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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갑오년

문경 주흘산 2014. 4. 12

 

산행지 : 주흘산 (主屹山, 고도 1,106 M)

(위치)   경상북도 문경시         

산행일 : 2014. 4. 12

행사단체 : 산중인

산행거리 : 트랭글 측정거리 : 14.1 km

산행시간 : 6시간 02(시작 08 : 55, 종료 14:57) - 휴식시간 59

실 산행시간 : 5시간 03

평균속도 : 2.7km

날 씨 흐 림(아주 약간의 빗방울)

산행코스 및 소요시간(휴식시간 포함)

주차장(0855) 혜국사(2.8km/55) 대궐샘(1.4km,/49) 주흘주봉(0.8km/29) - 주흘영봉 (1.4km/31) - 꽃발서덜(1.5km/1시간) - 2관군/조곡관(2.2km/36) - 조령산 갈림길(1.5km/24) - 문경새재 주차장(2.5km/36)  

 

주요구간별 소요시간 :  06:10분 송파세무서 출발

                               08:55 문경새재 주차장 도착 (충주휴게소 경유 - 조식)

 

08:55분 산행시작

09:10분 제1관문 주흘관 

09:56분 혜국사

10:42분 대궐샘

11:15분 주흘주봉(5km/2시간 21분 소요) - 간식 30)

 

12:13분 주흘산 영봉

13:15분 꽃밭서덜

13:51분 제2관문/조곡관

13:54분 조곡폭포

          

14:15분 조령산 갈림길

14:18분 조령원터

14:27분 왕건촬영장

14:34분 제1관문 주흘관

14:38분 생태공원 입구 다리

14:47분 매표소

14:57분 문경세재 주차장

         

    

 <등산 코스>

- 1 코스 [5시간 30]
    주차장 문경관광호텔 관봉 주을산 영봉 - 주흘산대궐터 - 혜국사 - 여궁폭포 - 1관문 - 주차장 

  2 코스  [4시간 20
    주차장 - 문경관광호텔 관봉 - 주을산 대궐터 혜국사 - 여궁폭포 - 1관문 - 주차장

  3 코스 [3시간]

   주차장 - 매표소 - 1관문 - 올레길- 2관문 - 용추폭포 - 1관문 - 주차장

 

 

주흘산(主屹山)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북쪽에 위치한 산으로 높이는 1,106m이다.

조령산, 포암산, 월악산 등과 어우러져 산세가 아름답고 문경새재 등의 역사적 전설이 담겨 있다.

산의 북쪽과 동쪽은 깎아지른 듯 한 암벽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 동쪽과 서쪽에서 물줄기가 발원하여 신북천과 조령천으로 흘러드는데 이 물줄기들은 곳곳에 폭포를 형성한다.

그 중 유명한 것이 발원높이 10m의 여궁폭포와 파랑폭포이다.

산기슭에는 혜국사(惠國寺)가 있고, 주흘산과 조령산 가운데에 난 계곡을 따라서는 문경관문(聞慶關門)이 세워져 있다.


   해발 520m에 위치하는 혜국사는 신라 문성왕 8(846) 보조국사 체징(體澄)이 개창한 고찰인데, 고려 말 홍건적이 쳐들어왔을 때

공민왕이 난을 피해 이곳에 머물렀다고 해서 더욱 유명해진 절이다. 역사의 애환과 수많은 사연을 지닌 문경관문은 사적 제147호로

지정되어 있다. 1 ·2 ·3 관문 및 부속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1 ·2 ·3 관문은 양쪽 산의 골짜기에 위치하며 관문 좌우의

성벽은 능선을 따라 우회한다.
산 정상에 올라서면 운달산과 그 왼쪽으로 멀리 소백산 등이 이어진다. 남쪽에 백화산, 서쪽에 조령산, 북쪽으로는 1,107고지인 주봉이

보인다.

 

문경관문

  1966322일 사적 제147호로 지정되었다. 3관문 및 부속성벽이다.

 

  옛날에 영남에서 서울로 가려면 문경에서 주흘산(主屹山:1,106m)을 넘는 것이 보통이었다. 신라 때는 주흘산의 한 갈래인 대촉산(黛蜀山)을 넘어 계립령(鷄立嶺)으로 다녔고 조선 전기부터는 조령이 개척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남으로써 이곳에 중국의 산해관(山海關)과 같은 방위시설을 축조해야 한다는 논의를 낳았다.

 

  현지 실측(實測)이 시행되고, 1594(선조 27)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이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였다.
충주 사람으로 수문장(守門將) 출신인 신충원(辛忠元)이 조정의 결정에 앞서 조령에 머물면서 단독으로 설관(設關)에 착수하였다. 그가 이루어놓은 첫 번째 시설이 지금의 중성(中城)이다.

 

  중성은 1708(숙종 34) 크게 중창(重創)되었는데, 이것이 곧 제2관문이다.

숙종 때 제2관문에서 3km 떨어진 곳의 남적(南賊)을 방비할 제1관문을 세우고 초곡성(草谷城:主屹關)이라

하였다. 이들은 1890년대에 다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육축(陸築)에는 홍예문(紅霓門)을 열고, 성벽에는 총구멍이 있는 성가퀴를 돌리고, 한쪽에 큼직한 수구문(水口門)을 뚫었다. 숙종 때 조령 재 위에 북적(北賊)을 막기 위하여 조령산성(鳥嶺山城)을 쌓았다. 이것이 곧 제3관문으로 현재 경북과 충북의 경계에 위치한다. 3관문은 육축만 남겨 놓은 채 불타버려 1977년 복원하였다.

 

  제3관문은 양쪽 산의 골짜기에 위치하며 관문 좌우의 성벽은 능선을 따라 우회한다.

높은 봉우리 6분선(分線)에서 끝났다가 다음 골짜기에서 다시 이어져 초곡 ·중성 ·조령산성의 성벽을 이룬다. 동화원(桐華院)을 비롯하여 진()과 군창(軍倉)의 터가 있고, 경상감사(慶尙監司) 신임·후임자가 서로 교인(交印)했다는 교구정(交龜亭)의 터도 남아 있다. 문경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주흘산 조령관문 일원>

  19741210일 경상북도기념물 제18호로 지정되었다. 1708(숙종 34)에 백두대간의 주축인 주흘산에 중성(仲城)인 조곡관(鳥谷關)을 지으면서 주흘관(主屹關)에 초곡성(草谷城), 조령관에 조령산성을 각각 축조하였다. 이리하여 문경 제1관문인 주흘관, 2관문인 조곡관, 3관문인 조령관과 3개의 부속성이 자리 잡게 되었다.


   주흘산은 백두대간 주축에 자리 잡은 산으로서 문경관문은 조선시대에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려면 백두대간의 조령을 넘어 한양으로 가는 주요 통로의 하나였다. 관문 일대에는 조령원(鳥嶺院), 동화원(東華院)등의 원터와 신라 846(문성왕 8)에 창건한 혜국사가 있다. 일대의 총 면적은 4,209,908에 달한다.


   조령원터는 문경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에 자리잡고 있으며, 직사각형으로 면적은 약 1,980(600)이다. 삼국시대부터 건물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은 출장가는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기 위해 역과 역 사이 인적이 드문 곳에 두었던 것으로 조령원은 조령을 오가는 관원 및 과객들의 숙식과 호서와 영남지방의 물물교역 장소로도 사용되었던 곳이다.
   조령원터 주변에는 자연석의 석담이 정교하게 모 맞추어 쌓여져 있으며, 출입구와 석담 일부가 파손되어

1994년과 1995년에 두 번 보수하였다. 1977년에 문경군 주관으로 2차에 걸쳐 이곳을 발굴한 결과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온돌구조를 발견하였는데 이것은 한국 건축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조령(鳥嶺)

  경상북도 문경시와 충청북도 괴산군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로 해발고도 642m이다.

새재 또는 문경새재라고도 한다. 이화령(梨花嶺) 북쪽 약 7km 지점, 신선봉(神仙峰:967m)과 조령산(1,017m)의 사이에 있다. 예로부터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을 잇는 교통의 요지였고, 또한 험난한 지세에 바탕을 둔 군사상의 요충이기도 하였다. 이화령에서 수안보(水安堡)로 통하는 3번 국도가 뚫린 후 새재길은 사적지로 남게 되었는데, 최근에 이 일대가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옛날에는 우거진 송림과 박달나무로 유명했던 곳이다. 198164일 문경새재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높이 1,106m. 조령산, 포암산, 월악산 등과 더불어 백두대간의 중심을 이루며 산세가 아름답고 문경새재 등의 역사적 전설이 담겨 있다. 산의 북쪽과 동쪽은 깎아지른 듯한 암벽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또 동쪽과 서쪽에서 물줄기가 발원하여 신북천과 조령천으로 흘러드는데, 이 물줄기들은 곳곳에 폭포를 형성한다. 그중 유명한 것이 발원높이 10m의 여궁폭포와 파랑폭포이다. 산기슭에는 혜국사(惠寺)가 있고, 주흘산과 조령산 가운데에 난 계곡을 따라서는 문경관문(慶門)이 세워져 있다.

 

<산행개요>

  오랜만에 산중인 산행에 참석하게 되었다.

오늘 찾아 갈 산도 문경의 주흘산으로 근 20여 년 만에 다시 찾게 되었으니 이곳 역시 오랜만이다. 또한, 대장 임무를 수행중인 김총이 사무실에서 의외의 암초를 만나 힘들어 하는 시국에 함께 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찾은 주흘산은 많이 변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궐샘에서 주흘주봉까지의 급한 오름길 전 구간에 나무계단을 조성해 놓은 것이다. 주흘산행의 묘미는 이 오름길에 있는 것인데 모두 계단길로 변해 버렸으니 산행의 맛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또한 잔뜩 찌푸린 날씨로 정상의 조망이 터지지 않아 을씨년스런 날씨와 맞물려 마음도 을씨년스러워 진 그런 산행이 되고 말았다.

 

 

<산  행  지  도>

 

 

 

 

 

 

 

<그  림  산  행  기>

▼ 08:55분

 6시 10분쯤 송파세무서에서 출발한 산악회 버스는 충주휴게소를 경유하여 아침식사를 하고 ,

문경세재 추차장에 도착하였다. 도착하자 마자 전회원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 문경세재 옛길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선비상에서 전회원의 기념사진!!

 

 

▼ 주흘관봉을 배경으로 서 있는 박물관 전경!!

 

 

▼ 약 10분 후 제1관문인 주흘관이 시야에 들어온다.

 

 

▼ 등로는 주흘관을 지나자 마자 우측으로 90도 꺽이어 진행되고 있다.

 

 

▼ 주흘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작은 계곡을 만나며 어프로치는 계속 이어진다.

 

▼ 이 이정표에서 우측으로 진행하며 어프로치는 끝이 나고 본격적인 산행으로 진입한다.

 

▼ 09:23분

시멘트 포장길이 끝나고 돌계단길을 만나게 되는데 이후의 등로는 거칠지 않은 너덜길이 곳곳에 등장한다.

 

 

▼ 09:30분 여궁폭포를 통과하고...

 

 

▼ 계곡을 건너게 해주는 작은 다리를 만난다.

 

 

 

▼ 09:56분 혜국사 앞을 지나게 되는데 절 구경을 시도하는 회원은 아무도 없었다.

사정이 이러한데 산객들에게 문화재 관람료를 꼬박 꼬박 챙겨 가는 뭇 사찰들의 행태가 꾀씸해 지는 대목이다.

 

  혜국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846(신라 문성왕 8) 체징(體澄)이 창건하였으며, 창건 당시에는 법흥사(法興寺)라고 하였다.

 

 

 

 

 

고려 말에 홍건적의 난이 일어났을 때 공민왕(재위 13511374)이 이곳으로 피난하였다고 한다.

1592(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이 절의 승려들이 크게 활약하여 나라에서 절 이름을 혜국사로 바꾸었다.

   임진왜란 당시에 청허(淸虛)와 송운(松雲기허(騎虛) 등이 이 절에 머물며 승병을 지도했다고 한다.
산내 암자로 안정암(安靜庵)이 있으며, 건물로 대웅전·관음전·산신각·큰방·요사(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은 정면 3,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양식으로 내부에 아미타불이 봉안되어 있다.

아미타불의 좌우에는 각각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보살로 있는데, 보관 장식은 화려하지만

영락 등의 장식이 전혀 없으며, 육계가 아닌 상투의 형상을 뚜렷이 하고 있다.

관세음보살은  오른손에 감로수병을 들고 있으며, 불단의 왼쪽에는 신중단(신중탱), 오른쪽에는 지장단(지장탱)영단을 두고 있다.


종래 대웅전이었던 현재의 관음전에는 백의관음탱이 걸려있고, 작은 금동 관세음보살이 유리곽 안에 봉안되어 있다.

크기는 작지만 가슴에 간략화된 형태의 영락 매듭 장식이 있고, 옷의 주름 흘러내림이 유연하며 높다란 상투 등이 잘 나타나고 있다.

유물로 조선 후기에 조성된 부도 4기가 남아 있다

 

 

▼ 약간의 오름길을 지난 안부에서 다리쉼을 하고 있는 회원님들....

 

▼ 이어지는 등로에는 몬의 전령사인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군락지를 지나고..

 

 

▼ 10:42분 대궐샘을 만나다.

샘에서 목을 축이며 다리 쉼을 하며 후미회원들을 기다리었다.

한편, 대궐샘 우측으로 있는 등로는 폐쇄 되었는데 이 폐쇄된 등로는 주흘 주봉으로 직접오르는 빠른 길일 것이다.

폐쇄되지 않은 등로는 모두가 계단길로 변해 버리었다는 것을 이때는 상상하지 못했었다.

 

 

 

 

▼ 정상을 향하는 계단길의 시작점!!

 

▼ 쭈욱 뻗어 있는 게단길이 그림처럼 내 앞ㅇ,ㄹ 가로 막고 있는 모습!!

 

 

▼ 약 10분간을 계단 산행을 하였다.

 

▼ 잠시 평탄한 등로가 등장하고...

 

 

▼ 11:02분 대궐터능선 삼거리

좌측길은 역시나 폐쇄되었고....

 

 

▼ 2분후 다시 계단길을 만나게 된다,

 

 

▼ 11:08분지도상 탈출로인 2관문 갈림길!!

 

▼ 11:12분 영봉갈림길

주흘주봉을 오른 후 영봉을 가기 위해서는 이 갈림길로 되돌아 내려 와야 한다.

 

▼ 11:15분 주흘산 주봉

약 2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주흘주봉은 먹구름이 잔뜩 끼여 있고 약간의 바람가지 더해 지어 회원들이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

여기서 간식을 나누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 오직 주흘관봉만이 조망되고....

 

▼ 아련히 아햇마을 모습이 시야에 들어 올 뿐이었다.

 

 

▼ 약 30여분간 간식을 마치고 주흘영봉을 향하며 삼거리 갈림길로 원점회귀 하였다.

 

▼ 야생동물 배설물을 등로에서 만난다!!

    어느녀석이 어른들 다니는 길가에 실례를....??

 

▼ 지도상 1032봉 오름길에서 뿌리채 뽑힌 고목나무를 만났는데 나무뿌리가 바위 한덩어리를 품고 있었다.

 

 

▼ 12:13분 주흘영봉에 도착하였다.

주흘정상에서 이곳까지는 꾸준한 걸음으로 약 30여분이 소요되었다.

 

 

 

▼ 영봉을 올라 직진길은 부봉을 향하는 등로가 있는데 이런 이정표가 있었다.

백두대간을 하며 부봉을 처음 만났었고 거기서 김 명호 조사관도 처음 만났었다.

 

▼ 추억을 뒤로 한채 이제는 하산길이다.

 

▼ 여성회원 한분이 걸음이 갑자기 늦어지며 선두는 고리도 안보이고 가 버렸다.

쳐지는 여성 분을 추월하지도 못하고 뒤따라 내려 가려니 답답증이 몰려 온다.

그런 가운데 약 50분 후 작은 개울을 만나며 실질적인 등로는 끝이나게 된다.

 

▼ 약 2분후 갈림길 삼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 여기가 꽃밭서덜이다.

꽃밭서덜에는 작은 돌탑들이 산객들의 노고를 풀어 주고 있었다.

 

 

 

▼ 이어지는 등로는 임도같지 않은 평탄한 길이 신작로처럼 뻗어 있다.

 

 

 

▼ 이 주흘산 안내판을 만나며 실제 산행은 끝이 났다고 보아야 한다.

곧이어 제2관문인 조곡관을 만나고 이후로는 산책로를 따라 관광객들과 어우러져 주차장으로 되돌아 가는 길이다.

 

 

▼ 13;51분 제2관문 조곡관

 

 

▼ 13:54분 조곡폭포

 

 

 

 

 

 

 

 

 

 

 

 

▼ 14:15분 조령산 갈림길

대간 산행시 이등로로 이동을 하였던 추억이 되살아나 다시 한 번 추억에 물들며 바쁜 걸음으로 이동을 계속한다.

 

▼ 14:18분 조령원터

 

 

 

▼ 왕건세트 촬영장!!

이 촬영장이 들어서면서 부터 이곳에 관광객들이 갑자기 늘어나게 한 시설물이다.

 

 

▼ 조령산과 대간길을 배경으로...

 

 

 

 

▼ 14:34분 산행처음 만났던 주흘관을 다시 만나고...

 

 

▼ 나는 하천건너편에 조성된 생태공원을 향하여 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 다리를 건너 생태공원에 다다르자 주흘산 능선이 더욱 또렷이 시야에 들어 온다.

 

 

 

 

▼ 14:47분 매표소에 도착하며 오늘 산행을 마치게 된다.

이곳 매표소에서 주차장까지는 약 10여분이 소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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