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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 신묘년

속 리 산

산행지 : 속 리 산  "천왕봉" (고도 1,058m)          

산행일 : 2011. 4. 17  

행사단체 : 까치산악회

산행코스 : 상오1리 마을회관 - 칠층석탑 - 장각계곡 - 헬기장 - 천왕봉 - 헬기장(왕복)

                                                                                          - 상고암 갈림길 삼거리 - 상환암 - 세심정 - 법주사 일주문 - 주차장

산행시간 : 6시간 18분 (시작 10:15, 종료 16:33) -  휴식시간 99분 포함. 

날 씨 : 맑 음 

         

주요구간별 소요시간 :  07:33분 구리시 출발

                       10:06분 상오 1리 마을회관 도착

                       10:15분 산행시작

                       10:19분 장각폭포 

                       10:37분 칠층석탑 앞

                       10:45분 마지막 민가

                             10:45분 두 번째 구름다리

                             11:10분 : 해발 720m

                       11:22분 지도상의 무덤

                       11:50분 2.7km 지점(간식 및 휴식 21분)

                       12:26분 헬기장

                       12:38분 천왕봉 (오름길 2시간 23분 소요)

 

                       12:49분 헬기장(헬기장 - 천왕봉 : 왕복) - 중식 42분

                       13:51분 법주사 갈림길(백두대간 마룻금)

                       14:33분 상환암

                       14:46분 계곡(족탕 16분)                  

                       15:09분 세심정 휴게소

                       15:45분 법주사

                       16:00분 상가지대(하산주 약 20분)

                       16:33분 주차장

                     



 

  속리산은 여덟 팔(八) 자와 관련한 많은 승경을 지니고 있는 명산이다. 첫째로, 속리산은 그 이름이 여덟 개다.  곧 예로부터 불려온 속리산과 구봉산(九峰山)·소금강산·광명산(光明山)·지명산(智明山)·이지산(離持山)·형제산(兄弟山)·자하산(紫霞山)의 8개 산이름이 전한다.


둘째로 속리산은 그 주요 봉우리가 여덟 개다. 최고봉인 천왕봉(→천황봉)에서 그 산릉이 활처럼 휘어지면서 비로봉(毘盧峯)·길상봉(吉祥峯)·문수봉(文殊峯)·보현봉(普賢峯)·관음봉(觀音峯)·묘봉(妙峯)·수정봉(水晶峯)의 8개 봉우리가 있다.


속리산의 8봉설은 다분히 인위적으로 맞춘 숫자로 보인다. 곧 앞의 첫째 항에서도 속리산의 별칭으로서 구봉산(九峰山)의 이름이 보인다. 동국여지승람 보은조에 의하면, ‘봉우리 아홉이 뾰족하게 일어섰기 때문에 구봉산이라고도 한다’고 하여 일찍이 조선 전기에 이미 속리산의 구봉설이 전래하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셋째로 속리산은 그 이름난 대(臺)가 여덟 개다. 곧 문장대·입석대(立石臺)·경업대(慶業臺)·배석대(拜石臺)·학소대(鶴巢臺)·신선대(神仙臺)·봉황대(鳳凰臺)·산호대(珊瑚臺)가 그것이다.


  넷째로 속리산은 바위 대문(石門)이 여덟 개다. 곧 내석문(內石門)·외석문(外石門)·상고내석문(上庫內石門)·상고외석문(上庫外石門)·비로석문(毘盧石門)·금강석문(金剛石門)·상환석문(上歡石門)·추래석문(墜來石門)이 그것이다.


  다섯째로 속리산은 그 아래쪽에 물줄기가 아홉 구비로 돌고 돌면서 꺾어지는데 그 한 구비마다 다리가 있어 도합 8개의 다리가 있었다. 속리산은 이렇듯 여덟 팔 자와 관련한 많은 승경을 지닌 산으로서, 또한 조선8경의 하나로도 일컬어진 훌륭한 팔자를 지니고 있는 명산이다.


 속리산의 최고봉인 상봉의 본래 이름은 천황봉(天皇峯)이 아닌 천왕봉(天王峯)이다. 현재 속리산의 최정상 자리에 속리산번영회가 1994년에 세운 돌비에도 ‘天皇峯’이라 써놓고 있으나 이는 일제시대에 왜곡시켜 놓은 왜색 산봉이름이다.

유형원의 동국여지지, 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보은군속리산사실(報恩群俗離山事實), 성해응의 동국명산기, 김정호(金正浩·1804-1866?)의 대동지지 등의 속리산기에 의하면, 속리산의 현 천황봉은 본래가 천왕봉이었음을 살필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 보은조에 의하면 이곳 천왕봉 정상에 대자재천왕사(大自在天王祠) 속칭 천왕사, 일명 속리산사(俗離山祠)가 있었는데, 천왕봉의 봉이름과도 연관이 있음을 살필 수 있다. 그 신(神)은 매년 10월 인일(寅日)에 법주사에 내려오면 산중 사람들이 풍류를 베풀고, 신을 맞아다가 제사지내는데, 그곳에 45일을 머물다가 돌아간다고 한다.


  천왕봉이 천황봉으로 바뀌어 불리게 된 것은 한일합방 직후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에서 우리나라 전국의 지리를 상세히 조사하면서 제작한 ‘근세한국 오만분지 일 지형도’에 속리산의 상봉을 ‘天皇峯’으로 표기한 이후부터의 일이다. 우리 국민으로 하여금 산이름, 봉이름 등을 접하면서 일본 천황을 인식하게 하려고 한 저의가 깔려있는 의도적 개칭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산 이름 중 고유의 산 이름, 봉 이름을 천황산·천황봉으로 개칭하여 표기한 것이 상당수가 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을 몇 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①울산시 상북면과 밀양시 단장면?산내면 경계에 위치한 천황산(1,189m·원래 재약산)
②함양군 병곡면?서하면 경계에 위치한 괘관산의 상봉인 천황봉(1,288m·원래 천왕봉). ③남원시 보절면과 산동면 경계에 위치하는 천황산. 일명 천황봉(910m·원래 만행산. 속칭 보현산).
④진안군 주천면 구봉산(995m)의 상봉 천황봉(원래 천왕봉).
⑤전남 영암군?강진군 사이에 위치한 월출산의 상봉 천황봉(809m·원래 천성봉).


세 강의 발원지 문장대

  문장대(文藏臺·1,054m)는 천왕봉 북쪽에 위치하면서 천왕봉과 서로 마주보고 있는 속리산의 걸출한 봉우리다. 오늘날처럼 산의 고도를 정확히 측정하지 못하던 시절의 옛 사람들은 대개 문장대를 속리산의 최고봉으로 인식하기도 하였다.

문장대는 일명 운장대(雲藏臺)라고도 하였다. 글자 그대로 구름 속에 웅장한 대의 위용을 간직하고 있는 봉우리다. 문장대라고 하는 이름의 유래는 조선 초기에 세조가 피부병 치료 차 속리산에 들어와 요양하던 시기의 행적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곧 그 당시 꿈속에 월광태자(月光太子)라 하는 귀공자가 나타나 왕에게 동쪽으로 시오 리(里)를 오르면 영험한 바위 봉우리가 있는데, 그곳에 올라 기도를 드리면 소원성취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세조가 이튿날 조신들과 더불어 향(香)과 축(祝)을 싸들고 산꼭대기를 헤메어 이윽고 한 영롱한 멧부리에 올랐더니 널따란 바위봉우리 위에 삼강오륜을 설파한 한 권의 책이 놓여 있었다. 세조는 꿈속의 계시에 새삼 탄복하며 엎드려 기도한 후 책장을 넘기면서 신하들과 강론하였다. 이로부터 문장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세조의 속리산 행적에 부회되어 생겨난 전설에 불과한 이야기이다. 고려 문신 박효수(朴孝修·?-1377)의 우제속리사시(偶題俗離寺詩)에 ‘문장대 위엔 천고의 이끼 덮이어 있고(文藏臺封千古蘚)’라고 한 시구를 보더라도 이미 고려시대에도 문장대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음을 살필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 등 역대 지리지에서는 모두 문장대를 동쪽의 낙동강, 남쪽의 금강, 북쪽의 달천으로 흘러가는 세칭 삼파수(三派水)의 발원지로 언급하고 있다. 곧 여지승람에 이르기를

‘대 위에는 구덩이가 가마솥만한 것이 있어 그 속에서 물이 흘러나와서 가물어도 줄지 않고 비가 와도 더 늘지 않는다. 이것이 세 줄기로 나뉘어서 반공(半空)으로 쏟아져 내리는데, 한 줄기는 동쪽으로 흘러 낙동강이 되고, 한 줄기는 남쪽으로 흘러 금강이 되고, 또 한 줄기는 서쪽으로 흐르다가 북으로 가서 달천이 되어 금천(金遷)으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이는 조선시대 이래 계속 전하여 온 세 강의 발원설이다. 속리산을 답산하면서 이를 정밀하게 살펴본 이만부는 문장대 정상의 발원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그 잘못된 인식을 지적하고 있다.

‘지금 여기 와서 증험하여 보니 이 세 강은 본시 그 근원을 이 산에 두고 있기는 하나, 그것이 문장대 정상에서 발원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문장대 위에 있는 바위의 등에 Y자 모양의 흠 자욱이 있고 이것이 동쪽?남쪽?북쪽의  세 방향을 가리키고 있을 뿐인데, 이로 인한 기록의 잘못일 것이다.’<지행록 속리산기>

현재도 문장대 정상에 오르면 삼파수의 발원처가 되는 가마솥 만한 물웅덩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빈 웅덩이만 패인 채 두세 군데 있을 뿐이고, 이만부 선생이 이곳을 답산할 때처럼 Y자형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웅덩이의 모습도 오랜 풍화작용에 의해 많이 변화되었는지 현재는 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문장대를 삼파수의 발원처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문장대를 속리산의 최고봉으로 인식하였던 옛날의 일이다. 현재는 천황봉(천왕봉)이 확실한 속리산의 최고봉이라 하여 그 정상에 세운 천황봉 석비 뒷면에 천황봉을 삼파수의 발원지로 기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경업대와 수정봉

문장대에서 속리산 정상의 천왕봉을 향하여 주능선을 따라가면 신선대 삼거리가 나오고, 천왕봉쪽으로 조금 더 가면 입석대(立石臺)가 나온다.  또 신선대 삼거리에서 서남쪽 금강골로 한 20분 정도 내려가면 경업대(慶業臺)가 나온다. 이곳 전설에 의하면 경업대는 곧 조선의 영웅적 무장이었던 임경업(林慶業·1594-1646) 장군의 무예 수련장이었다.

독보대사(獨步大師)에게 무예를 사사 받으면서 이곳에서 불철주야하고 7년을 수도한 끝에 그의 힘을 시험해 보기위해 누워있던 집채만한 바윗덩이를 일으켜 세워 놓았다는 것이 바로 해발 약 1,000m 되는 산정에 곧추 서 있는 입석대다.


경업대 일대의 하산길에서 외돌면서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 창건하였다는 관음암(觀音庵)을 향하면 사람 하나 지나갈 만한 거대한 바위가 양쪽으로 갈라진 듯 서있는 석문을 지나가게 된다. 이것이 금강석문(金剛石門)이다.

이 석문을 지나면 속칭 ‘임경업토굴’로 일컫기도 하는 바위동굴이 있다. 그 동굴 속에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신기한 샘물이 고여 있다. 임경업 장군이 마시던 샘물이라 하여 세칭 장군수(將軍水)라 불린다. 샘이 깊어 배를 깔고 엎드려 팔을 뻗어 한 바가지 떠서 먹어보면 매우 시원하고 개운한 맛이 난다. 과연 소문대로 불로장생의 약수로구나 하는 짜릿한 느낌이 가슴속에 전해온다.


법주사 서쪽에는 청동미륵대불의 배경을 이루면서 속리산의 주봉들로부터 외떨어져 있는  한 봉우리가 있으니, 곧 수정봉(水晶峯?566m)이다. 이 봉우리는 속리산 주능선 상에 이어져 있는 연봉들을 한꺼번에 감상해 볼 수 있는 속리산 최고의 전망대다.


정2품 소나무 : 법주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수령 600여년의 소나무로, 조선 세조 때, 임금님으로부터 정이품이란 벼슬을 하사 받았다고 한다. 이 소나무는 마치 우산을 펼친듯한 우아한 자태가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다.
세조대왕(1464년)이 법주사로 행차할 때 대왕이 탄 연이 이 소나무 에 걸릴까 염려해 '연 걸린다'라고 소리치자 소나무가지가 번쩍 들려 무사히 통과했다는 사연으로 '연걸이 나무'라고도 한다. 이러한 연유로 대왕은 이 나무에 정2품의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산행지도>

 

 

  <그림산행기>

 

▼ 상오1리 마을 노인회관앞에서 하차하여 산행을 준비 

 

 

 

 

▼ 마을을회관 건너편의 안내판

 

▼ 장각폭포와 금란정기

 

 

 

 

 

▼ 이런 도로를 따라 한참이나 가야하는 지루한 어프로치

 

▼ 어프로치구간중 우측에 있는 칠층석탑

 

 

▼ 분주한 농부들의 손길은 봄을 알린다.(비료를 가지런히 뿌려 놓은 밭)

 

 

▼ 소나무를 잘 정리해 놓은 마지막 민가를 지나며 어프로치도 끝나고 본격적인 산행

 

 

▼ 속리산 주릉을 클로즈업

 

 

▼ 해발 480m!! 여기서부터 고도를 약 700을 올려야 한다.

 

 

▼ 조릿대가 열병을 받듯 서 있는 호젓한 산책길......

 

 

 

 

 

 

 

▼ 지도상의 무덤!! 여기에 않아 쉬었다 가면 좋겠다는 마님....

 

 

▼ 제비꽃(??) 군락지...

 

▼ 접사로 들이 대었으나 약간 흔들렸다는....

 

▼ 막걸리 한잔 할까요??

 

 

 

 

 

 

 

 

▼ 헬기장에 도착!! (2009년 12월 31일 여기서 나홀로 대간길로 훨훨 날아가 버린 우리 마님 찾아 헤메였던 기억이 또렷이 회상된다)

 

 

 

  * 천왕봉 정상석 기재내용 : 조선의 명수 삼파수, 달천수, 우통수중 삼파수의 발원지이고 삼파수란 동으로 낙동강, 남으로 금강, 서로 남한강으로 흐르는 물을 말하며 이곳 천황봉에서 나뉘어진다. 한남금북정맥은 13정맥의 하나로서 한강과 금강 유역의 분수령이 되며 이곳 천황봉에서 분기된다.   

 

 

 

 

▼ 속리산 주능선이며 백두대간 마루금(문장대 구조물이 저 멀리 보이나 사진상으로는 ???)

 

 

 

 

 

▼ 되돌아온 헬기장에는 많은 이들이 점심을 하는 식당으로 변모되었다.

    천왕봉 인근에는 이곳 말고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다.(단, 천왕봉 너머 우측의 금북정맥길로 조금 내려가면 공간이 있기는 하나 서비스 구간을 더 해야 하니 대다수의 산객들은 이곳을 휴식장소로 한다, 허나 바람부는 동계절엔 추위로 곤란할 것이다)

 

 

 

 

 

 

 

 

 

▼ 식사후 천왕봉 방향으로 되돌아가 삼거리에서 문장대 방향으로 우회전을 해야 한다.

 

 

 

▼ 이곳에서 대간 마룻금을 버리고 좌측의 법주사 방향으로 하산. 일부는 신선대 방향으로 ....

 

 

 

 

 

 

 

 

 

▼ 상환암의 텃밭

 

 

 

 

▼ 계곡을 만나 족탕실시!!

 

 

▼ 마지막까지 남은 것을 해결하려는 님들...

 

▼ 갈림길에서 신선대 방향으로 직진했던 일부 횐님들과 조우

 

 

▼ 계곡 코앞에 세심정휴게소

 

  

 

 

▼ 여고 동창생 3인방!!

 

 

▼ 법주사 신축건물을 배경으로...

 

 

 Tip : 법주사에는 법주사 팔상전(국보 55)과 법주사 쌍사자석등(국보 5), 법주사 석련지(국보 64), 법주사 사천왕석등(보물 15), 법주사 마애여래의상(보물 216) 등 국보·보물을 비롯해 각종 문화재가 있고, 속리의 정이품송은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되어 있다.

 

 

▼ 하산주 한 잔씩 하고 가시여야죠??

 

 

 

  <동 영 상>

 

 법주사 직전 저수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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