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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 키

터 키 42. 히포드럼 광장(Hippodrome) 탐방후 석식


터 키 42. 2017. 04. 09(5) 히포드럼 광장(Hippodrome) 탐방후 석식

탐방시간 : 30분 소요

석식장소 : Buhara 93 Restarant




  히포드럼(Oippodrom)광장과 오벨리스크(Obelisk)


명성에 비하여 실망감이 왔던 블루모스크 탐방을 마치고

바로 앞에 펼쳐져 있는 히포드럼 탐방을 하게 된다.

히포드럼 광장은 196년 로마 황제 세비루스(Severrus)에 의해 지어진 검투 경기장 이었는데

4세기 무렵 비잔틴 황제인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검투 경기는 금지되고 그대신 말이 끄는 마차 경기장으로 바뀌였으며

10만명 정도 수용이 가능했다고 하며

 이곳은 경마장으로 이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왕위 계승을 놓고 수 많은 전쟁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13세기 초 십자군의 침입으로 이 광장에서 비잔틴군과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고

대부분의 광장내 유적이 이때 파괴되었는데 현재 이곳에는 귀중한 세 개의 기념비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데

우리는 이미 어제 오늘 이틀간 수시로 이 광장을 지나 다녔었다. 


우리 일행들은 블루 모스크 입장시 뒷문을 이용하였고

퇴장시에는 정문으로 나오게 되었으니

그 정문 앞에서 광장을 바라보고,




블루 모스크 정문 모습을 각인을 하고 히포드럼 광장으로 접근을 하게 되었다.






콘스탄틴 오벨리스크(Constatine Obelisk)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높이가 32m로 거칠게 깍은 벽돌 모양의 돌을 쌓아 올려 세운 것이다.

정확한 건축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약 4세기경 처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869년에 지진으로 상층부가 일부 무너진뒤 많이 훼손되어 있던 이 기둥을

 콘스탄티누스 7(Constantine , 913 ~945 재위)940년 경에 수리하여

콘스탄틴 오벨리스크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당시 콘스탄티 누스7세는 할아버지 바실리우스 1(Baskl . 867 ~ 886)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이 기둥을 황금빛 청동으로 표면을 장식 했었다는데

이 청동장식은 제4차 십자군 원정 때인 1204년 십자군이 이곳을 점령한 후

 동전을 주조하기 위하여 청동을 모두 떼어내 지금은 돌기둥만 남아 있고

 1894년 지진으로 부서 졌으나 최근에 복구 되었단다.



그 콘스탄틴 오벨리스크 박물관이 보이고 앞에 보이는 것은

청동으로 제작 된 뱀기둥인 Serpent Column 이다.



 두 번째로 만나는 것은 테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Obelisk of Theodosius)로 이집트에서 옮겨와

이집션 오벨리스크(Egytian Obelisk)로 불리우기도 한다.

 

이 이집션 오벨리스크는 이스탄불에서 가장 오래된 기념비로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숭배의 상징으로 세웠던 네모진 거대한 돌기둥으로 된 기념비이다.

하나의 돌로 구성된 통돌로 위쪽으로 갈수록 가늘어지고 꼭대기는 피라미드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오벨리스크 하단부에는 다양한 조각을 새간 받침대가 있는데 조각의 내용은

황제의 자리에서 전차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황제와 가족들, 주요관리, 민중들, 음악가와 무용수들

그리고 전차경기를 새긴 부조물로 되어 있다.

 

기원전 1500년경 이집트의 파라오 투트모스 3세가

유프라데스강 유역의 카데쉬에서 히타이트 군대를 격파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집트 룩소르 카르낙 신전에 세운 것으로 신전의 동서남북을 지키는 오벨리우스였다.


서기 390년에 비잔틴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이집트 신전에서 옮겨와 이곳에 세웠다 해서

 데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라고도 하는 데 6.5의 지진에도 견디고 있단다.

이 오벨리스크를 이집트에서 옮겨 온 사람은 유리아누스라고 하는데

 배에 싣고 나리 강을 따라 올라와 지중해를 거쳐 이곳으로 옮겼는데

원래 높이는 32.5m였던 거대한 돌기둥은

옮기는 과정에서 약 12m가 깨어져 나가 지금은 20.5m에 불과하단다.



광장 맨끝 북쪽에는 카이저 빌헤름 분수(Kaiser Wihelm’s Fountain)가 위치해 있는데

저 분수는 독일 황제 빌헤름 2(Wihelm , 1859 ~ 1941)

세계 1차 대전 직전인 1898년 이스탄불을 방문하였을 때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슐탄 압둘하미드 2(Abdalhamid , 1842 ~ 1918)의 극진한 환대에 감복하여

그에 대한 보답으로 독일에서 제작하여

19009월에 이곳까지 이동하여 조성한 것이라 하는데

단순히 독일분수(German Fountain)이라 부르기도 한단다.



오벨리스크에 신경을 쓰느라 잠시 보류 했었던 Serpent Column을 다시 확인하였다.

이것은 콘스탄티누스의 기둥이라고 알려진 오르메 수툰(Orme Sutun)”으로

아폴로 신전에서 가져온 세 마리의 뱀이 서로 뒤엉켜

직경 3m의 황금그릇을 받치고 있는 형상의 셀팬타인 기둥(Serpentine)인데

BC 479년 그리스 연합군이 페르시아와의 전쟁 플라타이아이 전투(Bettle of Plataiai) 에서의  

승전 기념으로 페르시아 패잔병들의 방패를 녹여 만든 것인데


이것은 본디 고대 그리스 델포이(Delphi) 아폴로 신전에 있던 것을

 콘스탄티누스 1세 세계의 중심이 델포이에서 이곳 비잔틴 제국 콘스탄티노플로 바뀌었음을

선포하기 위해 옮겨와 다른 탑과 여러 상()들과 함께 하포드럼 중앙에 배치 하였단다.


본래 모습은 뱀 세 마리가 서로 휘감겨 올라가는 형상으로

세 마리 뱀 머리가 기둥 꼭대기에서 직경 2m 가량의 황금 트로피를 받치고 있는 모습이였다 한다.

그러나 황금 토로피는 제4차 십자군 피습때 약탈되었고

뱀 머리들은 17세기 말경 모두 파손되었고

뱀 머리 세 개중 하나. 그것도 일부분만 복원되어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단다.









광장인근 식당가에서 저녘 식사를 한 후

 아타튀르크 공항으로 이동을 하여 귀국길에 오르게 되니

 히포드럼 광장의 오벨리스크와 뱀기둥을 만나는 것으로 우리는 터키 투어 전체 일정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역시나 히포드럼 광장 인근의 식당가에 위치한

Buhara 93 Restarant 이란 곳에서 터키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하게 되는데

역시나 빵이 주메뉴인 케밥이 되겠다.


터키는 중국, 프랑스와 더불어 세계 3대 미식국가라 하는데

음식이 맛있어서가 아니고 음식종류가 많아 미식국가에 들어가는 것 아닌가 싶다.

아~~ 나는 언제나 국물 없이도 무어이든 잘 먹을 날이 있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