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일차 (2019년 11월 4일)
2/6. 스르지산 전망대(Croatia, Dubrava Observation Point) - “옵션
제 5 일 전체일정(2019년 11월 4일)
1/6.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네움(Bosnia And Herzegovina, Hotel Nova)에서
두브로니크(Dubrovnik) 프란조 투즈만 다리(Franjo Tudjman Bridge)로 이동
2/6. 스르지산 전망대(Croatia, Dubrava Observation Point) - “옵션
3/6. 두브로니크 성벽(Gradske Zidine) 탐방
4/6. 두브로니크(Dubrovnik) 구시가지 탐방
5/6. 중식후 스플릿(Croatia, Split)으로 이동
6/6. 스플릿(Croatia, Split) 투어후 호텔 메데나(Hotel Medena) 입실
스르지산(Mt. Srd)과 전망대(Croatia, Dubrava Observation Point)
스르지산은 해발 415m로 구시가지 위로 병풍처럼 우뚝 솟아 있어
두브로브니크 시내와 아드리아 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조망터로
야경과 일몰로 많은 탐방객들을 유혹하고 있는 명당터이다.
스르지산에 오르는 방법은 산길을 걸어 가거나 케이블카 또는 소형차(택시가능)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다.
도보로 오르는 것은 오르는 동안 그늘이 없이 1시간 이상 소요되고,
가장 쉽게 오를 수 있는 방법이 약 778m 길이의 구시가지와 산 정상을 잇는 케이블카 이다.
케이블카 요금은 왕복으로 150쿠나로 한화로 약 26,000원 이다.
그러나 우리는 강풍으로 케아블카 운행이 중단되어
소형 승합차인 벤을 이용하여 전망대로 올라 가게 된다.
전망대 정상부에는 나폴레옹이 축성 했다는 '임페리얼 요새'가 있는데
지금은 독립 전쟁 박물관으로 활용해 유료로 개방하고 있다.
전망대 아래쪽에는 카페와 1808년 나폴레옹이 점령하면서 세운 거대한 하얀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데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구시가 전망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임페리얼 요새(Fort Imperial)
스르지산(Mt. Srd) 전망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요새로
두브로니크를 점령한 나폴레옹이 1806년 축성하기 시작하여
1812년 8월 15일 나폴레옹의 생일에 완공된 군사시설로
현재는 유료 박물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 박물관에는 크로아티아 독립전쟁중 두보로니크 포위 전쟁에서 사용되었던 무기, 포탄,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중세시대 당시 두브로니크 공화국은 산위에 군사요새를 구축하지 않았지만
나폴레옹은 이곳을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판단하여 요새를 축성하였다.
이후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은 오스만 제국 방어를 하기 위하여
이 요새를 더욱 튼튼히 개조하여 사용하였으며
1991 ~ 1995년에는 쎄르비아와의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시 두부로니크의 중요한 방어 역할을 했단다.
<스르지산 전망대 위치와 이동경로>
▼ 두브로니크의 관문인 '프란조 투르만 교(Franjo Tudjman Bridge)를 건너며
스르지산 전망대로 향하는데 두브로니크 시가지 입구에서 차가 서 있다시피한 교통체증을 이겨내며
구시가지 위로 조성된 도로를 따라 가게 된다.
▼ 스르지산 전망대를 가기 위하여 산길로 접어들자 아드리아 해와
그 바다에 인접하여 조성된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는 데 건물 지붕이 거의 주황색이다.
이 지방의 토질은 라테라이트 토질로 그 성질이 메마르고 거칠어 농경에는 불리하지만 벽돌 재료로는 제격이란다.
‘라테라이트토’는 붉은 색상으로 그 흙으로 진흙을 만들어 지붕 재료로 사용하고 구워서 지붕을 만들었다.
그래서 모든 지붕이 붉은색인데 이것은 터키의 시린제를 방문했을 때도 보았던 현상과 일치하게 된다.
▼ 두브로니크 앞바다에 홀로 떠 있는 로쿠룸 섬(Lokrum)을 조망하며 승합차는 전망대를 향하여 계속 전진하면서
고도가 높아지자 아랫마을 두브로니크의 전경이 하나 둘씩 그 꺼풀을 벗어 내게 되고,
그것을 바라 보는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 잠시 평탄한 도로를 따르더니 사람이 살기 위한 흔적인 건물들이 사라지고
키작은 나무와 바위들이 등장하며 좁고 언덕진 도로를 지나는데 승합차의 엔진소리가 힘겹게 들린다.
외견상 괜찮아 보였던 승합차의 연식이 제법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 스르지산 조망터
급한 언덕길을 지나자 최팀장의 하차 명령(??)을 받고, 차에서 내려 상황을 파악하자니
이곳이 뷰포인트로 사진을 찍고 가자는 것이다.
이곳은 잠시후에 만날 스르지산 전망대와 비교해 보면
정상에 위치한 전망대 보다 이 조망터에서의 풍광이 더 잘 보이는 곳이었다.
본래 일정 그대로 케이블카를 이용했더라면 이 조망터는 못 보았을 것이니 강풍이 우리에게 선물을 준 기분이다.
최 락진 팀장은 붉은색 페인트로 칠해진 사진 포인트에서
모든 참석자들의 사진을 직접 찍어 주는 친절도 베풀어 주게 된다.
우선 두브로니크 구시가지 전체를 잡아보고,
▼ 좌측의 로쿠룸 섬(Lokrum) 일부와 우측의 두브로니크 이반요새(Fort St. Ivana)를 함께 잡아 본다.
아내가 않아 있는 작은 바위가 붉은색으로 하트 표시를 해 놓은 곳으로 사진이 가장 아름답게 표현 되는 장소이다.
그 주변에서 모든 참석자들이 저마다 사진찍기 신공을 펼쳐내는데 스르지산 전망대 통신탑이 올려 다 보이기도 한다.
▼ 핸드폰으로 한번 더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으로 두브로니크의 구시가지 전체와 성벽,
이반 요새와 어우러진 아드리아 해 그리고 빨간 모자를 쓴 건물들이 한눈에 보인다.
이것을 저녘 노을과 함께 감상하고 도시에 불빛이 들어오는 야경을 즐기게 된다면
'버나드 쇼'가 말한 그대로 지상낙원으로 보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판단이 든다.
그러나 우리는 그 노을을 만날 수 없는 일정이다.
자다르의 석양을 보지 못한 것과 같은 현상이 되겠다.
▼ 그 조망터에서 바라 본 전경으로 전망대의 통신탑과 오래된 성벽의 흔적들이 바라다 보이니
중세시대 베네치아인들로부터 시작한 전쟁의 상흔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 스르지산 전망대(Croatia, Dubrava Observation Point)
그 조망터 지근거리에 있는 전망대에 도착하는데 '임페리얼 요새'앞 공터에 주차를 하고
전망대의 조망터로 이동을 하면서 스르지산 전망대 탐방을 시작한다.
▼ 전망대 조망터에서 로쿠룸 섬(Lokrum)과 구시가지 유적지를 한 장면에 담아 보니
두브로니크의 완벽한 모습이 환상적으로 바라다 보이는데
특히, 아드리아 해안선과 맞닿은 성벽과 마을 외곽을 방어 해주는 성벽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바라 보인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전선줄로 인하여 사진에 흠이 생기니 조금전 만났었던 조망터의 전경이 더욱 좋아 보이는 것이다.
▼ 크로아티아 국기와 나폴레옹이 조성했다는 커다란 십자가를 잡아 보고
그 인근에서 한번 더 아랫동네를 재탐사 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 전망대 옥상의 조망이 좋다라 하여 그 옥상에 오르기를 시도했건만 이곳도 강풍으로 진입불가라 한다.
▼ 임페리얼 요새(Fort Imperial)
전망대 옥상 오르기를 포기하고 이곳에 도착하여 처음 만났었던 임페리얼 요새(Fort Imperial)를 만나러 가 보았다.
두브로니크가 발아래에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곳의 전략적 가치를 알아보고
요새를 구축했던 나폴레옹의 숨결이 닿은 곳으로 지금은 전쟁박물관으로 사용한다는 요새의 성벽 외관을 탐색한다.
성벽 외관에는 1991년에 쎄르비아를 상대로 한 크로아티아의 독립전쟁을 했던 참혹한 사진이
역사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독립의 의지를 표현하듯 전시되어 있었다.
성벽일부가 훼손된 것은 전쟁의 흔적인지 자연적인 풍화작용에 의한 훼손인지 알수가 없었다.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 역사처럼 수많은 외침을 받았던 크로아티아의 역사를 잠깐 살펴보고 가본다.
<크로아티아의 역사 간략 정리>
기원전 3세기에 일리리아족이라 불리던 크로아티아 조상들은 해안에서는 로마와, 내륙에서는 켈트족과 교류했고,
4~5세기에 걸쳐 고트족과 훈족의 침입을 받았다.
6세기 이후에 슬라브족이 대대적으로 들어 오고 7~9세기 에는 프랑크 왕국과 동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925년 트미슬라브가 왕위에 올라 서면서 나라를 통일했고 카톨릭으로 개종했다.
1200년 대에는 베네치아의 계속된 공격으로 달맛시안 해안의 일부를 빼았겼고, 15세기부터는 오스만 투르크의 공격으로
헝가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결국 1868년 헝가리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1918년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이 되었만
1991년 6월 독립을 선언하면서 쎄르비아와 내전을 치루었다.
결국 크로아티아는 1992년 EU, 유엔의 독립승인으로 역사상 가장 추악한 전쟁이라고도 불리었던
내전에 종지부를 찍고 독립국가로 탄생하였다.
표면적으로는 독립이지만 실제로는 종교와 인종의 차이로 인해 벌어진 내전으로
사망 30만명, 행방불명 15만명으로 20세기 최대의 비극중 ㅎ한나로 손꼽힌다.
지금은 전쟁의 아픔을 잊고 평화로운 분위기 이지만 많은
크로아티아인의 가슴에는 씻기지 않는 전쟁의 상처를 남기게 되었다.
▼ 그 요새 인근에 묘지 1기가 보인다.
묘지의 주인공을 확인한바 크로아티아 독립전쟁에 참전하였다가 19세 어린나이에 전사한
”로베르트 이브지츠(Robert Ivusic)"묘로 크로아티아군 163여단 소속의 군인이었다.
아마도 그가 참전했던 독립전쟁에서 이 요새를 지키기 위하여 큰 공을 세운 영웅이 아닌가 싶다.
▼ 이제 이 스르지산 전망대에서 볼 것은 다 본 것 같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 전망대 내부에 있는 카페에서 아내와 함께 맥주 한잔의 여유를 갖으며
이번엔 실내에서 아랫동네를 바라다 보게 된다.
내가 주문한 이 팬(PAN) 맥주는 칼스버그(Carlsberg) 소유의 회사에서 제조한 것으로
크로아티아 어디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국민 맥주 중에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라거와 유사한 맛으로 부담 없이 마시기 딱 좋다고 알려진 맥주로
37쿠나로 제법 비싼 가격인데 이곳이 산 정상에 있는 카페임을 감안해야 하겠다.
▼ 카페에서 맥주 한병을 아내와 함께 나누어 마시고 크로아티아 맥주 맛을 경험한 후 아랫동네로 출발한다.
드디어 두브로니크의 속살을 만나러 가는 것인데
내림길에서는 좁고 꼬불꼬불한 도로의 사정으로 올라 오는 차량들과의 교행이 불가능 할 정도였고,
그로 인하여 우리가 탄 차가 수시로 빽을 하기도 하면서 이동하여 구시가지 상부에 있는 도로변에서 하차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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