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산행(여행) 일정 총정리
제 1 일 (07년 8월 1일)
1. 출발 : 07년 8월 1일 21시 45분 비행기(당초 : 8월 2일 12시 비행기)
→ 4박5일에서 5박 6일로 변경 되었으며 이 변경으로 인하여 시간적으로 여유로워 졌다
공항에서 : 송화물 처리시 라이타, 개스 압수 당함(심양현지에서 부탄가스 구입)
→ 진통 소염제 스프레이에 대하여는 관대 하였음.
2. 23시 07분 대련도착(현지시각, 시차 한국보다 1시간 늦음) :
→ 비행기에서의 대련시 야경은 우리나라 지방의 소도시 정도로 보였으나 고층건물이 제법 많았음
3. 숙박 : 당초에는 대련서 2~3시간 거리인 영도에서 숙박 할 예정이었으나 대련에서 호텔을 확보하였다며 첫날 밤을 이동하지 않고 대련에서 잘 수 있었고 호텔은 대련에서 가장 좋은 축에 든다 하였고 대련 기차역 입구에 위치 하였음. (02시 30분 취침)
제 2 일 (07년 8월 2일)
1. 06시기상 : 호텔의 아침 식사는 중국식으로 입에 맞지 않아 먹을 것 없었으며 우리 일행이 식사를 마치자 밥이 제공됨
호텔측의 비품점검이 완벽 : 일행중 수건에 커피쏱아 오염시키어 배상 해줌
2. 07시 30분 심양행 버스이동
이동중 각자자기소개 시간 : 산행 무경험자 의사 부부로 인한 산행이 걱정되었으며 결국 이들로 인하여 백두산 산행시간이 지체 되었음.
이동 중 차창으로 보이는 중국의 모습은 산에는 나무가 없었으나 식목의 의지를 보았으며 간간히 보이는 강과 저수지에는 소수의 낚시꾼을 목격 할 수 있었음.
3. 고속도로는 왕복 8차선으로 한적한 편이고 두 세시간 간격으로 있는 휴게소도 깔금 하였으나 화장실에는 휴지가 없었음.
4. 12시 01분 : 심양(요녕성 성도)에 도착하여 한식으로 점심 식사 하였으나 일부 대다수 반찬은 짜거나 중국 음식 특유의 향이 많아 먹을 수 없었고 식당에서 한국의 부탄가스인 선연료를 한화 1,300원에 구입 하였음.
5. 식후 한인거리로 유명한 서탑거리와 청나라 황제가 지내던 고궁관람 하였고 많은 중국인 사이에 일본과 한국 관광객이 눈에 가끔 뜨임.
→ 여진족의 누루하치가 지은 고궁은 1500여년 세월의 무상함을 드러내듯 단청이 지워져 있었으나 가이드는 자연 그대로를 위하여 복원을 하지 않았다 하나 경제적인 문제로 보수 공사를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 함.
6. 15시 12분 : 고궁관람 끝내고 버스이동 시작 무순, 신빈을 거쳐 통화도착
7. 18시 40분 : 통화에서 저녁식사 후 송강하로 이동
→ 강가에서 축제 하는 모습 목격하였고 시청건물의 조명과 잘 가꾸어 놓은 강변이 인상적이었음
백산시(지명: 백두산에서 첫 번째 마을)와 무송시를 거쳐(비포장 도로) 송강하로 이동
8. 01시 : 송강하 도착. 호텔 세면대에서는 녹물이 나왔고, 샤워기 물은 깨끗했으나 수량이 객실마다 일정하지 않아 샤월도 제대로 못하는 방도 있었음
9. 02시 30분 통화에서 구입 한 포도주 마시고 취침(통화는 포도주를 대량 생산하는데 맛이 괜찮음)
제 3 일 (07년 8월 3일) : 산행기로 대체
제 4 일(8.4)
1. 07시 기상하여 08시에 버스로 송강하로 이동
2. 9시 55분 : 송강하에서 열차편으로 이도백하 도착
기차에서의 중국인들 행동은 무법천지격으로 우리를 한국인으로 감지한 청년 둘은 좌석표도 없이 우리의 좌석을 선점하고 자기 자리라 우기는 실정으로 열차 직원을 불러서야 자리를 비켜 주는 실정이었음.(우리에게 거꾸로 표를 보여 달라 할 정도 임)
3. 이도백하에서 통화로 이동하여 한식으로 중식
4. 13시 50분 : 중식후 버스로 집안으로 이동
5. 3시 57분 : 고구려 유적지 관람 : 광개토왕비, 광개토왕릉, 장수왕릉만을 관람하였고 고구려 귀족 중 5대 귀족 무덤으로 추정되는 5호 고분의 벽화는 보지 못 하였음.(17시까지 입장)
6. 저녘 식사후 맛사지 받음 : 전신맛사지는 2만원, 말맛사지는 만원이나 그 수준이 떨어졌음.
7. 호텔 부근의 꼬치구이로(재료는 소, 돼지, 양으로 향을 넣지 말라 주문함) 주석 마련후 2시경 취침
8. 참조 : 동북공정에 관한 글
제 5 일(07년 8월 5일)
1. 5시 40분 기상
2. 07시 아침식사(그간의 호텔식과 비교 할 때 가장 먹을 만 하였음)
3. 08시 단동으로 이동하며 이동 중 시골마을 농가 탐방하였는데 가이드가 부탁을 하자 안주인이 구경하는 것을 흔쾌히 허락하였으며 농가의 모습은
1) 대문은 나무로 얼기설기 만들었고 가옥문을 열면 바로 주방이 있고 좌우로 방이 한 개씩 있음.
2) 닭과 돼지를 마당 양쪽에서 키우고 있었음.
4. 13시 단동에서 한식으로 중식
5. 압록강에서 위화도와, 월량교 단교 관광 유람선 승선 25분
: 유람선은 북한측 육지까지 가까이 갈 수 있었고 북측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모습을 목격.
별도의 요금을 내고 모터보트를 타면 북측(신의주) 육지에 바짝 붙여 줌.
→ 집안에서 고구려 벽화와 단교는 입장료 관계로 일정에서 여행사에서 제외 한 듯함.
6. 상점에 들르어 쇼핑시간이 있었지만 관심 유발 품목이 전무 함.
7. 단동의 최대 마트에 들려 보았으나 냉방 및 환기시설 부족을 절감 함.
8. 삼발이 택시(오토바이를 개조 함) 시승 : 이용료는 중국돈 3원으로 거리가 멀면 추가 한다 함.
9. 저녘식사 : 북한 식당인 옥류관에서 하였으나 북한 음식 특유의 맛을 느낄 수 없었음.
→ 손님중 한족들이 찾는 것으로 보아 중국 음식 맛을 가미 한 것으로 보임.
→ 대다수 손님은 한국인으로 백두산 관광 목적이었으나 우리 일행을 제외 하고는 악천후로 천지를 못보았다 하며 천지를 못 본 이들은 얼굴에 피곤함이 베어 있었음.
10. 압록강변에서 본 북한은 전기불 하나 없는 암흑지대였고 강변에서 중국인과 제기 차기를 하였는데 중국인의 실력은 고수 수준으로 제기차기는 우리 민족의 전통놀이라 하지만 중국인들은 제기차기를 일상적으로 하고 있었고 도시에는 광장이 많았고 그 광장 저녘 시간에 단체로 댄스를 즐기고 있었으며 그 배경음악으로 한국의 대중가요를 이용함으로 한류를 느낄 수 있었으며 이런 문화는 놀거리가 부족한 우리도 배울 둘만 하였다.
제 6 일 (07년 8월 6일)
1. 7시 기상
2. 08시 대련으로 이동
3. 11시 30분 한식으로 중식 : 일행들 입맛에 가장 잘 맞음
4. 비행기 시간으로 맥주 축제광장을 차량으로 관광 : 맥주축제라지만 가격은 더 비싸다 함.
5. 12시 30분 : 대련 비행장 도착
6. 한국시간 4시30분 인천공항 도착
7. 6시 구리에서 아꾸찜으로 해단식
총정리 :
1. 백두산 인근은 중국에서도 변방 지역으로 모든 것이 낙후되어 있는 실정으로 행동식 등은 한국에서 철저히 준비해 갈 것을 권장하고 산행중 식수는 생수 1통씩을 지급하나 더울 경우 그 양이 부족하니 가이드와 상의하여 여유있게 준비하여야 하고 청석봉과 백운봉 사이의 계곡에서 식수를 보충 할 수 있으며 중식용으로 지급하는 도시락은 그 전날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이니 더운 날씨에는 부패 여부를 꼭 확인하고 섭취를 해야 한다.
2. 여행 일정을 어떻게 계획하던 간에 트레킹을 필히 하고 와야 한다. 만약 기후 관계로 트레킹을 못하거나 천지를 보지 못하였다면 그 후의 일정을 다 포기하고 백두산 인근에서 머물며 꼭 트레킹을 하고 귀국해야 한다. 트레킹을 빼고 나면 이 여행 일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을 출발하기 전 여행사와 확실히 해 두어야 할 것이다.
3. 전문산악회를 이용할 것 : 우리는 백두산 트레킹을 전문으로 한다는 일반 여행사를 이용 하였는데 일부 인원이 산행 경험이 전무하고, 사전 지식도 없이 참석한 이들로 (산행 전날 포기를 은근히 권유 하기도 함) 인하여 시간적인 문제로 달문과 장백폭포를 보지 못하였음.
4. 버스와의 전쟁 : 버스를 통한 총 이동 시간만 27시간이 소요 되었고 우리가 이용한 버스는 32인승으로 좌석간 거리가 좁아 않아 있기 힘들었으며 흔들림이 심하여 피곤함이 배가 되었되니 백두산 트레킹을 겸한 여행은 버스와의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5. 동북공정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국 당국을 자극할 빌미를 제공하지 말것. 자극 받으면 받은 만큼 그 관리가 심해지고 결국엔 그 피해가 대한민국 전체로 발전될 소지가 많음.
6. 여행스케즐에 일부 관람이 빠져 있는데 그것은 여행사에서 경제적인 관계로 제외 시킨 것으로 보이니 옵션으로라도 관람 하기를 권장함.(ex: 고구려 벽화, 압록강 단교, 압록강 모터보트 등)
* 동북공정[東北工程]에 관하여
백두산과 중국 여행을 마치고 그 산행기를 쓰려 하는데 도무지 복잡하여 쓸 엄두가 나지 낳는다. 하여 생각 한것이 일단은 동북공정에 관한 내용을 별도로 분리하여 먼저 작성한다.
백두산 산행을 끝낸 다음날 새볔에 눈 비비고 일어나 버스를 두 번 갈 아 탄 후, 기차타고 세시간, 다시 버스로 3시간 이동하여 집안시(고구려의 옛 도성인 국내성)에 도착한다.
집안시는 고구려의 옛 수도로 광개토왕비와 그의 무덤, 장수왕릉 등 무수한 고구려 유적이 있는 곳으로 산으로 둘러 쌓인 분지의 형태로 인근에 오녀산성이 자리 하고 있는 곳이다.
많은 중국 현지인들도 이곳을 찾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책에서 사진으로만 보아 왔던 광개토왕비는 중국 당국에서도 소중히 보관 하려는 의지가 보이는 듯 방탄유리로 씌워 놓고 있었으며 사진은 밖에 서만 찍게 한다. 경주에 가면 석굴암을 보호하기 위하여 내부에서 사진 촬영을 금지 하는 것과는 다른 맥락이다.
백두산에 올라 한강기맥동호회란 플랜카드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 했을 때에도 현지 산행 가이드는 절대로 못 찍게 하였고(험악한 사태로 긴장된 순간이었음)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도 산행 전 플랜카드 앞에서는 사진을 못찍게 되어 있다 사전 교육을 했다. 그 사유는 지난 동계올림픽때 우리의 태극낭자들이 쇼트트랙 시상식에서 “백두산은 우리땅”이란 표어를 든 것이 발단이 되었다.
즉, 관광객들이 플랜카드를 앞에 놓고 사진을 찍은 후에 “이것이 다 대한민국 것이 다”란 주장을 막기 위한 조치이란다. 그냥 일시적인 감정으로 한 행동이 중국 당국을 자극하여 엄청난 조치가 취해 진 것이다. 광개토왕릉, 장수왕릉 그 어느 곳에서도 내부 사진을 절대 불가다. 우리 일행 한 분도 내부 사진을 찍다 들키어 그 자리에서 삭제 하였다. 만약, 필카라면 필름을 통째로 뺏기었을 형국이었다.
고구려가 자기네 중국역사라고 주장하는데 가장 큰 것이 바로 이 광개토왕릉과 그 주변의 고구려 유적을 유네스코에 등재한 이유다. 문화 유적을 유네스코에 등재하기 위하 여는 그 계획서를 유네스코에 신청하고 똑같은 내용을 그와 관련한 관련국들에게도 공람을 돌리어 반대의견이 없어야 유네스코에 등재가 가능하다. 헌데 중국은 우리나라의 반대를 어떻게 해결하고 등재 하였을까??
공문을 받아 든 우리 대한민국의 외교부 직원이 그 공문을 쳐 박아 두었단 후문이다. 만약 그 직원이 그 문서 처리에 대한 대응을 잘 만하였다면 중국이 추구하는 대북공정은 중요한 한 축이 무너졌을 것이다. 고구려가 중국역사라는 사실 말이다
우리를 안내하였던 가이드는 화교 신분으로 북에서 살다가 북한의 대기근(북한에서는 고난의 행군이라 표현 함)이 끝 날 무렵 온 가족이 중국으로 넘어와 살고 있는 여성이었다. 그 가이드도 우리에게 이것은 중국문화 유산이란 설명을 한다. 설명이 끝난 후 난 그에게 조용히 물었다. 북에서 공부를 하였으니 역사를 배웠을 것이란 생각에 나는 질문을 던진다.(북에서는 남측 보다 고구려 역사를 더 많이 자세히 가르친다 들었었음) 북에서 학교 다닐 때 배운 내용 하고 지금 관광객들에게 설명하는 것하고 틀린 내용 인데 어떻게 생각 하는냐?? 하였더니 그 답변은 “ 손님이 그리 질문하니 머리가 더 아픔다”이리 대답하며 우울한 표정을 짓는다.
우리는 일부 관광객들이 현지에서 계획되지 않은 어쩌면 철부지 같은 행동으로 고구려가 왜 중국 것이냐?? 라는 불편한 감정으로 우후죽순 격인 대응을 하지만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심도 있고 계획적으로 고구려를 자기네 것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아니 세계적으로는 이미 고구려는 중국 것이 되어 버렸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그 날 그 시간부터 말이다.
일본과 독도 분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 더하여 앞으로는 중국과 고구려 역사를 놓고 지루한 분쟁속에 휘말리게 한 현 정부를 우리는 지탄하고 그 지탄 속에서 좀더 세심한 계획을 세우고 중국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도 이와 관련한 최소한의 교육이라도 시커어야 되는 것 아닌가 라 생각해 본다, 현지에는 우리의 초등학생들도 다수가 관광을 하고 있었고 이 곳을 다 보고 가며 똑 같은 설명을 듣고 간다. “고구려는 중국 역사라고 말이다” 이 어린이들의 정체성을 누가 어떻게 자리 잡아 줄 것인지를 생각하니 참으로 가슴이 답답하다. 금강산 방문시 적대국에 방문하는 것이니 교육 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동북공정 [東北工程]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들기 위해 2002년부터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쪽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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