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터 키

터키 6. 호텔조식 후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탐방


2017. 04. 04일 전체일정 : 히에라폴리스 및 파묵칼레 탐방 후 안탈리아로 이동하여 이안비치 탐


오늘은 히에라폴리스와 파묵칼레를 탐방하고 안탈리아로 이동을 하는 날이다.

어젯밤에 이어 지난밤에도 잠을 설치고 말았다. 6시간의 시차정도는 바로 적응이 될 것으로 예상 했었는데

어라?? 이게 그게 아니다. 시차 적응이 잘 않되고 있다.

하여, 오늘도 모닝콜이 오기도 전에 잠자리에서 기상을 하였다.

 

호텔식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히에라폴리스와 파묵칼레를 만났다.

히에라폴리스의 원형극장은 어제 에페소에서 경험을 하였었으나,

파묵칼레는 참으로 자연의 위대함을 보여 주고 있었다.

우리나라 강원도에도 석회암지대가 있어 카스트르 지형이 나타나는 곳이 있으나,

이곳의 석회암은 지층을 뚫고 나와 온천수와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세계유수의 관광지답게 모든 시설이 정갈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었다.

 

면제품 쇼핑을 한 후 지중해를 품고 있는 안탈리아로 이동을 하였다.

230km거리를 4시간 정도 소요되었는데, 이동중 Acipayam에서 점심식사를 하였고,

" 카페 몰라(CAFE MOLA)" 에서 잠시 쉬어 가기도 하였다.

점심식사 장소는 식당 간판도 보이지 않았고 건물도 오래된 것으로 엘리베이터도 이중문으로 되어 혼란을 주고 있었지만,

음식은 현지식으로 터키 여행중 가장 잘 먹은 한 끼가 되었다.

 

안탈리아에 도착하여 지중해 바다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는데

옵션으로 치루어지는 유람선 타기를 신청한 사람이 없어 자동으로 취소가 되자 시간이 많이 남아 돌게 되었다.

지루하게 비치에서 시간을 보내고 호텔에 체크인 한 시간이 17시가 조금 넘을 정도로 여유가 있는 일정이 되었다.

 

저녘 식사후 나홀로 하드리안 게이트 야간탐방을 다녀왔다.

한국에서 미리 확인한 거리는 지도상으로 왕복 약 12km 정도로 충분히 걸을 만 하다 판단하여 거리로 나서게 되었는데,

친절한 현지인을 만나 갈 때는 그의 차를 얻어 타고 이동을 하게 되었다.

 하드리안 게이트는 야간조명을 받아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으며,

구시가지 유흥가는 아직 시즌이 아닌지 소문처럼 소란스럽지 않아 혼자 걷기에 부담이 없었다.


<데니즐리시에서 안탈리아 이동경로>




2017. 04. 04(1) 호텔조식 후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탐방


1. 콜로쎄 테르말(Spa Hotel Colossae Thermal Hotel) 호텔에서 이동시간 : 20분 소요

2. 탐방시간 : 45


<콜로쎄테르말 호텔에서 파묵칼레 이동경로>



콜로쎄 테르말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였다.

그러나 내게는 눈에 띄게 먹을 것이 없었고 나홀로 식사를 하자니 입맛도 돌지 않았다.

굷어 죽지 않을 만큼 만 억지로 먹어 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써야 했으니 식사 시간이 매우 짧았다.

식당 종업원에게 오늘 하루 마실 얼음을 얻는 것으로 만족하고

식당 옆의 수영장과 주위를 관찰해 보았다.

 

이 호텔에 대하여 잠시 살펴보면,

1층의 레스토랑은 뷔페식이나 음식을 배열해 놓은 곳과 식사를 하는 테이블이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식사공간이 어마어마하게 커서 작은 체육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고,

중국인 관광객들로 인해 매우 소란스럽고 질서가 없어 보이는 분위기라는데 오늘 아침은 한가한 편이었다.

 

여름철에는 야외수영장 인근 카페에서 공연도 한다 하고,

온천장의 물은 파묵칼레에서 온천수를 끌어다가 공급을 하고 있다는데 수영복과 수영모가 있어야 한다.












물 사정이 좋지 않은 유럽에서는 여행중 물을 계속 사 마셔야 한다.

암만 그래도 해도 호텔에서 만큼은

기본적으로  물한병씩은 주고 있는데  이 호텔은 국물도 없었다.


혹시나 하여 객실에 비치된 물 2병을 갖고 나왔더니 가이드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물 값으로 5불을 내란다.

내 돈은 없으니 물로 반환하리다하고

도로 내어 주었으니 쓸데 없는 호기심으로 괜시리 가이드만 머리 아프게 한 것 같아 미안하였다.


이런 작은 소동을 겪으며

5시가 좀 않되어 기상을 하였고, 740분경 호텔에서 출발하여

파묵칼레와 히에라폴리스를 만나기 위하여 이동을 하였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설산을 바라보며 약 20여분 흐르자 이내 히에라폴리스와 파묵칼레가 있는 매표소에 도착한다.

참고로 히에라폴리스(Hierapolis)와 파묵칼레(Pamukkale)는 한 장소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며,

매표소를 통과하여 조금 지나면 우측 언덕에 히에라폴리스가 자리하고 있고,

 좌측 언덕 아래에 파묵칼레가 위치한다.

그러므로 이곳을 파묵칼레(Pamukkale)로 총칭하고 매표소도 한 곳이지만,

본 블로그에는 편의상 이를 구분하여 2개의 문단으로 나누어 작성했다.


<파묵칼레 탐방경로 및 위치도>


이른 아침인지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임데도 불구하고 한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저 멀리 설산이 보이는데 이곳 풍광과 잘 어우러지는 모습이다. 저 눈들은 한여름이나 되야  녹는 단다.







오랜된 성벽을 만나며 입장권을 받아 드는데 터키의 관광지,

박물관 등의 모든 입장권은 그 모양새가 똑 같았았다.












관광지 안으로 들어서면 우선 히에라폴리스 안내판이 반기고,

좌측으로 표층으로 베어 나온 석회석들이 보이며, 우측 산자락에 있는 히에라폴리스 원형극장이 저 멀리 보인다.

나는 파묵칼레는 뒤로 하고, 산자락으로 뛰다 시피 올라 섯다.

팀원들과 시간도 맞추고 더 많은 것을 만나기 위하여 여기서는 뛰기로 작심을 하였다.




그런데 지천에 널린 야생화 군락이 나의 시선을 잡아들인다.

이 모양, 이 지형은 백두산 종주시 마천루 직전에서 만났던 백두산의 야생화 지대와 너무나 흡사하였다.

이슬을 잔뜩 머금고 아침햇살이 비추는 이 야생화들을 먼저 잡아 보았다.



그리고 히에라폴리스의 원형극장을 만나게 된다.

이른 아침이라 그 어떠한 관광객도 아무도 없었고, 관리소 직원 한 명만 조그마한 관리소에 외로이 않아 있는 이곳. 

 15,000명을 수용했다는 이 원형극장을 나홀로 독차지 하고 한적하게 그 분위기를 즐긴다.




히에라폴리스의 원형극장을 동영상과 파노라마로 잡아 보았다!!




원형극장을 감상하고 같이 가자는 일행들의 고함을 뒤로 한채,

그리고 산위로 더 올라가 다른 유적지를 만나고픈 마음을 억누르고 

이제는 다시 파묵칼레를 향하여 올라 왔던 언덕길을 뛰다 시피 내려간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안탈리아에서 시간이 남아 돌아 갔었던 것을 생각하면 여기서 좀더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

그러나 어찌하랴~~

내려 가면서 올라 왔던 길이 아닌 조금은 험해 보이는 길을 택하여 오래된 고성의 흔적을 만나기도 한다.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 성스러운 도시라는 의미의 " 히에라 폴리스 "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는 로마에 이어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번성하였으며 11세기 후반 셀주크투르크족룸셀주크 왕조의 지배를 받으면서 ‘파묵칼레라는 현재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그러나 지배세력의 변천 속에서도 지속적인 번영을 누려왔던 히에라폴리스이지만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1354년 이 지방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도시 전체는 폐허가 되었다.  

대지진 이후 역사 속에서 사라진 도시를 1887년 독일 고고학자 카를프만이 발견하였고 이후 발굴 및 복원작업이 진행되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유적을  동시에 갖춘 이곳은 1988 유네스코 자연유산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출처네이버 백과사전

 

   [히에라폴리스]는 파묵칼레의 언덕 위에 세워진 고대도시다

 기원전 2세기경 페르가몬왕국에 의해 처음 세워져 로마 시대를 거치며 오랫동안 번성했다

 기원전 130년에 이곳을 정복한 로마인은 이 도시를 성스러운 도시(히에라폴리스)’라고 불렀다. 그리스어 히에로스는 신성함을 뜻한다.

이곳에는 로마시대의 원형극장, 신전, 공동묘지, 온천욕장 등 귀중한 문화유적이 남아 있다.  

원형극장은 최대 1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으며 1,200기의 무덤이 남아 있는 거대한 공동묘지도 있다.  서아시아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 유적 중에 하나인 이곳에는 지금도 수많은 석관들이 뚜껑이 열리거나 파손된 채 여기저기 널려 있다.

 테르메라고 하는 온천욕장은 온욕실과 냉욕실은 물론 스팀으로 사우나를 할 수 있는 방, 대규모 운동시설호텔과 같은 귀빈실, 완벽한 배수로환기장치까지 갖추고 있었다.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 파묵깔레는 자연 문화 복합유산이다.

 파묵깔레가 자연유산이라면 바로 윗쪽의 히에라폴리스가 문화유산인 셈이다.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의 히에라폴리스는 B.C. 190년 페르가몬의 에우메네스 2세가 로마와 셀레우코스 왕조와의 전쟁에서 로마편을 들어 그 공적을 인정받아 이 도시를 얻게되자 페르가몬의 시조 텔레포스의 아내 히에라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1세기 초에 지진이 있었으나 2~3세기에는 도시의 황금기로 많은 건물들이 지어졌으며 비잔틴 시대에는 기독교의 중심지로 변하기도 하였지만 1354년 격렬한 대지진이 일어나 사람들은 모두 흩어지고 인근 데니즐리로 모여 들게 되었으며, 이곳은 폐허가 된 채로 이후에도 계속 석회성분의 물이 솟아 나와 탄산석회 침전층이 유적을 덮고 있어 발굴도 쉽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도시답게 넓은 지역 곳곳에 유적지가 흩어져 있었지만 여러 차례의 지진으로 대부분 파괴되고 지금은 아폴론신전의 일부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개선문 등 성벽 유적지, 남북을 연결하는 대로 등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곳은 한국식 무덤과 흡사하게 생긴 묘지와 훌륭하게 보존된 원형극장이다.

 

   히에라 폴리(파묵깔레)는 성경에 단 1회만이 언급되었으나(4:13), 에바브로와 빌립이 복음을 전한 곳이다.

파묵깔레(Pamukkale)는 석회층으로 만들어진 환상적인 비경과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의 풍부한 볼거리가 절묘하게 조화된 곳이다. 고대 유적지는 수차례에 걸쳐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심하게 파손되었고 지금은 몇개의 건물 잔해만이 서 있다.

 

 유적지에 들어서면 여기저기 파손된 유물들이 많이 보인다.

히에라폴리스는 지금의 터키어로 파묵칼레라고 하는데 그 뜻은 목화 성(Cotton Castle)이라는 뜻이며 이곳의 온천물에 다량으로 포함된 칼슘의 축적으로 멀리서 보면 흡사 만발한 목화송이로 뒤덮인 성과 같이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오늘날의 이곳은 세계적인 자연의 배경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