배와 항해 용구 진취한 영대의 동식물 등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굵은 로프를 꼰 듯한 돌기둥의 조각도 그 특징의 하나다.
마뉴엘 양식은 장식 예술적인 성격이 강하다.
지리상의 발견 당시의 포르투칼의 사회상과 인물들이 지녔던
모험과 도전에 대한 열정과 자신감 등을 잘 들어 내는 상징적 의미를 전달하는 양식이다.
인근에 위치한 벨랭탑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 리스본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에그타르트를 시식할 시간인데
에그타르트의 원조라는 '파스테이스 드 벨렝(Pasteis de belem)' 앞에는 많은 손님들이 줄을 서서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 파스테이스 드 벨렝(Pasteis de belem)의 에그타르트는 수녀님들이 신부님들의 사제복을 세탁후 정리하면서
계란 흰자위를 사용한후 남는 노른자를 활용하기 위하여 만든 빵을 만들게 된 것이 그 유래가 된단다.
▼ 가계 앞에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손님들 모습으로 우리는 김신웅 과장 뒤를 쫓아 내부로 입장을 하게 된다.
▼ 새치기 하듯 입장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일행이 필요한 만큼 김신웅 과장이 사전에 예약을 하였고,
이곳 직원들과 상당한 친분이 있었던 결과물이 되는데,
▼ 점포 내부에도 많은 손님들이 에그타르트를 맛보기 위하여 장사진을 친 모습이다.
▼ 요넘들은 에그타르트가 아니고 자매품이 되겠다.
▼ 실내 매장 테이블에 않아 먹거리를 즐기는 모습을 비롯하여 내부전경을 비교적 꼼꼼히 앵글에 담아 보았다.
▼ 여기는 주방모습으로 손님 숫자에 어울린 만큼 많은 직원들이 제품만들기에 분주해 보였다.
▼ 등을 보이고 있는 덩치가 관리자인듯 들고 나가는 손님들 정리하느라 매우 바쁜 모습이었다.
▼ 우리는 그 에그타르트를 사들고 바스크 다 가마 정원(공원)으로 되돌아 와 그늘에 둘러 서서 시식을 하게 된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말랑말랑 하였는데 그 맛은 우리의 풀빵을 연상시키 면서 강한 단맛을 풍기고 있었다.
우리나라 제과점 일부에도 이곳의 에그타르트를 벤치 마킹하여 판매하는 곳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곳의 에그타르는 우리나라 제과점에서 판매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는데
한국의 에그타르트는 진짜 달걀로 안에 크림을 만드는 느낌이라면,
원조 에그타르트는 계란향이 나는 크림을 쓰는 느낌이다.
단맛을 좋아하는 이라면 제법 땡길만할 테지만 단것을 싫어라 하는 나의 입맛에는 굳이 먹지 않아도 될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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