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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시렁 궁시렁

지리산 이야기

1. 들어가는 말

지리산은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 방장산(方丈山)이라고도 했다. 봉래산(금강산), 영주산(한라산)과 함께 신선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이 산의 이름은 원래 '두리산' 인데 두류산(頭流山)이라 했다가 구개음화에 의해 '지리산'으로 된다


 2. 지리산에 얽힌 전설

(1) 지리산의 여신 마야고

 지리산 (智異山)(한자 그대로 읽으면 '지이산'이나 읽기는 '지리산'이라고 한다.

실제 음대로 '智理山'이라고 쓴 기록도 많다)의 여신 마야고(麻耶姑)는 남신 반야(般若)를 사모하여 그리운 옷 한 벌을 고이 지어 만나서 전해 줄 기회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기회가 잘 닿지 않아 마음을 태웠다. 달 밝은 어느 날 밤 마야고는 지리산 중턱에 앉아 반야의 옷을 품에 안고 그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꿈에도 기다리던 반야가 자기 쪽으로 손짓하며 걸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야고는 바람에 나부끼는 꽃잎의 물결 속으로 반야의 옷을 든 채 달려갔다. 그리고 정신없이 무엇을 잡을 듯이 허우적거렸는데 이상하게도 잡히는 것이 없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그리운 반야는 보이지 않고, 쇠별꽃(나도개미자리과의 다년생 풀. 줄기가 연약하여 땅에 눕고 흰 판화가 여러 꽃대에서 피어난다)들만 달빛 아래서 바람에 흐느적거릴 뿐이었다.


쇠별꽃의 흐느적거림을 반야가 걸어오는 것으로 착각한 것을 알게 된 마야고는 너무나 실망하여 두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한없이 울었다.


마야고는 그 뒤로 자신을 속인 쇠별꽃을 다시는 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정성껏 지어 두었던 반야의 옷도 갈기갈기 찢어서 숲 속 여기저기에 흩날려 버렸다. 또 매일 같이 얼굴을 비춰보던 산상의 연못도 신통력을 부려서 메워 없앴다.


마야고가 갈기갈기 찢어 날려버린 반야의 옷은 소나무 가지에 흰 실오라기처럼 걸려 기생하는 풍란(風蘭)으로 되살아났는데 특히 지리산의 풍란은 마야고의 전설로 '환란(幻蘭)이라고 부른다.



 천왕봉(天王峰. 천황봉(天皇峰)이라고도 한다. 높이 1,915m)에서 서쪽으로 바라보이는 반야봉(般若峰)(지리산의 제 2봉. 높이 1,732m) 은 마야고가 늘 바라보고 반야를 생각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 마야고가 메워 버렸다는 못은 누군가가 천왕봉 밑 장터목에서 찾아내 '산희샘(山姬샘)'이라고 이름 붙였다.


마야고의 한과 노여움을 풀어주기 위하여 고려 때 천왕봉에 사당을 세우고 여신상을 모셨는데(여신상은 지금은 없어졌는데 한 하이텔 동호인이 알려온 바에 의하면 산아래 어느 민간인의 집에 있는 것으로 보도된 적이 있다고 한다.) 일제 때 한 왜병이 군도로 그 코와 귀를 잘라 버리려다가 신 벌을 받아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지리산의 얽힌 전설이다. 또, 고려사(高麗史)에 나오는 악지(樂志)에 지리산가(智異山歌)(학계에서는 이것이 지리산에 대한 최초의 문학작품으로 보고 있다.) 라는 백제 가요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작자와 연대도 알 수 없고, 그 가사도 전하지 않는다.


백제 때 지리산녀(智異山女)가 남편과 단둘이 구례현(求禮縣)의 산골짜기에 살고 있었다. 이 여인은 얼굴도 곱고 마음도 착했으며, 집안에서 부도(婦道)를 다 했다.

하루는 지리산으로 사냥을 온 백제 왕이 우연히 이 지리산녀를 보게 되었는데 한 눈에 반하고 말았다.


 

왕은 지리산녀를 궁으로 데려가 후궁으로 삼으려 했으나, 그녀는 죽음을 각오하고 절개를 지켜 왕의 명령을 좇지 않았다.

결국 지리산녀는 끝까지 절개를 굽히지 않고 자신의 심정을 노래로 지어 부르면서 모진 형을 받고 죽어 갔다.

이때 그녀가 부른 노래가 '지리산가'이다.

 


(2) 두류산과 지리산

우리 나라의 모든 명산에는 그 나름대로의 전설이 있다. 또, 역사적 사실을 간직한 것도 적지 않다. 지리산도 명산이기에 예외는 아니어서 위와 같은 이야기가 후세에 전해오는 것이다.


한반도의 남부에 자리잡아 '내가 왕이요'라며 소백산맥 한허리에서 머리를 불쑥 내밀고 어마어마한 산덩어리를 이룩한 지리산. 전북. 전남. 경남의 3개 도와 남원. 구례. 산청. 함양. 하동의 1시 4개 군에 걸쳐 있고 해발 1,915m의 천왕봉을 중심으로 반야봉, 노고단(老姑壇) 등 많은 봉우리를 안은 지리산은 누구든 아예 산이 아니라 봉의 무리라 했다.


이렇듯 잘 알려지고 한반도 안에서 크게 손꼽히는 산이건만 지리산이란 이름 유래에 대해서는 그리 잘 알려져 있질 않다. 지리산을 방장산(方丈山)이라고도 했다. 방장산은 봉래산(蓬萊山)(금강산), 영주산(瀛州山)(한라산)과 함께, 신선들이 내려와 놀았다는 삼신산의 하나이다.  지리산은 또, 두류산(頭流山), 남악산(南岳山), 방호산(方壺山) 등의 이름을 갖기도 했다.


"두류산 양단수(兩端水)를 예 듣고 이제 보니,


도화(桃花) 뜬 맑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겼어라.


아희야, 무릉이 어디메뇨, 나는 옌가 하노라. "


                              조식(曺植) (1501-1572)


여기에서의 두류산은 바로 지리산이다.

그러면, 두류산과 지리산은 이름에 어떤 연관이 있을까? 이 의문은 먼저 호남 지방의 방언 특징을 알아보면 쉽게 풀린다.


이 지방에선 발음에 있어서 구개음화가 아주 심하다. 즉, 형님을 '성님', 힘을 '심', 기름을'지름', 길을 '질', 드새다(뜬눈으로 밤을 지새다.)를 '지새다', 디뎌를 '지뎌', 디밀다를 '지밀다'식으로 발음되는 특징이 있다.


이렇게 볼 때 , 지리산의 '지'도 '디' 또는 '드'가 구개음화 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얻게 되며, 이 과정에서 지리산과 두류산(두리산)의 음운적 연관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 두루 〉두리 〉드리 〉디리 〉지리


즉, '두류'는 '두루'를 음차(音借)한 것으로 보이며, 그 두루가 호남 지방식 음의 변화 과정에 따라 '지리'까지 가게 된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두류산 또는 이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산은 전국에 무수히 많다. 두류산이나 두류봉, 두류령은 한남 단천과 길주 사이, 한남 문천과 평남 양덕 사이, 강원 화천, 전남 신안, 전북 순창, 전북 임실과 순창사이, 경기 이천, 강원 평창, 전남 나주, 경남 거창, 평북 영원과 맹산 사이 등 여러 곳에 있다.


두루봉은 전남 강진과 헤남 사이, 강원도 태백산맥의 향로봉 남쪽, 명주와 양양 사이 등에 있고, 두리봉은 강원도 삼척, 정선과 명주 사이, 춘천, 평창, 전남 해남, 경기도 광주, 충북 보운과 옥천사이, 충남 논산, 전북 전주, 전북 임실, 전남 영암, 대구, 경북 군위 등에 있다.


두로봉은 강원도 오대산에 있고, 두류산은 전남 해남, 두량산은 강원도 삼척, 두룡봉은 평북 강계, 강원도 이천 등에 있다.


그런데 이들 산의 특징을 보면, 산 봉이 덩글거나 산세가 그리 험하지 않다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어느 터를 둥글게 울타리 치듯 다른 산과 함께 휘둘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3) 두류는 두루와 두리에서 두루와 두리 또는 그에 가까운 말을 옛말이나 사투리에서 그 뜻을 찾아보면, 앞의 두류, 두리 등의 산이름과의 관련을 알아볼 수 있어 재미가 있다.


용비어천가 69장에 보면, '드르레 용이 싸호아(들에서 용이 싸워)'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서 '드르'는 들의 옛말인데, 이 말은 지방에 사투리로도 남아 강원도에서는 '드루'또는 '뜨루'라 하고, 함경도 지방에서는 '두루', 또는 '두뤄'라 한다.


'뜰'은 집안마당이란 뜻이지만, 전남이나 평북지방에선 들의 사투리로 쓰이고 있으니, 이 말이나 뜨락, 뜨란, 뜨렁 둥도 모두 '들'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루, 두리를 들에 관계지어 설명했지만, 들은 원래 '달'에서 나온 말로 '땅' 또는 '산'의 뜻이다. 대구의 엣이름 '달구벌'은 산으로 둘러싸인 들(분지)의 뜻이다. 강원도 고성(高城)의 삼국 시대 이름은 달골인데, 달이 산이므로 '높다'의 뜻으로 취해 나중에 '고성'으로 바뀐 것이다.


종이를 가로로 길게 이어 둥글게 돌돌 만 물건을 두루마리라 하는데, 여기서의 두루는 둥글게의 뜻이다.


'두렵고'는 '둥글고'의 옛말로 , 그 원영에는 '두렷다'와 '두려(ᄃ)다'가 있다.


이 말에는 '두리'(둘레)라는 말이 나와 '두리목'(둥근 제목), '두리반'(두레상), '두리새암'('우물'의 사투리), '두리 함지박'(둥근 함지박)등의 말을 파생시켰고, '돌려가며 돕는다'는 뜻의 '두레'라는 말도 생겼다.


우리의 전통 옷 중에 두루마기가 있다.(두루+막이〉두루막이〉두루마기) 주로 예복 또는 외출할 때 겉 옷 위에 입는 한국 특유의 웃옷인데, 한자로는 주의(周衣), 주막의(周幕依)라고 해서 '둥글 주(周)'자를 넣는다.


그렇다고 보면 산마루가 두루뭉실하거나 어느 고장을 울타리 치듯 둥글게 휘어 돈 산을 두루산 또는 이에 가까운 산 이름으로 굳어 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두레산, 두른산, 도른산(돌은산)과 같은 방언 지명이 남아 있게되고, 더러는 두류(頭流), 두로(頭老) 등의 한자식 산이름으로 표기하게 되었을 것이다. 


 

(4) 백두산 맥이 흘러 '지뢰'되고 대흥사(大興寺)가 있는 호남의 명산 두륜산은 문헌에서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백두산은 지륜(地輪)(지리)이 흘러 지리가 되고,


천관(天冠)(장흥군에 있는 산)이 되며,


다시 두륜(지리)이 되므로 백두(白頭)라고도한다. "


〈신중동국여지승람(남원 도호부)〉


이로 보아, 두륜산이 지리산과 동의어가 됨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전국에는 '달' 또는 '둘'의 음을 취한 땅이름들이 무척 많다. 이러한 이름들이 산이나 고지(高地)에 많은 것으로 볼 때, 이 '달, 둘(두리)'이 산과 관련된 옛말임을 생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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