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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유 럽 6 국

제 7 일(8월 10일, 일요일) 3. 스톡홀름 대성당, 구시가지, 피의사원

 

7 (810, 일요일) 3. 스톡홀름 대성당, 구시가지, 피의사원

 

<노랑풍선 일정표> 스톡홀름 시내관광후 바이킹라인 또는 실자라인 탑승하여 핀란드 투르크로 이동:11시간

스톡홀름(스웨덴)으로 이동하여 시청사 전경, 대성당과 구시가지 전경, 바사호 박물관 및 시내관광

호텔식, 현지식, 선상식

 

<실 제 일 정 표>

06:59분 기상

08:01분 아침식사

09:23분 호텔출발

11;14분 맥도날드 매장 휴식

13:14분 스톡홀름 시내 진입

13:32분 중식

 

14:23분 스톡홀름 시청사

 

16:14분 스톡홀름 대성당, 구시가지, 피의사원

 

17:06분 바사박물관

 

18:05분 실자라인 탑승

19:41분 저녘식사

익일 040분 취침

 

스웨덴 지명 이야기 :

스웨덴 지명에는 특정한 단어가 자주 등장하느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홀름(holm)이다.

단어 뒤에 홀름이라는 말이 붙은 지명은 모두 섬이다. 톡홀름(Stockholm)이나 드로트닝홀름(Drottningholm) 등이 다 그렇다. 홀름과 발음이 비슷한 홀멘(holmen)도 섬이다. 스타드스홀멘(Stadsholmen), 리다르홀멘(Riddarholmen) 등이 그렇다. 보리(borg)는 마을(village)이나 도시(city)를 뜻하는데 비슷한 의미로 스탄(stan)이라고 쓴다. 바로 감라스탄(Gamla stan)이 그렇다.

 

 

  구시가지 : 감라스탄은 왕궁, 대성당, 스토르토리에트 광장이 있는 스타드스홀멘(Stadsholmen)리다르홀멘 교회가 있는 리다르홀멘(Riddarholmen), 국회의사당이 있는 헬게안스홀멘(Helgeandsholmen), 법원이 있는 스트롬스보르그(Stromsborg)등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스톡홀름의 발상지로 13세기에 형성된 구시가지이다.

 

   왕궁 (Stockholms Slott) 구시가지 북쪽에 위치한 왕궁은 1697에 건축하기 시작하여 1754년 완공된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과 프랑스의 로코코 양식을 도입한 건물로 1982년까지 스웨덴의 왕궁으로 사용 되었으나, 왕실이 스톡홀름에서 배로 40분 거리에 있는 드로트닝홀룸 궁전으로 옮김에 따라 현재는 국왕의 집무실과 외교사절의 숙소와 만찬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현 국왕이 집무하는 있는 왕궁의 일부는 관광객에 개방되고 있다.

 

보물의 방에 있는 역대 국왕과 왕비의 왕관이 볼만하다고 한다는데, 우리는 이곳도 내부 관람은 하지 않고 외부만 구경할 뿐이다. 내부를 관람하기에는 입장료도 있지만 시간의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출입문 마다 경비초소와 위병이 근무하고 있다.

 

  구시가지의 왕궁(정원) 구시가 북쪽에 있는 3층 건물로 1697~1754년에 지어진 건물로 과거 700년 동안 역대 왕들이 이곳에서 살았다. 이탈리아 바로크 풍으로 건설된 이 곳은 현재 외국 귀빈을 위한 만찬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궁전 내부의 600개에 달하는 훌륭한 방들이 고급스럽게 장식되어 있으며 도자기와 유리그릇, 테피스트리 등 귀중한 유품들이 전시된 베르나도트의 방, 영빈의 방, 왕관과 보석 및 귀금속이 있는 보물 방이 있으며, 그중에서도 로얄 마차와 대관식 의복이 전시된 무기관이 볼만하다.

 

   스토르토리에트(Stortorget) 토리에트(torget)는 광장이라는 말이고 스토르토리에트(Stortorget)는 대광장이라는 뜻이라는데,그다지 넓은 공간이 아니어서 대광장이라고 하기에는 사실 과장되어 보이지만, 크기보다 감라스탄의 중심지라는 의미로 그 중요성에 의해 대광장으로 불렸을 듯하다. 하여간 스토르토리에트는 지금도 스톡홀름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빠지지 않고 들르는 가장 사랑 하는 곳으로 가이드가 우리를 이곳으로 안내한 이유다.

 

대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중세의 건물들은 마치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 하는데, 광장주변으로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노천카페와 기념품 가게나 갤러리 등으로 개조된 옛 건물들이 즐비하다. 광장에서 여러 방면으로 뚫려 있는 좁은 골목들은 오래된 건물들과 닳고 닳은 바닥 돌 등에서 13세기 무렵 중세 모습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특히 광장 북쪽에 있는 건물은 증권거래소로 1776년에 세워졌는데, 2001년 노벨상 제정 100주년을 기념하여 이곳에 노벨박물관을 만들었다. 건물 윗 층에는 매년 노벨상을 결정하는 스웨덴 아카데미 본부가 있으며, 박물관에는 노벨상에 관한 자료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한편 이 광장은 피의 광장이라고도 불리는데, 그것은 스톡홀름 대학살의 역사적인 현장이기 때문이다.

1520년 당시 덴마크의 왕인 크리스티안 2세가 덴마크의 주도 아래 결성한 스칸디나비아 3국의 칼마르 동맹을 탈퇴하고자하는 스웨덴 사람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1520118~9일 이틀에 걸쳐 80명이 넘는 스웨덴 귀족들을 바로 이 광장에서 목 잘라 죽이고, 그 머리들을 한 곳에 모아 묻었는데, 바로 '해골의 샘'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광장의 우물이 서 있는 이 자리다.

 

이 날 죽은 귀족 중에는 바사왕의 아버지도 있었는데, 이 사건은 크리스티안 2세의 계획과는 달리 스웨덴 민중들에게 극도의 저항감을 심어줬고, 이로 인해 스웨덴의 젊은 귀족 구스타프 바사가 이끄는, 덴마크 통치에 반대하는 스웨덴 해방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구스타프가 스웨덴의 대표적인 귀족들과 농민 그리고 뤼베크의 북부 독일 교역 센터의 도움으로 1523년 스웨덴의 독립을 달성한 다음 구스타프 1세 바사로서 스웨덴 왕으로 선출됨으로써 126년간의 칼마르 동맹은 해체되었다. 가이드가 감라스탄에 대해 소개를 끝내고 이곳에서 25분간의 자유시간을 준다. 아내와 나는 다시 왕궁이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중간에 시계탑이 있는 스톡홀름 대성당 종탑이 눈에 들어온다.

 

스톡홀름 대성당 (스웨덴 Storkyran 교회)

스톡홀름 대성당은 왕궁의 남쪽에 위치하며 13C에 지어진 유서 깊은 루터교 성당이다.

1279년에 처음 지어진 후에 여러 차례 증·개축을 거쳐 1480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완공 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카톨릭 성당으로 고딕 양식이었으나 후에 왕궁의 건축 양식에 맞춰 바로크 양식으로 개축하였다.

국왕 및 여왕의 대관식과 왕과 왕족의 결혼식들이 거행되는 장소이며 현재의 국왕인 카를 16세도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