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 대청도 제 2 일차
5. 심청각, 서해 최북단 기념비, 사자바위, 콩돌해변과 백령도 냉면
<백령도 관광 개념도>
<백령도 2일차 트랭글 궤적>
<백령도의 전설과 해병대 그리고 백령도>
2박 3일의 전체 여정중 백령도에서 1박 2일을 보내는 일정이니
오늘 오전에 투어를 한후에 대청도로 건너 가야 한다.
언제 또 만날 지 모르는 백령도에는 애틋한 사랑의 전설이 내래져 오고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 보고 간다.
황해도 어느 마을에 똥구녕 찢어지게 가난한 선비가 있었는데 고을 사또의 딸과 사랑을 나누었다.
둘이서 밤마다 몰래 월담하여 깊은 정을 나누니
이를 안 사또가 대노하여 선비를 바다로 쫒아냈다.
사또의 딸과 굳게 재회를 약속하며 떠난 선비는 어느 섬에 도착하여 공부를 계속하면서
사또의 딸을 그리워하고 만나게 될 날만을 기다리며 지냈다.
하루는 하얀 학이 날아와 종이 한 장을 떨어 뜨리니 그것은 사또 딸의 연서였다.
선비가 답장으로 자기의 위치를 알려주자
학이 전해준 쪽지를 받은 사또 딸은 선비가 있는 곳으로 찾아와
함께 지지고 볶으며 잘 살았단다.
그 때부터 사람들이 그 섬을 흰 ‘백(白)’자, 날 ‘령(翎)’자를 써서 백령도(白翎島)라 불렀단다.
한편, 백령도에는 인천에서 하머니 플라워를 탈 때부터
해병들이 많이 보이는데 백령도는 주민이 4,500명이고 해병대 군인은 5천명이나 된단다.
인천에서 서북쪽으로 228km 떨어져있는 이 섬은
북한의 황해도 장연과는 직선거리 10km, 장산곶과는 15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남쪽으로는 대청도를 마주 보고 있다.
또한, 백령도 서북쪽의 두무진과 북한의 장산곶 중간에는
만고효녀 ‘심청’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위해
뱃사람에게 공양미 300석에 몸을 팔아 바다에 빠졌다는
인당수가 사나운 물결을 꿈틀거리고 있다.
동쪽 해안선은 작은 만을 이루고 있어 예로부터 항해 중에 어려움이 생기면 피난하는 곳으로 이용되었다.
그래서 이 섬은 신라시대부터 중국과 배로 왕래할 때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였다.
▼ 오전 8시경 어제 점심식사를 하였던 '뚱이네 맛집'에서 아침 식사를 하며 일정을 시작한다.
지난 밤 만취할 정도로 마신 술의 양과는 전혀 관계없이 맛나게 먹어 치운다.
반찬을 아끼려는 주인장과 신경전(??을 해가며 서너번씩 리플을 요구해야 했었다.
▼ 첫번째 일정으로 심청각을 찾아 가게 된다.
1975년부터 지역주민들이 건립을 추진해온 심청각은 각계에 고증을 구하여
고전소설 심청전의 주 무대인 백령도에 1999년 10월 21일 세워지게 되었다.
20년의 고증작업 및 행정적 준비기간과 4년의 공사기간을 거쳐 진촌리에 세워진 것이다.
30억에 달하는 사업비를 들여 건립한 2층 규모의 심청각은
전통문화 발굴과 계승 그리고 효 사상을 고취시킬 관광지가 되었다.
아울러 50년 가까이 고향을 떠나 망향의 아픔을 가진 실향민의 향수를 달래주는 효과도 얻을 것이다.
심청’의 전설(1층)과 백령도에 관한 자료(2층)로 구성되어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이곳 심청각에서 장산곶이라는 북녘 땅을 볼 수가 있다는 장소이며,
좌측 앞바다는 인당수가 되겠다.
▼ 버스에서 하차 하자 바다 내음이 싱그럽게 다가 오는데
불행하게도 얕게 드리워진 안개로 북녘 땅과 인당수는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 지금 바라 보는 저 바다 건너편이 북한땅 장산곶인데...
아쉬운 마음에 자꾸만 시선이 돌아 가게 된다.
▼ 이 점박이 물범 안내판은 중요관광지 마다 조성되어 있는 듯 하고
그 옆에는 '심청이 동상'이 멋지게 조성되어 있으니 일행 모두가 인증샷을 하게 된다.
▼ '백령도에 와서'라는 이 석비문 뒤로 바라다 보이는 바다 저 건너편이 우리가 다알고 있는 '인당수'로
사진 한 장을 남겨 본다. 안개 없이 화창했었다면 얼마나 조을까 하면서...
▼ 인당수 바다를 감상 한 후 심청각 실내로 들어가 관람을 하게 된다.
우선 1층부터 살펴 보게 되는데 심청이의 전설에 관한 내용들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시설물과 해설판들을 확인하면서 관람을 시작하게 된다.
▼ 심청의 출생부터 그에 관한 전설 내용이 뻭곡히 적혀 있는 해설판 전체를
차곡 차곡 쌓아 여기에 옮겨 보면서 어린시절 알게 되었던 심청이의 전설을 되집어 회상해 본다.
▼ 이 자리에 않으면 누구나 다 심청이가 된다는 것인지...
"오봉일월도(五峰日月圖)"를 배경으로 심청이 왕비된 것을 기념하자는 의미일텐데,
이 오봉일월도는 우리나라의 다섯 명산(名山)과 해, 달, 소나무를 그린 청녹색 그림으로
조선시대 때 임금이 앉는 용상(龍床)과 어진 뒤에 항상 장식으로 항상 등장하는 그림이 되겠다.
더불어 중국에도 이 일월도는 존재한다. 그러나 일본에는 알려지지 않은 그림이다.
▼ 이 보시게 한근!!
자네는 오봉일월도를 모르는 겐가??
다섯 봉우리 그리고 해와 달은 어디가고 사람만 보이는가??
에롸잇~~~~~(친구 한근이 촬영해준 사진 임. ㅋㅋ)
▼ 필히 다음부터는 이리 찍어 주시게...
▼ 백령도는 ‘심청’의 전설이 숨 쉬는 고장이기도 하다.
백령도에는 인당수에 빠졌던 ‘심청’이 용궁에 갔다가 타고 온 연꽃이 조류에 떠내려 오다가 걸린 곳이 연봉바위요,
연꽃이 밀려온 해안 동네가 연화리다.
‘심청’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위해 중국 선원에게 공양미 300석을 받고 팔려 간다.
중국 선원들은 서해바다를 왕래하면서 거친 파도를 피해야 했기에
‘심청’을 사서 물살이 급한 장산곶과 백령도 사이의 여울목에다 ‘심청’을 용왕님께 바친다.
그런데 이곳에 전하는 전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심청전과는 조금 상이하다.
‘심청’이 연꽃으로 환생한 것이 아니고 ‘심청’을 바다에 빠뜨릴 때
중국 상인들이 배에 있던 비단으로 ‘심청’의 온몸을 꽁꽁 싸서 빠뜨렸는데
‘심청’은 비단덕분에 바다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조류에 의해 황해도 덕돔포라는 포구에 떠밀렸단다.
그곳에서 그 마을 원님에게 불려가 원님의 아들과 혼인을 하고
맹인잔치도 원님이 열어 아버지를 만나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꽤 현실적이다.
한편, 2층에는 백령도와 그 주변의 입체조감도가 한 가운데 펼쳐져 있었고,
벽면에는 벽령도에 관한 자료들이 잘 구성되어 전시되고 있고,
창밖으로는 인당수와 북한 땅이 바라다 보인다 하지만 역시나 안개로 오늘은 시계가 제로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저 창문을 요즘 트렌드에 맞추어 개방형으로 시원하게 리모델링 했으면 했다.
▼ 2층 전시실 한 가운데 전시된 백령도 입체 조감도는 그 크기가 카메라 앵글 화면 하나에 담을 수 없어
여러 개로 나누어 촬영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 사진으로는 전체를 알 수 가 없어 조금 답답한 상황이다.
▼ 삼청각 관람을 마친후 본 건물을 한번 더 확인후 전용버스에 탑승하여 이동한다.
▼ 심청각을 뒤로하고 바다에 떠 있는 사자바위가 있는 고동포구로 향한다.
이곳은 방파제 안에 정박해 있는 작은 어선들과 주변 기암들이 어울려 환상적이다.
그런데 이 포구는 인적이 전혀 없었다. 그냥 조용하고 한적한 모습이다.
그리고 이 포구 진입로는 겨울이면 강풍에 날아온 모래가 1m이상 쌓여 도로가 없어 진단다.
그래서 백령도에는 곳곳에 방풍림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편. 이 조용한 어촌마을에 있는 사자바위는 바다 보다는 카멜레온을 닮았다고 설명해 준다.
아마도 이 바위를 사자바위로 이름 지을 당시 옛 선조들은 필시 카멜레온을 모른 것 아닌가 싶다.
▼ 고동포구에서 사자바위 사진 찍자 마자 바로 이동한 곳은 쇼핑쎈터이다.
백령도 특산물인 약쑥제조장인데 여사장님이 직접 백령약쑥 설명을 해 주시고, 시음도 하고 상품 설명도 해 주지만
나는 도통 관심이 없어 지루하기만 하였다.
다른 이들은??
아내의 전언에 따르면 무지 무지 많이들 구매 했단다.
나홀로 밖으로 나가 지루하게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 서해 최북단 기념비를 만나러 가는 길에 논을 지나치게 된다.
백령도에서 1년 동안 생산된 쌀로 백령주민들이 3년을 먹고 살수 있으며,
생산된 쌀은 우선 주민 보다 더 많다는 해병 군부대에 납품을 하고 있다는 설명를 들었었으니
저 논에 나의 관심이 더 가는 지도 모르겠다.
즉, 백령도는 대부분 평지 지형을 하고 있어 힘든 어업 보다는 농업이 주된 소득이란다.
▼ 백령호와 서해최북단 기념비를 함께 만난다.
어제 사곶해변 탐방을 하고 그냥 지나쳤던 곳이 되겠다.
백령도는 국내에서 14번째 큰 섬이었으나 화동과 사곶해안을 이어서
담수호와 매립지 100만평이 불어나 이젠 8번째 큰 섬이 되었단다.
백령호는 담수가 오래 가두어져 수질이 좋지 않아 요즘엔 등 굽은 고기가 잡히기도 한다 하고,
그 후유증으로 사곶해변의 백사장이 무르게 되어 비행기 이착륙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백령호 인근은 바다를 매립하여 황무지처럼 되어있고,
이 부근에는 백령도의 단 하나인 백령대교가 조성되어 있는데 대교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 조그만 다리다.
처음에는 전체를 다리로 놓으려고 했는데 예산이 맞지 않아 그냥 막아 버리고
끝에 5m 정도의 다리가 유일한 백령대교로 아래 사진 좌측부분이 되겠다.
▼ 백령대교(??)와 백령호 기념석 모습이 되겠다.
그리고 우리 마님!!
▼ 백령호 본류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수로 모습인데 내가 곧잘 낚시를 다녀었던 대호만 수로를 연상시킨다.
조성후 수 많은 월척을 토해 내어 주말 마다 수십만 조사들을 유혹했던 그 대호만도
지금은 오염되어 물에서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녹조가 뒤덮혀 다시는 그곳으로 출조를 하지 않게 되었는데
이 백령호도 마찬가지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지에서는 지금도 간척사업을 해대고 있다.
새만금도 지금 오염되어 썪어 간단다.
고인물은 썩게 되어 있지 않은가??
삼천리 금수강산은 다시 우리에게 돌아 올수 있을런지 걱정스런 대목이다.
▼ 그런 상념에서 벗어나게 해 준것이 있으니 지금 보게 되는 해당화 였다!!
말로만 들었 었고, 싯귀에서나 보았던 해당화가 만개한 모습을 여기서 만나게 되니 신기하기만 하다.
만개한 해당화 꽃은 노란 수술과 붉은 꽃잎이 잘 어우러져 썩어 가는 백령호의 기분 나쁨을 잊게해 주었다.
▼ 이제는 백령도의 마지막 코스인 콩돌해변을 찾게 된다.
인근에 있는 사곶해변과 더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콩돌해변이 되겠다.
콩돌 해변은 콩처럼 작은 돌이 깔린 해변이다.
콩보다 더 작은, 그러니까 잣만 한 돌도 많다. 알록달록 색깔도 다양하고 반들반들 윤이 나서 여간 예쁜 게 아니다.
전국에 작고 동그란 돌로 이뤄진 해변이 여럿 있는데, 백령도 콩돌 해변의 돌이 가장 작고 예쁜 것 같다.
파도가 밀려와 콩돌과 부딪히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맨발로 그 감촉을 즐겨 본다.
▼ 해변가에 조립식 건물을 지어 놓고 영업중인 음식점 앞 파라솔에 않아 콩돌해변을 즐긴다.
잠시후 만날 대청도를 바라 보며 서해최북단 바다에서 불어 오늘 솔바람도 즐긴다.
더불어 백령도의 막걸리도 즐겨 본다.
우리는 참으로 오랜 만에 느끼는 여유로움이 베어 나오는 시간을 만들어 간다.
▼ 길 어귀에 피어 있는 해당화를 또 만난다.
조금전에 만났었던 신비로움이 반감되기는 했어도 아직 그 여운이 남아 있어 한번 더 감상해 본다.
<백령도 콩돌해변 동영상>
▼ 백령도를 떠나기전에 한가지 할일이 있었으니 민생고를 해결하는 것이다.
메뉴는 백령도 냉면으로 이동하는 전용버스에서 백령도 냉면에 대한 설명을 자상하게 해 주신다.
그러더니 반반을 먹으란다!!
머가 반반이냐구??
물냉도 비냉도 아닌 반반!!
즉,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이 되는데 그 반반이 가장 맛난단다.
선택의 여지 없이 참석자 전원 반반으로 주문해 놓겠다 하니 선택의 여지가 자동으로 없어진다.
그냥 믿고 먹어 볼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게 만든다!!
우리가 찾은 냉면집은 잔듸식당으로 주인장 아주머니가 매우 친절하였었다.
▼ 백령도는 남한에서 보면 끝섬이고 북한에서 보면 황해도 앞섬이다.
이 거리에서 비롯된 차이가 남한 입장에서 매우 독특한 음식 문화를 낳았다.
백령도 밥상이 황해도 음식 문화를 거의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 보면 되겠다.
백령도의 황해도 음식은 전쟁 중에 내려온 피란민이 재현한 고향의 맛이 아니라 토박이가 대대로 지켜온 향토 음식이다.
이 백령냉면과 짠지떡에 황해도 음식 문화가 남아 있다.
돼지 사골로 낸 육수에 메밀이 많이 들어간 면을 쓰는 황해도식 냉면이 백령냉면이고,
찹쌀가루와 메밀가루로 반죽한 떡에 신김치를 넣어 찐 음식이 짠지떡이다.
짠지 떡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주인장 말씀 왈 예전부터 이곳에서는 김치를 짠지로 불렀단다.
허기사 김치라는 것이 배추를 염장해 먹다가 차츰 차츰 음식문화가 발달하면서
이것 저것 양념을 하여 지금의 김치 형태를 갖춘 것이니 김치를 그냥 짠지로 칭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지 않나 싶다.
그러나 짠찌 떡은 먹지 못하였다. 다음에 한번 더 올 이유가 성립된다.
백령도 밥상을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게 까나리다.
까나리는 양미리 새끼로 백령도에선 까나리로 만든 액젓으로 모든 음식의 간을 한다.
냉면에도 식초 대신에 까나리액젓을 넣는다. 멸치처럼 볶아서도 먹는다. 까나리가 멸치보다 가늘다.
위에서 말한 백령도 냉면과 까나리가 백령 팔경에 들어 가기에 설명이 길어 졌다.
▼ 메뉴판을 보아 허니 수육이 눈에 띈다.
흠~~~ 해장술 생각이 절로 나는 메뉴가 아닌가??
자동으로 한 접시 청하여 소주 잔을 받아 든다.
그런데 이 수육에서는 약간의 냄새가 났다. 아마도 도야지 선생을 육지에서 수송 해 왔을 것이니,
유통기간이 있어 그 동안 약간 맛이 간 즉, 재료가 신선하지 못한 것에서 오는 누린내 였었다.
차라리 짠지떡을 먹어 볼걸 하는 후회감이 베어 나온다.
▼ 그리고 기다렸던 백령냉면이다. 물론 반냉면이다.
내가 젤로 싫어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반'이다.
본디 면종류는 마다 하지 않은 식성이니
콩돌해변에서 마신 막걸리, 그리고 조금전 수육이 더해져 배가 찬 상태임에도 맛나게 먹어 본다.
육지에서는 이런 냉면 만날 수 없으니 말이다.
'☆ 국 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령, 대청도 7. 농여해변(나이테 바위)과 풀등 (0) | 2021.10.30 |
---|---|
백령, 대청도 6. 대청도로 이동(초록별 펜션) (0) | 2021.10.24 |
백령도, 대청도 4. 두무진과 백령도 유람선 (0) | 2021.10.09 |
백령도, 대청도 2. 용기포 등대해변 (0) | 2021.10.04 |
백령, 대청도 1. 제 1일차(인천연안여객터미널 ~ 백령도로 이동) (0) | 2021.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