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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기해년

문경 탄항산(월항삼봉), 부봉, (2019년 10월 20일 )


산행지 : 탄항산(炭項山,856m,월항삼봉(月項蔘峰), 부봉[釜峰 935m],

(위치)   경북 문경시 문경읍,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산행일 : 2019. 10. 20

행사단체 : 까치산악회

산행거리 : 11.7km/트랭글 측정거리

산행시간 : 6시간 35(시작 09:42, 종료 16:17) - 휴식시간 : 1시간 53

실 산행시간 : 4시간 42

평균속도 : 2.4km

날 씨 맑 음

 

주요구간별 소요시간 :  07:08분 구리시 출발

                               09:33 하늘재 도착

09:42분 산행시작

10:05분 모래산

11:01분 탄항산(2.0km 지점

11:29분 평천재(3.0km 지점) - 급한 오름 길에서 간식 : 휴식 8

12:12957 고지(간식, 막걸리) - 휴식 : 25

13:03분 부봉삼거리(4.8km 지점)

13:14분 동암문 : 중식 55

14:42분 동화원

14:55분 간식타임 : 25

15:41분 조령 3관문

16:17분 고사리 주차장(11.7km 지점)



  까치산악회는 한달에 2회 산행을 한다. 그런데  나는 1년치 참가회비를 선납한 관계로 산행에 빠질 수 없는 입장인데 어느새 2주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마산을 찾은 것이 수 일전 같은데 오늘은 탄항산과 부봉을 찾는 날이다.

당초 고지된 산행코스는 하늘재 ~ 탄항산 ~ 부봉을 거쳐서 고사리 주차장으로 하산하는 코스였으나 부실해진 내 발목이 걱정되어 나는 부봉을 오르지 않고

부봉삼거리에서 동암문 ~ 동화원 ~ 조령3관문 ~ 고사리주차장으로 홀로 계획을 세웠고 이를 최 경수 대장에게 넌지시 알려 주었더니 회원 몇 명을 제외한

거의 전원에게 나의 코스를 권유하게 되었다.

 

  이 코스는 내가 백두대간 산행시 희양산에서 갈비뼈 부상을 당하고 불과 2달여 만에 봉현의 지원을 받아 희양산 ~ 백화산 ~ 이화령 구간을 마치고 이화령에서

비박을 한후 이화령 하늘재 구간을 이틀에 걸쳐 걸었던 추억의 구간으로 약 16년 만에 이곳을 다시 만나게 되는 날이었다.

 

  그 추억속에 갇혀서 그런 것이었나??

탄항산까지는 그럭저럭 정상적인 산행을 하였었는데 평천재를 지나면서 잠시 간식을 하며 배를 채운 이후 그 부근에서 함께 했던 회원들과 잡담을 나누며 거북이

산행이 되더니 동암문에서는 점심식사를 1시간 가까이 하는 등으로 전체적인 산행이 늘어져 버린 그런 추억의 산행이 되고 말았다.

   


<탄항산 부봉 등산지도>






이동하는 버스안에서 꾸벅구벅 졸고 있는데

산행준비를 하라는 최대장의 마이크 목소리에 부시시 잠을 깨며 등산화를 신으며

산행 준비를 하게 된다.


16년 만에 찾은 하늘재다!!

버스에서 하차 하자 마자 나는 하늘재 주변을 탐색하는데

우선  "하늘재 지킴쎈터"가 눈에 띄고

비포장길로 마사토로 이루어졌던 곳을 시멘트로 깔끔히 포장해 놓았다.


그리고 저 지킴터 뒤로 대간 마룻금이 있었는데

지금은 나들목 입구가 바뀌어 나무계단길로 오르 내리게 하고 있었다.


산행 준비를 하는 회원들 뒷편으로 포함산이 자리하고 있었고,


게립령 유허비를 다시 만난다!!

"충주 계립령로 하늘재(525m)"

충주 계립령로 하늘재는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대원지에서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까지 연결되는 고갯길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아달다왕 3(서기156)에 개통되었는데, 이는 죽령보다 2년 앞선것으로 가장 오래된 고갯길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삼국시대 군사적 요충지로 고구려가 남진할때 가장 중요한 거점이 되었으며, 신라가 북진할때에도 길목이 되어 충주지방을 확보하는 통로였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이 고개를 넘어 금강산으로 향하던 중 보물 제96호로 지정된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을 조성 하였으며,

 태자의 누이 덕주공주는 석조여래입상과 마주 보이는 월악산 영봉아래에 덕주사 마애불을 조성하고 이곳에 머물렀다고 전한다

 

계립령은 시기마다 이름이 달랐는데 신라시대에 계립령, 고려시대에 대원령으로 불리었으며 대원령을 풀이하면 한울재가 되는데

 한울재가 조선시대로 내려 오면서 하늘재로 바뀌었다.

 한훤령은 하늘재를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부근에 한훤령산성이 위치하고 있다.   "안내판 내용"


그리고 새로 만듯 것으로 보이는 포암산 안내판을 만나고,


09:42분 산행시작

언제 만들었는지 모르는 나무계단길을 오르며 추억의 구간에 빠져 든다.


그런데 그 계단을 오르자 넓은 공터가 등장하더니

그 공터에 "백두대간 하늘재"라 음각해 놓은 비석을 만나고

이곳 공터에서 베낭을 벗고 준비운동을 하며 탄항산을 만날 준비를 한다.





준비운동을 끝내고 몇 걸음 옮기자 추억의 현장을 만나게 된다.

푸른 물통 저장탱크에서 검은 호수를 통해 물이 시원하게 콸콸 솥아지는 모습인데

대간 산행시 나는 저 호수물에 등목을 하였었는데 그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 하다.


거기서 조금 더 진행하자 예전에는 없었던 오미자 농장이 좌측에 자리 하고 있었고,

그 농장을 지나자 나무계단길이 등장하는데

그 나무계단길은 급한 오름길이 되겠다.



이마에서 비지 땀에 가까운 물을 흘리며 올라 서자,


10:05분 모래산

모래산이라는 지명을 만나는데

내 기억에는 없었던 모래산이 되겟고,

그곳에는 부봉삼거리까지 4km라는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 모래산에서 등로는 내림길로 바뀌고,



완만한 오르막을 올라 게 되는데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월악의 자태가 바라다 보이기 시작한다.


이어서 기묘한 바위 2개를 지나더니



월악산은 더 크게 보이고,


월악 영봉이 확대 되어 다가 온다.


사진을 찎는 나를 추월해간 회원들이

바위 위에서 다리 쉼을 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고,


그 바위 인근에 올라 서자 이정표가 등장하는데

등로 한쪽에 마치 사람 시체를 연상시키듯한 무언가가 쓰러져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니 이정표를 새로이 설치하려는 듯 부직포로 포장 되어 있는 이정표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좌측으로 보이는 부봉을 대면하게 된다.

그러나 난 오늘 저곳으로 가지 않을 계획이다.

성치 않은 발목을 보호하기 위해서....



11:01분 탄항산(월항삼봉, 856.7m)

모든게 다 바뀌었지만 정상석 만큼은 바뀌지 않은 탄항산을 다시 만난다.

 이 탄항산(炭項山 856.7m, 월항삼봉(851)은 충북 충주시 상모면 월악산국립공원 남단에 위치하며

가까이 마의태자의 전설이 깃든 미륵사지와

고대 삼국시대부터 호서 영남을 잇는 하늘재를 감싸고 있는 아기자기한 산세를 가지고 있는 산이다.


세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서 있다 하여 삼봉이라 부르나,

 예전에 산삼이 많이 난다 하여 삼봉(蔘峰)이라 부르기도 하며, 또한 탄항산(炭項山)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곳이다.


여기에서 회원들과 인증샷을 날리며

탄항산에 설명을 곁들여 주며 추억에 빠져든다.



올라오면 당연히 내려가야 하는 우리네 인생처럼

등로는 내림길로 이어진 후,


11:29분 평천재

지도상의 평천재를 만난다.

그런데 지도에서는 이 평천재에서 동암문르로 직접 갈 수 있는 등로가 표현되어 있는데

이곳이 지리적 환경에는 그 등로가 없었다.

아마도 사람들 출입이 없으니 그 등로를 수풀이 차지했는가 보다.


애초에 나는 이곳에서 동화원으로 직접 진행할 계획이었는데

하는 수 없이 부봉삼거리 방향의 오름길을 통과 해야 했다.



그 평천재에서 깔딱고개를 오르는데 허기진 배가 무언가를 요구한다.

한 번의 깔딱을 올라서서 빵으로 간식을 하며 8분간 쉬어 가는데,


때때옷으로 갈아 입고 있는 녀석들을 만난다.



그리고 부봉삼거리를 만나기 위하여

무지막지하게 올라 서야 하는 계단길에서 헉헉... 하며 땀을 흘려야 했다.



12:12분 957고지(휴식 25분)

그 나무계단 길을 오르자 지도상 957 고지다.

모두의 배꼽시계가 일치하는지 베낭을 풀어 허기를 채운다.





꿀맛 같은 간식을 마치고 다시 한번 계단길을 만나는데

이번에는 내림길 계단이 등장하니 모두들 한마디씩 내 던지게 된다.

내림길 계단은 무릅을 망가트리는 주범이기에....


그 나무 계단 처음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부봉인데

저곳에도 계단을 조성해 놓은 모양새이다.


저 부봉은 917m의 높이로 가마솥을 엎어 놓은것 같다 해서 부봉이라고 한다는데

나는 오늘 저곳을 오르기를 포기하고 있는 것으로

 조령3관문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이곳 부봉에서 6봉을 지나 조령3관문으로 가는 원점회귀나,

조령2관문쪽으로 하산하는 산행도 권장할 만 하겠다.



13:03분 부봉삼거리

조금전에 바라 보았던 부봉을 오르는 길목인 부봉삼거리를 만나지만

오름 계단길을 외면하고 우측의 동화원 방향으로 진행을 하는데

주위의 모든 회원들이 동행을 하게 된다.

물론 앞서간 회원들은 부봉을 올랐을 게다.




14:42분 동암문(간식 55분)

추억이 곁들여진 동암문 사거리를 만난다.

여기서 우리가 간식을 하는 사이 부봉을 올랐던 회원들이 속속 도착하는데로

간식 대열에 합류하는 형국이 되어 근 한시간 가까운 시간을 소비하게 되었다.


한편, 이곳 동암문은 사거리 갈림길로

백두대간 마룻금상에 있는 중요 길목이 되겠다.


그런데 이정표에 평천재로 향하는 등로에 "탐방로 아님"이란 표찰을 붙여 놓은 모습이 보인다.

본디 이곳에서 사진상에 보이는 성벽사이로 쭈욱 직진하면 부봉삼거리를 거치지 않고

평천재까지 이어지는 등로를 내가 지났었는데

무슨 사연으로 이 등로의 진입을 막아 놓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사거리 갈림길을 강제적으로 삼거리길로 축소, 변형시키고 만 것이다.


비교적 느긋하게 간식을 마치고 주변정리를 한후

동화원 방향의 하산길로 진입한다.







14:42분 동화원

오늘 코스중 중요한 길목중에 하나인 동화원을 만난다.

여기서 좌측은 조령 1관문 방향이지만

오늘 우리는 3관문 방향으로 진행을 해야 하는데

잠시 등로가 헷갈려 의도하지 않은 짧은 알바를 하게 된다.



즉, 동화원 건물에서 우측으로 진행하여

바로 이 숲길로 진행을 하는데

누군가 빽을 해야 한다 하여, 되돌아 임도길로 진행을 하게 되었다.





결국 올바르게 잘 가고 있던 등로에서 되돌아 내려와

관광도로에서 이 안내판을 만나 조령 3관문 방향의 장원급제길을 이용하게 된다.


동화원에서 장원급제길 방향으로 꺽여져

잠시 걷던 일행들이 남아 있는 먹거리 모두 해결하고 가자고 다시 판을 벌인다.

가뜩이나 늘어진 산행이 지루하였던 나는 동참하기 저어 되었지만

어쩔 수 없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맛나게 먹고 있는 회원님들 모습만 바라보며

25분이란 시간을 또 소비하였다.



억지 춘향놀음 식의 간식을 마치고

엣 과거길을 이용하여 3관문 방향으로 산행을 이어 가는데

길목마다 무수한 안내판이 도배를 한듯 조성되어 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있으니

바로 낙동강 발원지가 되겠다.






드디어 오랜만에 만나는 조령3관문과 재회하게 되는데

과거와 바뀐 것이 있다면 음식냄새가 전혀 없다는 것으로

이 부근에서 각종 전을 붙혀 막걸리를 판매하던 포장마차(??) 등이 모두 사라지고

쾌적한 모습으로 정돈된 것이다.




15:41분 조령3관문

조령3문을 만나 나의 백두대간 산행 일지에 기록해 두었던 글을 옮겨 본다.

  옛고개 문경새재

  이화령에서 조령산을 타고 제3관문인 조령관에 도착하면 옛고개 문경새재다. 여기가 산들이 높고 험준하여 새들도 날아 넘기 어려운 곳, 또는 억새가 많은 곳, 혹은 새로 닦은 길이라 새재라고 불렸다고 한다. 조선 초부터 영남에서 한양을 오가는 가장 큰 대로(영남대로)였던 새재 길 중턱에는 경상감사가 교체될 때마다 서로 만나 업무와 직인을 인계인수한 장소로 사용하던 교구장터가 있다.


 1592년 임진왜란 때는 왜장 고시니 유키나가(小西行長)가 부산포에 상륙하여 한양을 향해 가장 빠른 길로 새재길을 택해 밀양, 청도, 대구, 상주를 지나 이 재를 넘었다 한다. 당시 조정에서는 신립 장군으로 하여금 왜군을 막도록 하였으나, 새재 협곡에서 왜적을 막자는 부하들의 간청을 뿌리치고 충주 탄금대에서 왜적을 맞아 싸우다가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말았다. 이를 교훈삼아 조정에서는 1594년 새재 중간 협곡에 제2관문을 설관하고 왜군의 재침략을 대비하였고, 병자호란(1636) 이후 1708년 숙종 때는 제1, 3관문을 설관하고 석성을 둘러 쌓았다.


  ♣ 문경새재(조령)

  백두대간(백두산지리산)의 등뼈를 이룬 고산준령이 병풍처럼 이어져 충북과 도계를 이룬 천험의 요새인 조령(鳥嶺)은 새재계곡따라 3관문까지 이어지며, 조선시대부터 영남에서 한양으로 통하는 가장 큰 대로(영남대로)로서 [영남]이란 명칭도 조령의 남쪽지방이란 뜻이다. 조령의 다른 이름인[새재]는 새도 날아넘기 힘든 고개, 또는 억새풀이 많은 고개로 풀이되고 있으며 [고려사]에는 초점(草岾),[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조령(鳥嶺)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의 교통여건으로는 낙동강과 한강을 잇는 가장 짧은 고갯길이었던 새재는 영남의 선비를 비롯한 보부상, 영남의 세곡(稅穀)과 궁중 진상품등 각종 영남의 산물(産物)이 새재길을 통해 충주의 남한강 뱃길과 연결되어 서울 한강나루터에 닿았으니 새재는 한강과 낙동강의 수운(水運)울 활발하게 연결시켰던 교통의 요충이었고 또 조령산성, 조령원터를 비롯하여 수많은 문화유적들이 남아있는 역사의 현장이며 [신립장군과 새재 여귀], [새재 성황신과 최명길에 대한 전설]등 숱한 사연이 전해져 오고 있는 곳이다.


이제 새재는 역사 속의 수많은 사연들을 가슴에 묻어두고 옛 오솔길로 남아1966년 사적지 제147호로 지정된 문경관문과 1975년 조령의 정상부인 충북과의 경계까지100의 도로와 주변을 정비하면서 새재는 개발의 초석을 놓았으며, 그 후 198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관광지로서 본격적인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예 추억을 곰씹으며

이화령 방향과 마패봉 들머리를 확인하고 그 3관문을 넘어 간다.






3관문을 벗어 나자 이곳의 모습도 바뀌였다.

이곳에는 소형주차장이 있어 관광객을 나르는 택시도 있어

대간꾼들에게 중요 탈출로로 이용되던 곳이였건만 그런 모습이 자취를 모두 감추어져 있다.


뒤돌아 서서 반대편의 조령3관문을 확인하고,


제법 그 수가 많은 안내판들을 확인하며, 3관문을 벗어 나는데,




조령관을 만나면서

벡두대간 산행일지의 또 한대목을 이곳에 옮겨 놓는다.


백두대간의 큰 줄기가 힘차게 지나가는 조령의 고갯마루. 충청도 땅과 경계를 이루는 조령관은 비가 올 때 용마루에서 남쪽 기왓골을 타면 흘러서 낙동강으로 들어가 남해로 빠지고, 북쪽 기왓골을 타면 한강으로 접어들어 서해로 유입된다. 조령에 올라 조령관 지붕을 쳐다 보며 이 작은 자연의 이치를 가만히 생각해 볼 때 조그마한 틈새가 궁극에 가서는 천양지차로 벌어진다는 새로운 깨달음을 맛보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신선봉 들머리를 지나며 이제는

고사리주차장을 향해 포장길을 따라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는데

오늘은 시간 개념없이 맨 후미가 되어 버린 형국이다.







주차장에 근접하였는지

밀집된 상가지대를 통과하여,




16:17분 고사리 주차장(11.7km) 지점

난생 처음 고사리 주차장을 만나며 길게 늘어졌던 그런 거북이 산행을 마무리 하게 된다.

다시 만날 때는 부봉을 꼭 오르리라 다짐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