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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 나 다

36. 캐나다 제 9 일차, 3. 퀘벡(Québec) 구시가지 탐방

 캐나다 제 9 일차(2023. 10. 05, )

3. 퀘벡(Québec) 구시가지 탐방

 

 

105일 전체일정

몬트리올에서 몽모랑시 폭포(Montmorency Falls)로 이동

2. 몽모랑시 폭포(Montmorency Falls) 탐방

3. 퀘벡(Québec) 구 시가지 탐방

4. 몽트랑 블랑(Mont Tremblant) “RESIDENCE INNMONT TREMBLANT HOTEL” 입실

 

 

<몽모랑시 폭포 ~  퀘벡 이동경로>

 

퀘백(Québec)

퀘벡 주 카피탈나시오날 행정 지역의 중심 도시로,

퀘벡 주 의회와 같은 주요 기관이 자리 잡고 있다.

2016년 기준 퀘벡 시의 인구는 53만 2천여 명이고

광역인구는 80만 명으로 퀘벡 주에서 몬트리올 다음으로 가장 큰 도시이기도 하다.(출처 : 위키백과)

 

퀘벡 주의 수도인 퀘벡시는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퀘벡은 원주민어로 ‘강이 좁아지는 곳’이란 뜻이다.

 

한 때는 유럽 열강의 격전지로 북미의 “지브랄타”라고 불리우는데

세인트 로렌스강과 로렌시앙 산맥사이에 넓게 펼쳐져 있는 지역으로,

세인트 로렌스 강은 퀘벡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로서 중요한 전략적 가치 때문에

이 강을 사이에 두고 영국과 프랑스 간의 무수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이런 이유로 퀘벡시에는 항구를 방어하는 성벽과 군사요새가 많아

북미에서 유일하게 성곽에 둘러 싸인 독특한 도시가 되었으며,

원주민과 함께 프랑스와 영국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각자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를 영위하며 어우러져 살고 있다.

 

1985년 유엔의 세계유산문화 보존지역으로 지정되며 가치를 더욱 인정받고 있다.

원주민과 유럽 이민자들이 각자의 문화를 영위하며 어울려 살아간다.

그러나 주민의 95%가 프랑스어를 사용하며,

프랑스 전통을 긍지로 여기는 지역으로  공영어는  영어라 하지만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불어만 통하는 곳이 많은 실정이고,

두 번이나 국민투표를 통해 캐나다 주연방으로부터 독립하려 했으나 불발되었다.

 

캐나다 속의 유럽, 캐나다 속의 프랑스라고 불리는 퀘벡은

캐나다인 들도 꼭 한 번은 가고 싶어 하는 여행지다.

 

오래된 도시여서 눈부신 풍광과 다양한 문화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퀘벡은 크게 'Upper Town과 LowerTown'으로 나뉘는데

둘 사이의 케이블카를 통해 이동할 수 있는데

케이블카는 사면이 다 유리로 되어 있으니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탑승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Upper Town'에는 샤토 프롱트낙 호텔, 더프린 테라스, 다름 광장, 화가의 거리, 노트르담 성당 등이 있다.

 

<퀘벡 구시가지 탐방 개념도>

 

 

캐나다 동부 여행지에서 대도시 탐방은 몬트리올과 이곳 퀘벡 두 곳이 전부였다.

그런데 몬트리올에서는 비행기 연착 등의 이유로 주마간산 격으로 진행이 되어 아쉬움이 많았는데

이곳 퀘벡도 마찬가지로 진행이 되고 말았다.

 

다름 광장에 도착하여 가이드의 안내로 ‘Upper Town’을 둘러본 후 ‘LowerTown’의

빨간 문 앞에서 자유시간 1시간을 부여받았지만

그 한 시간으로 모두 돌아본다는 것은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그 로 인하여 노트르담 성당, 샤토 프롱트낙 호텔 내부는 물론이요

더프린 테라스조차도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엉터리 탐방이 되고 말았다.

 

이 대목에서 스페인 여행 시 마드리드 여행과 비교가 된다.

그때 만났던 김신웅 가이드는 탐방지 전체를 순서적으로 동선이 겹치지 않게 함께 이동을 하며,

내부를 함께 드나들기도 하며 참석자들에게 꼼꼼히 모든 관광지를 직접 안내하고

설명을 곁들여 주어 알찬 관광을 하도록 해주었기 때문에

마드리드에서 볼꺼리 전체를 무난하게 관광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윗마을에서 아랫마을로 함께 내려가

그곳에서 자유시간 1시간을 주고 알아서 다니라 하니

다시 윗마을로 올라갔다 버스 출발지인 아랫마을로 내려와야 하는

이동을 해야 했기에 동선이 겹치고,

그로 인하여 가뜩이나 부족한 시간에 불필요한 시간을 허비하게 된 것이다.

 

다름 광장에서 처음부터 유명 관광지를 함께 다니고 자유시간을 주지 않았더라면

훨씬 내용이 있는 투어가 되었으리라 결론을 내게 되니 더욱 아쉬움이 배가된다.

투어가 이리 진행 될지 알았다면 처음부터 가이드의 설명 없이

아내와 함께 둘이서 관광을 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 몽모랑시 폭포 주차장을 떠나면서 한번 더 확인을 한다.

 

  ▼ 주차장을 벗어난 전용버스는 이내 '왕의 길이라는 도로를 통과하게 되는데 

퀘벡 시티와 몬트리올을 연결하는 360번 도로를 왕의 길(Chemin du Roi)’이라 하는데

프랑스인들이 개척한 옛 도로라고 한다.

 

10여 분 후에 '까사 그랙(casa grecque)이라는 현지식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게 되는데

몽모랑시 폭포에서 불과 6km 정도에 위치해 있었다.

 

   실내로 들어 서자 무언가 좀 있어 보이는 실내 인테리어를 보여 주는데

이 음식점은 랍스타와 스테이크를 전문으로 운영을 하고 있었다.

 

   예약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잠시 기다리자,

 

    직원들이 음식을 날라 주는데 오늘 메뉴는 '수블라키 스테이크'로 '그리스식 스테이크'란다.

 

   고기를 먹지 못하는 아내에게는 야채를 곁들인 스파게티 종류를 제공받게 되었다.

 

   그리스식 스테이크는 또 무언인가 하였더니 볶음밥 형태의 약간의 밥과 고기를 내어 주는데

푸른 야채를 곁들였고 묽게 보이는 소스가 첨부되어 있었다.

 

   친절한 직원들의 서비스를 받으며 크게 거부감 없이 한 끼를 해결하게 되었다.

 

    음식점 '까사 그랙(casa grecque)' 앞의 도로를 확인하고,

 

 

  ▼ 약 50여분 간의 여유로운 식사 시간을 뒤로하고 '왕의 길'을 따라 퀘벡으로 향하게 된다.

 

   약 20여 분 후 퀘벡 구시가지의 중심 '다름 광장(Place d'Armes)'에서 하차하여 탐방을 시작하게 된다.

다름 광장은 '샤토 프론트냑 호텔' 앞에 위치하며, 구시가지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광장으로

프랑스 통치시대에는 '그랜드 공원(Glande Place)'으로 불리웠단다.

 

과거에는 군대의 훈련, 퍼레이드 등이 펼쳐지던 장소였는데1900년대부터 대중에게 개방되며 공원으로 바뀌었다.

퀘벡시를 여행하는 경우 대부분 이 다름 광장에서부터 시작하게 되는데

북미에서는 유일하게 유네스코에서 선정된 세계문화유산 지역으로 지정될 만큼 아름다운 광장으로

세인트 로렌스 강의 멋진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멋진 고고학적 장소이기도 하다. 

 

'사무엘 드 샤를랭(Samuel De Chanplain, Monument de Samuel de Champlain)' 동상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는 서기 1567년에 출생한 프랑스군 사령관을 역임한 후,

퀘벡을 건설한 초대 총독으로 1635년에 퀘벡에서 사망했다.

 

   사뮈엘 드 샹플랭(Samuel de Champlain) 동상

퀘벡(Quebec)을 개척한 프랑스의 탐험가였던 사뮈엘 드 샹플랭은 17세기 프랑스의 탐험가로

캐나다의 식민지 개척자이고 뉴 프랑스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청년시절 앙리 4세 치하에서 위그노 전쟁에 종군하였고, 훗날 왕명으로 캐나다를 탐험(16031607) 하고, 

세인트 로렌스강과 포트 로열 항을 조사하고 퀘벡을 건설하였다(1608).

그의 이름을 붙인 섐플레인호()를 발견하여 그 지방 경영을 담당하고, 

모피거래에도 손을 대고 초대 총독이 되었다.(1620).

 

1628년 리슐리외에 의하여 식민지 측의 감독으로 뉴프랑스의 멤버에 지명되었다. 

그는 1629년 영국의 퀘벡 침입 때 포로가 되었으나, 1633년에 복귀하여 퀘벡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탐험기는 영국에서 1659, 프랑스에서는 1670년 각각 출판되었다.[두산백과]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요새 박물관(Musee du Fort)' 을 바라보며,

 

   더프린 테라스(Terrasse Dufferin - Lieu historique national des Fortifications-de-Québec)를 지나게 된다.

1859년에 지은 긴 '뒤프랭 테라스(Terrasse Dufferin)'는 샤토 프롱트낙 호텔과 요새의 중간에 자리 잡은 넓은 산책로로

강과 선박, 산이 조화를 이루는 퀘벡시의 전경을 감상하기에 좋은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어

여기에서 경치를 즐기며 휴식을 취하기에 더없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그 길을 걸으며 '샤토 프롱트낙 호텔(Chateau Frontenac hotel)'  호텔 옆을 스치듯 지난다.

이 호텔 내부에는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들어가 쉬었다 갈 수 있게 의자도 되어 있고, 카페와 쇼핑몰도 입점되어 있다.

정식 이름은 '페어몬트 르 샤토 프롱트낙(Fairmont Le Château Frontenac)' 호텔로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과 영국의 처칠 수상이 이 호텔에서 회담을 진행한 결과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결정된 곳으로 유명한 호텔로 세인트 로렌스강이 내려다 보이는 

19세기 성의 외곽에 위치한 고전 양식의 호텔이다.

 

1893년부터 짓기 시작했으며 퀘벡시의 명소로 꼽히는 곳으로

여행자들에게 아주 유명한 호텔로 하루 숙박비가 최소 50만 원 이상이라고 한다.

 

  다름 광장 주변은 제법 공간이 넓은 편으로 대형버스도 주차가 용이하고,

주변을 관광하는 투어버스들의 출발점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요 동상은 머지??, 기억이 잘~~~~(쩝!!!!)

 

  다름 광장을 벗어나 화가의 거리로 불리는 '뜨레조 거리(Rue du Tresor) '로 들어선다.

화가의 거리답게 '길거리 갤러리'가 늘어서 있으니 누구나 자유스럽게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화가의 거리를 지나 '노트르담 성당(Notre-Dame Basilica of Quebec City)'앞을 지난다.

퀘벡에는 노르트담이라는 이름의 성당이 두 곳이 있는데 승리의 성모교회와 이 '노트르담 성당'으로

그중 더 웅장하고 유명한 성당인 노트르담 성당은 북미 대륙에서 가장 유서 깊은 곳으로

성당 내부에는 호화로운 장식과 루이 14세가 기증한 수많은 예술 작품들이 있다.

 

1647년 지어진 화려한 교회로 여러 차례 재건 되었으며 유서 깊은 지하묘지가 있는데 

프로트낙 주지사와 역대 퀘벡 주교들이 묻혀 있으며, 성당 건너편에는 시청사와

캐나다의 초대 추기경인 ‘Tas Chereau’를 기념하기 위한 탑이 설치되어 있다.

 

조금은 단순해 보이는 외관에 비해 성당 내부는 굉장히 고급스럽고, 화려하단다.

올드퀘벡 방문 시 꼭 가봐야 할 곳 중 하나로 하얗고 깔끔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는데

시간관계상 이 성당 내부를 만나지 못하고 말았다.

 

   다름 광장을 벗어 나 노트르담 성당 뒷골목 길로 내리막 길을 지나는데

이곳은 의외로 한적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우리는 이 한적한 경로로 아랫마을로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이어서 '로얄 광장(Place Royale)'을 만나게 되는데 이 광장은 개척시대 최초의 캐나디언들의 물물교역 장소이며

퀘벡의 발상지라 하니 한 마디로 옛 시장으로 아름다운 조약돌 광장으로 주변에 카페, 상점과 '승리의 교회'가 있다.

 

이 광장은 퀘벡이 시작된 곳으로 1628년 도시의 설립자인 사무엘 드 샤를랭(Samuel De Chanplain)”

세인트 로렌스 강어귀에 정착하면서 프랑스 문화의 요람이 되었으며,

북미 대륙에서 프랑스 문화의 자취를 가장 많이 간직한 곳이다.

 

광장의 본래 명칭은 '마르쉐 광장(Place De Marche)' 였지만, 이 지역이 경제적으로 번영하자

1686년 광장 한가운데에 루이14세 동상을 세웠고그의 이름에서 이 광장의 이름이 유래하였다.

하지만 이 동상은 1713년 분실되었고 현재의 동상은 1665년에 제작된 르 베르넹(Le Bernin)’

대리석 작품을 복제하여 조성한 것이다.

 

이 지역은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으로 인해 여러 번 주인이 바뀌며 번영과 쇠퇴의 반복이 있었지만

후에 퀘벡 주정부가 거리를 정비하여 고풍스러운 옛 모습을 찾았으며,

현재는 활기가 넘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니 

이곳의 좁은 길과 고색창연한 집들은 퀘벡의 4백 년 역사를 지켜본 증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루이 14세 조각상을 확인하고,

 

  ▼ 석조건물인 '승리의 교회(Notre-Dame-des-Victoires)를 만나게 된다. - 인근에 프레스코 벽화건물

승리의 '노트르담 교회(Notre-Dame des Victoires)'는 '노트르담 대성당(Notre-Dame-de-Québec Church)'의 일부로

1687년에 건축이 시작되어 1723년에 완료된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교회라 한다.

 

승리의 노트르담 교회가 지어진 이후, 영국과 프랑스의 대립으로 인한 7년 전쟁(17561763)이 일어나

프랑스 식민지의 중심이었던 퀘벡시티에서의 격전은 매우 치열했는데,

프랑스군은 퀘벡시티에서 벌인 '아브라함 평원 전투(1759)'에서

제임스 울프(James Wolfe)’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에게 패하게 됨으로써,

퀘벡주는 영국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계속되는 식민지 전쟁에서는 영국이 승리를 거두어

1763년 파리 조약의 체결로 북아메리카와 인도에서 프랑스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 대영제국의 기초를 닦게 된다.

 

성당 이름인 ‘Notre-Dame des Victoires’를 우리나라 말로 하면 승리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인데,

승리의 노트르담 교회는 1690년과 1711년에 있었던 영국군의 공격에 대한 프랑스의 승리를 기념하며

도시 최초의 정착지에 세워졌기에 프랑스계 캐나다인에게는 의미기 꽤 깊은 곳으로,

성모 마리아가 요새 도시인 퀘벡 시티를 위험으로부터 2번이나 보호해 주었다고 믿는다 한다.

 

    북미 최초의 석조 성당인 승리의 교회

 

    이어서 퀘벡의 또 하나 명물인 '벽화건물(La Fresque des Québécois)'을 만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래?? 하필이면 보수공사 중으로 가림막이 턱허니 가리고 있어 아무것도 만날 수 없는 지경이다.

 

퀘벡의 '프레스코 벽화(La Fresque Des Quebecois Wall Mural Quebec City)'는 

승리의 교회 바로 옆에 위치하여 퀘벡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초대형 프레스코 벽화로

퀘벡 역사의 주요 인물을 담은 5층 규모의 벽화로 퀘벡시티의 벽화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

 

퀘벡에서 아주 오래된 5층 짜리 건물 외벽 바탕에 그려진 거대한 벽화가 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인데

이 벽화는 프랑스 출신의 화가 12명이 2,550시간의 작업 끝에 1999년 완성한 대작으로

이 벽화에는 캐나다 역사상 중요한 인물들이 그려져 있다. 

프레스코 벽화는 크기도 웅장하고 화려하여 멀리서 보면 볼수록 더 생생한 느낌이 드는데 

이 벽화는 퀘벡의 역사를 표현한 것이고, 퀘벡의 문화와 자연을 함께 그리고 있기도 하다.

 

벽화 내용은 지구본을 들고 있는 자크 카르티에, 퀘벡에 처음 정착한 사무엘 샹플랭, 퀘벡 최초의 라발 주교, 

미시시피 강을 발견한 항해자 루이 줄리엣 등이 창문과 계단, 골목길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라일락 피는 봄과 아이스하키로 표현되는 여름 등 퀘벡의 아름다운 사계절도 그려져 있다는데 지금은 공사 중이다.

 

어쩔 수 없이 넷상에서 벽화 사진 한 장을 구해 사진으로 감상을 해 보는데

프랑스 샤머니에서 만났었던 프레스코 벽화를 연상시키기고 있었다.

이 벽화도 샤머니의 그 벽화에서 영감을 받아 조성한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 이 사진은 공사로 인하여 가림막으로 가려진 현장 사진이 되겠다.

어쩌면 풍화작용에 의해 훼손된 부분을 덧칠하는 것 아닌가 상상해 본다.

 

 

  ▼ 그 벽화건물옆의 골목길로 진입하자

'윗마을과 아랫마을 (Upper Town과 LowerTown)'을 연결해 주는 케이블카가 올려다 보이고,

 

  쁘띠 샹플랭((La Fudgerie, Rue du Petit Champlain) 거리 입구인 '목 부러지는 계단(Esc. Casse-Cou)'을 만난다.

도깨비라는 드라마 이후 한국인들에게 유명해진 빨간 문과 미친 돼지를 연이어 만나며

번잡한 골목도시인 쁘띠 샹플랭을 아내와 함께 걸어 보게 된다.

 

그런데 이 목 부러지는 계단을 만나면 누구나 의혹을 살만한 모양새다.

경사가 좀 있는 계단이지 여기서 목이 부러지겠나 싶은 의혹이 드는 계단이니 많이 살벌한 계단 이름이다.

대부분 위와 같이 생각을 하고 있으나 이 '목 부러 지는 계단'의 지명은

경사가 심하여 밑에서 위로 올려다보면 목이 아파지는 현상을 과하게 표현하여 만들어진 지명이란다.

 

   쁘띠 샹플랭 거리는 좁다란 골목에 조그마한 상점들과 레스토랑들이 

양 옆의 골목을 차지하고 영업을 하고 있으니 호기심 차원으로 그냥 거닐만하였다.

 

  ▼ 일명 도깨비 빨간 문이다. "도깨비 빨간 문(Goblin red door)"

 사실 별거 없는 그냥 빨간 문이지만, 이 앞에는 항상 동양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한국사람뿐만 아니라 중국사람 혹은 동남아 사람들도 꽤 많이 여기서 사진을 찍는단다.

 그런 모습을 의아하게 여기는 서양사람들의 모습을 만나기도 하는데

이는 드라마 방영으로부터 꽤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유지되고 있는 것이 한류의 힘인가 보다.

 

  ▼ 빨간 문 바로 인근에 있는 '레스토랑 미친 돼지(Cochon Dingue)'

이곳은 한국인들에게 빨간 문과 더불어 필수 인증코스인 돼지고기 전문점으로

삼겹살에 맛 들인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레스토랑이라 한다.

그러나 도깨비 드라마를 보지 않은 아내와 내게는 별 감흥 없는 장면들이었다.

 

 ▼ 좁다란 골목길 사이에도 이런 공간이 있어 잠시 의자에 않아 다리 쉼을 해보는데

사실 바로 옆의 음식점에서 운영하는 공간을 무단침입(?) 한 것이 되고 말았음을 눈치채고 이내 자리를 비워 주었다.

 

 

  ▼ 사진 두어 장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골목길을 다시 걷는데 제법 큰 매장도 눈에 보인다.

쇼핑을 좋아하는 관광객들에게는 안성맞춤의 쁘띠 샹플랭 거리가 되겠다.

 

  ▼ 돌고 돌아 '목 부러 진 계단'을 다시 찾아가 정식으로 인증을 한 후에,

 

  ▼ ' 샤토 프롱트낙 호텔(Chateau Frontenac hotel)'  호텔 지붕 부분이 올려다 보인다.

 

  ▼ 해변가를 둘러보는데 크루즈선이 정박해 있고,

 

    커다란 화강암 바위 밑에 바퀴를 만들어 아이들 놀이기구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 특색 있게 보였었다.

 

  ▼ 국기 게양대 에는 캐나다와 프랑스 국기가 나란히 게양되어 있어 퀘벡의 정체성을 간접적으로 설명해 준다.

 

    임자 없는 파라솔을 차지하여 잠시 한숨을 돌린 후에,

 

   루이 14세 동상을 다시 만나고,

 

  윗마을(Upper로 다시 올라 가 '요새 박물관(Musee du Fort)' 앞을 지나게 된다.

 

  ▼ 즉, 다름 광장으로 되돌아가 'Upper Town과 LowerTown'을 이어 주는 케이블 카 승강장에 도착하여

아내와 의견이 갈라진다.

나는 타 보자!!

아내는 타지 말자, 돈도 내야 될껄??!!

누가 이기겠나??

내가 져야지... 

하여, 좀 전에 단체로 가이드의 설명 들으랴 사진 찍으랴 정신이 없어 대충 보았던 다름 광장을 한번 더 만나게 된다.

 

  ▼ 이번에는 목 부러 지는 계단을 통하여 아랫마을(LowerTown)로 내려가서 ,

 

  ▼ 전용버스를 타기 위해 일행들과 '왕관 문' 앞에서 합류하며 퀘벡 탐방을 마치게 된다.

 

   오늘 탐방지는 몽모랑시 폭포와 퀘벡 2곳뿐이었는데 시간은 벌써 오후  4시다.

가이드는 기후적으로 이번 주가 관광피크인지라  인파도 많고 차량정체도 심하다 설명을 해 주는데

왕관 문 앞 도로에도 제법 많은 차량들이 운행을 하고 있어 다소 혼잡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인도계 운전기사인 '수다'와 아내의 사진을 마지막으로  이제 오늘 숙박지인 몽트랑 블랑으로 이동을 하게 된다.

아내와 사진 한 장 찍는데 이 친구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무척이나 쑥스러워하여 사진을 권유한

나를 당황시키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