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포르투칼 제 2 일차(2022년 07월 02일) 1. 구엘공원(Parc Güe, Park Güell) 탐방
7월 2일 전체일정
1.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구엘공원(Parc Güe, Park Güell) 이동하여 탐방
2. 가족성당(사그라다 파밀리에/Sagrada Familia) 탐방
3. 석식(한식)후 엑스 바르베라 파르크(EXE BARBERA PARC)호텔 입실
바로셀로나(Barcelona)
바로셀로나(Barcelona)는 스페인의 정식 명칭인 에스파냐 왕국(스페인어: Reino de España)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스페인 동부 지중해 연안 지역부터 프랑스 남쪽 피레네 산맥과 접경지역을 아우르는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도시로
인구는 약 170만 정도 면적은 101.9㎢ 이다.
도시의 명칭은 고대 페키아어인 바르케노(Barkeno)에서 유래하였으며,
11세기부터 18세기에 걸처 아라곤 공국이었으며 이베리아 반도의 역사에서 중요한 지역이었다.
카탈루냐 지방은 스페인 영토 가운데 로마제국에 가장 먼저 정복당했던 곳 중 하나이다.
로마제국 시대 때 작은 요새로 건설되기 시작하여 좋은 경관과 항구 덕분에 서서히 부유해지면서 발전했다.
로마제국은 이곳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았으며 시는 자체 주화를 찍어냈다.
5세기에 서고트족이, 8세기에는 아랍이 점령했다.
801년 루이 1세가 점령한 뒤 바르셀로나 백작이 통치하도록 했다.
985년에 알만소르 장군의 공격을 받아 시민 대부분이 죽거나 노예가 되는 비극적 사건을 겪었다.
1469년 아라곤국의 페르디난드 2세와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라 여왕이 결혼하면서 마드리드가 정치적 핵심이 되었고
중남미 지역 식민지가 늘어남에 따라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인 바르셀로나에 대한 스페인 왕실의 관심이 약화 되었다.
이후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 분리주의의 대표자가 되었으며
필리페 4세 시절 카탈루냐 폭동(1640-50)을 겪었다.
스페인 내전 동안 바르셀로나와 카탈루냐 지방은 공화국 정부를 지지했다.
1939년 1월 프랑코 장군의 군대에 함락되면서 시민들이 대거 프랑스로 탈출했다.
바르셀로나는 자치권을 상실했으며 카탈루냐어 사용도 금지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제2의 도시로 번성했으며
1992년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현대적인 도시로 탈바꿈했다.
1975년 프랑코 총독이 죽은 뒤 바르셀로나 시민들은 스페인 민주화를 선도했으며
1977년에 카탈루냐의 자치권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은 뒤 자치권을 획득했다.
바르셀로나는 지중해성 기후로 따듯하고 습도가 있는 겨울과, 건조한 여름이 특징이다.
이베리아반도 동쪽에 있는 바르셀르나는 대서양에서 멕시코 해류의 영향으로 서풍이 몰려와
다른 대부분의 지중해 분지 지역에 비해 비를 내리게 하지 않는 낮은 습도의 상태에 도달하게 한다.
대서양에 근접한 위도, 그리고 지형이
바르셀로나의 여름이 습도를 조절해 주는 것이다.
<구엘공원 개념도>
▼ 공항 주차장에서 앞으로 모든 일정동안 함께 해줄 전용버스를 만나면서 스페인 여정을 시작한다.
첫 일정으로 '구엘공원'을 만나게 되는데 현지 가이드 '박종수' 님과 운전기사인 '미노'와 수인사를 나누게 된다.
이 미노는 포르투칼 사람으로 여행내내 참석자들에게 '친절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며 교훈을 주게 된다.
▼ 아내와 나는 전용버스 중간 문 바로 앞에 자리를 잡았다.
나의 경우 대부분 참석자들과 자리 다툼을 피하기 위하여 맨 뒷자리를 선호하는 편이나
이 버스의 경우 뒷자리가 매우 협소하여 불편하다고 아내가 중간에 자리하자는 의견을 수렴한 것이다.
사실 맨 뒤자리는 엔진의 소음과 진동으로 불편하기고 하고...
▼ 공항을 빠져 나가면서 바르셀로나 외곽의 정취를 담아 본다.
바르셀로나 엘프라트 공항(Aeroport de Barcelona-El Pra)공항은 비교적 도심과 가까운 곳에 있으니
이동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 했지만 도심의 정체로 1시간이나 소요되었다.
▼ 버스 좌측편으로 특이한 형태의 산이 등장하면서 조림된 나무들이 보이자 참석자 모두 호기심을 보이는데
인솔자인 윤성란 팀장이 '공동묘지'라 설명을 붙여 준다.
▼ 드디어 도로가에 큰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며 야자수가 반겨준다.
이상스럽게도 저 야자수만 보면 이국적인 맛이 절로 풍겨짐은 나만 느끼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 얼떨결에 특이한 조형물이 있어 담아 보았는데 람브라스 거리 맨 끝부분에 있는 '콜롬버스 동상'이었다.
이곳은 내일 자유시간에 다시 한번 찾게 된다.
▼ 현지 가이드 박종수 님은 버스 이동중에 스페인게 관한 설명을 해주면서
아침인사는 '올라', 감사합니다는 '그라시야스'라는 간단한 인삿말을 알려 준다.
더불어 까탈루냐 분쟁에 대하여 많은 시간을 할애 하면서 설명을 해주는데
우리나라의 지역감정은 스페인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할 듯 하다.
불과 얼마전만 해도 까탈루냐가 독립을 하겠다고 데모하는 것이 매시간 우리 뉴스에도 방송되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까탈루냐의 중심이 바로 이곳 바르셀로나라는 것을 현지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심지어 발렌시아에서는 평상시 '발렌시아어'만 사용한다니 스페인 정치가들이 고생좀 하겠다.
▼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참하던 박종수 가이드가 창가로 보이는 '카사밀라'를 가르켜 준다.
카사밀라는 별도로 찾아 오지 않고 이리 차창 투어로 끝난다는 멘트에 부리나케 카메라를 찾아 앵글을 맞추어 본다.
카사 밀라(Casa Milà)
카사밀라 즉, 밀라의 저택은
바르셀로나 사업가 ‘로제르 세지몬 데 밀라’와 그의 아내 ‘로세르’의 의뢰를 받아 만들어진 건물이다.
당시 가우디는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로
색색깔의 모자이크와 타일을 사용한 곡선적인 미를 추구하다 보니 많은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거액의 돈을 들여 지은 저택은 당시 남들이 보기에 받아들일 수 없는 해괴한 모습으로 보였고,
이에 밀라 집안은 가우디에게 비용을 모두 지불 하지 않아 결국 소송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에 화가 난 가우디는 이 건물의 백미인 옥상의 굴뚝 타일을 100% 완성하지 않아
카사밀라는 아직도 2% 부족한 미완의 건물이 되었다고 한다.
라 페드레라('채석장'이라는 뜻)라고도 불리우는 카사밀라는
건축물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조각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마치 네모난 건물이 물속에 잠겼을 때 밖에서 물결치는 모습을 들여다보는 듯 지상 위에 그 이미지를 그대로 표현했다.
즉, 바닷 속의 대저택인 것이다.
발코니는 구엘공원의 벤치처럼 한 없이 곡선을 이루며 물결치며 흐르고 있고,
발코니 창살조차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삼지창을 각종 해조류 모양으로 꼬아 만든 것처럼
두터운 철재의 바닷속 향연이다.
까사밀라는 일종의 아파트로 1910년에 완성되었고, 198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유연한 곡선,기능적인 측면과 자연적인 형태가 조화를 잘 이루고 있으며,
베란다의 철제 장식이 특히 아름답다.
그외 1905~1907년에 가우디가 개축한 건물로 마치 동화속의 요술의 집 모양을 하고 있는
까사바트요(Casa Batllo)도 유명하다.
지붕은 용의 이미지를 하고 건물 전체는 바다를 테마로 하고 있다.
테라스 모양이 특이하고 건물의 녹색,청색 타일이 아름답다.
▼ 이런 카사밀라를 차창밖으로만 만나야 하는 패키지 투어가 아쉬운 대목이다.
까사 바트요는 눈도 맞추어 보지 못했고,
그런 아쉬운 대목을 없애려면 이곳 바르셀로나에서만도 최소 2박 3일은 해야 할 것이니
속으로만 아쉬움을 곰씹으며, 사진이라도 몇장 남긴 것을 다행인지라 위안을 삼아 본다.
허기사, 이 까사밀라를 만나려면 사전예약을 해야 하고, 현장에서 입장권을 구매하더라도
그 입장료가 28유로(한화 약 4만원) 가량 이라니 패키지 투어에서는 당연히 제외가 되겠다.
▼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람브라스 거리를 거쳐 구엘공원 도착한다.
주차장에서 하차하여 도로를 건너 공원입구로 가는 길에는 따갑게 느껴지는 부담스런 햇빛이 내리 쪼이고 있었다.
구엘 공원(Parc Güe, Park Güell), 구엘 저택(Palau Güell)
가우디는 작품의뢰를 받으면 의뢰자의 이름을 사용하여 작품 이름을 짓는다고 한다.
구엘공원은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구엘백작과 함께 계획한 도시 재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그 시작을 하게 되었다.
바르셀로나 교외 언덕에 자리하여 지중해와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구엘공원은
원래 이상적인 전원도시를 계획하여 고급스러운 60채의 주택을 조성하여
스페인의 부유층에게 분양을 하려 했던 곳이다.
구엘이 본인 소유의 토지에 가우디에게 설계와 건축을 맡기어 조성된 곳이었으나 그 계획이 실패하고,
가우디가 설계한 두 채만 지어졌으니,
당시로서 매우 혁신적이었던 발상은 공원부지에는 돌이 많고 경사진 비탈로 작업에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치가 언덕이고 시내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
1922년 바르셀로나 시의회가 구엘백작 소유의 이 땅을 사들였고 이듬해 시영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특히, 자연을 사랑한 가우디답게 비가 오면 건물에서 비를 모아
기둥을 타고 저수장으로 물이 모여 빗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일부는 정문 쪽의 분수대로 흐르게 설계되었다.
애초의 원대했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공원은 여전히 스페인이 낳은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가장 훌륭한 작품 중에 하나로 회자되고 있으며,
많은 시민들의 쉼터로 사랑받고 있다. 소
수 부유층의 전원도시보다는 수많은 시민들과 세계각처에서 온 관광객들의 휴식처가 되었으니
오히려 그 생명력과 효용면에서는 더 많은 것을 얻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5만 평이나 되는 이 구엘공원은 1900년부터 14년간 작업을 하다 위와 같은 이유로 일시 중단되었고,
2002년에 완공되어 시 공원이 되었다.
구엘의 저택은 지금은 초등학교로 사용 중이고,
공원 안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의자도 유명한 작품이다.
공원 정면의 도마뱀 모양의 분수,
광장의 천정과 벤치까지 직접 색갈과 디자인을 염두에 두고
깨진 유리, 깨진 도자기 등 폐품을 이용하여 만든 작품들이다.
▼ 공원입구로 진입을 한다. 나중에 알았지만 우리는 정문으로 입장을 한 것이 아니고
후문(??) 또는 옆문(??)으로 진입을 하여 정문으로 나오면서 탐방을 하였다.(여기가 정문인지 알았다고요~~~~)
▼ 박민수 가이드의 열정적인 설명을 들으면서 본격적인 탐방이 시작되는데,
▼ 잠시 발품을 팔아 모래(??) 아니면 그냥 흙(??)으로 평탄 작업이 이루어진 광장에 다다른다.
갑자기 환하게 넓어진 광장에는 뜨거운 날씨 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제법 많은 탐방객들이 공원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 황토색 건물을 지나치자 제일 먼저 도시와 람르라스 거리 넘어로 바르셀로나 도시를 면한 지중해 앞바다가 조망된다.
이런 지정학적인 이유로 귀족들만을 위한 저택을 분양할 계획을 세우게 된 것이다.
▼ 그 광장에는 탐방객들이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연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이고,
▼ 이 기둥위로 떨어진 빗물은 모아져서 생활용수 및 분수에 이용되는 것이다.
야자수와 꽃나무들 그리고 공룡의 비늘을 연상시키는 듯한 조형물들이 모두 잘 어우러진 모습이다.
▼ 편안한 계단 몇개를 내려가 광장으로 내려서서 다른이 들과 함께 구엘공원을 즐기는 시간을 갖는다.
▼ 그늘에 않아 신문을 읽는 할머니의 모습을 필두로 멋지게 차려 입고 기념 사진을 찍는 처자들과
함께 어우러져 구엘공원의 정취를 만끽하게 된다. 뜨거운 햇살은 직작에 잃어 버렸다.
▼ 이 사진상의 맨 위쪽 건물은 가우디가 직접 시공한 건물 2채에 해당하는 것인데
우리는 저기까지 올라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왜냐?? 가이드가 가라고 하지 않았기에 말이다.
▼ 세상에서 제일 길다는 벤치에 우리도 잠시 엉덩이를 붙여 본다.
혹자들은 머 가장 편안한 의자라 하기도 하지만 편하기야 하겠는가?? 쿠션이 전혀 없는데?? ㅋㅋ
▼ 우리가 진입한 기준으로 저어짝 건너편으로 지중해가 바라다 보인다.
바로 요기가 소위 말하는 뷰포인트다!!
너도 나도 인증샷을 눌러 대는데 특히 예쁘게 차려 입은 처자들이 유독 많아 보인다.
▼ 광장아래 공원 입구로 내려가면 광장에는 경비의 거처와 관리실로 쓰려고 했던 두 개의 건물이 있다.
갈색과 흰색이 어우러져서 마치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의 집을 연상시킨다.
독특한 모양의 뾰족탑 지붕이 신비롭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만화에 등장하는 완죤 귀여운 건물이다.
지금 현재 한쪽은 박물관으로 다른 한쪽은 사무실과 기념품 샾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박물관 건물동에 유난히 줄이 길게 늘어 서 있다.
우리 가이드는 박물관이라 해보아야 볼 것 없으니 우측의 사무실 건물에만 올라 가 보시라 권장을 한다.
좌측 건물은 가우디가 1906년부터 26년까지 살았던 '로사의 집'은
그의 누나 이름인 장미(rose)를 인용하여 작명된 집인데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05년전 가우디가 심었다는 전나무가 역사의 현장을 지키고 있다.
▼ 2단으로 형성된 계단을 내려 서서 뒤돌아 보자 도마뱀 형상을 한 구조물이 보인다.
화려하고 독특한 모자이크 장식과 타일로 만들어진 이 도마뱀은 최근에 가물었는지
그 입에서 흘러 나오는 물이 시원하게 내뿜지 못하고 졸졸졸 흐르는 모습이다.
아마도 이곳에 분수가 작동되어야 할 터인데 물부족으로 분수도 작동을 멈춘듯 하다.
하필이면 내가 왔을때 분수가 작동을 하지 않다니...
▼ 계단을 벗어나자 광장을 버티고 있는 수많은 받침 기둥과 동굴이 등장한다.
불규칙한 돌로 만든 교각 기둥은 자연의 야자수를 빚대 놓은 듯 하지만 그 울퉁불퉁하면서도 비뚤어진 비정형의 조화로움이 그럴듯 하다. 내게는 용의 비늘이 계속 연상된다. 카사밀라의 지붕도 용의 모습을 적용했다더니 혹시 이곳도??
▼ 공원을 지탱하고 있는 동굴과 다리의 모습으로 모두다 깨진 그릇, 도자기 파편의 모습이 확연하다.
▼ 가이드의 제안을 받아 들여 우측편 사무실 건물 내부로 들어 가 본다.
1층부터 모두 기념품 매장으로 이용되는 곳인데 아무도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2 ~ 3층을 연결해 주는 계단을 그 폭이 좁아 오르 내리는 사람들이 서로 서로 양보를 해야만 간신히 교행이 가능했다.
▼ 그냥 창밖으로 보이는 공원 모습!! 오직 그것 뿐으로 별것이 없는 건물내부였다.
▼ 건물 밖으로 되돌아 나오자 예의 강한 햇살이 반겨주면서 구엘공원 탐방이 끝나간다.
▼ 용의 비늘들을 한번 다 확인하고 가이드님 뒤를 쫓아 출발했던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구엘공원의 넓이가 5만평이라는데 우리는 불과 1시간 만에 탐방을 마치게 된다.
공원이라기보다는 마치 동화 속 나라에 들어온 것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구엘공원은
가우디 특유의 형형색색 모자이크 타일로 장식된 인공의 건물과 자연이 어우러져,
초현실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곳으로 불과 1시간이었지만 그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 도심풍경> 공항에서 구엘공원 이동중...
<구엘공원 모래광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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