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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 키

터 키 40. 아야 소피아 박물관(Hagia Sophia Museum) 탐방


터 키 40. 2017. 04. 09(3) 아야 소피아 박물관(Hagia Sophia Museum) 탐방

                                      탐방시간 : 1시간 30분 소요(줄서기 시간 포함)



<도이도이 레스토랑에서 아야 소피아 박물관으로 이동 경로>




성 소피아 성당(아야 소피아/Ayasofya Muzesi) - 박물관


 이스탄불을 상징하는 건물 중 하나로 세계사 시간에 배우는 비잔틴 건축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원래 명칭은 '하기야 소피아(Hagia Sophia)'로 그리스 정교의 총본산이었다. 성 소피아 성당은 아야 소피아 성당이라고도 불리는데, ‘()’은 그리스어로 ‘하기야이며 터키어로는 아야로 발음하여 "아야 소피아로 부르며 "성자 소피아" 란 뜻이 아니고 "성스런 지혜"란 뜻을 갖고 있다. 한편, 성 소피아는 916년 동안은 비잔틴제국의 교회로, 477년간은 오스만제국의 무슬림사원으로 사용 되었으며, 1920년대 터키공화국의 아타뮤르크 초대대통령에 의해 박물관으로 개조되었는데, 오스만 제국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점령되고 동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이슬람의 모스크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원 안으로 들어가면 분위기를 압도하는 높은 천장과 현란한 문양의 모자이크 장식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또한 초기 그리스도교의 성화(聖畵)와 이슬람의 상징물들이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곳의 백미는 초대형 돔과 실내를 뒤덮은 모자이크 벽화로 벽화 일부는 선명하게 복원됐다.

 

  약 900년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성당으로 영광을 누려오던 중 오스만제국으로 넘어가면서 한 때 헐려 버릴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건물의 아름다움에 반한 슐탄 아흐메트 1세에 의해 위기를 넘겼으나 그 대신 원래의 용도를 바꿔 이슬람사원으로 개조되었다. , 술탄 아흐메트 1세는 1609년 블루모스크를 아야 소피아 성당 정면에 짓도록 하고, 아야소피아를 이슬람 회당으로의 개조 작업도 지시했다. 이때 외부에는 4개의 첨탑을 추가하고, 실내 모자이크 성화를 회벽으로 덧칠한 뒤 코란을 써 넣는 방법으로 이슬람의 모스크로 개조한 것이다.

 

  이리하여 아야 소피아는 이슬람회당의 상징인 첨탑이 네 귀퉁이에 들어서고 모자이크 벽화가 회벽으로 덮이며 돔 천장에 코란 구절이 새겨지는 수모 끝에 모스크로 바뀌었다. 블루 모스크보다 1080년이나 앞선 아야 소피아는 높이 56m에 길이 32m의 정사각형의 돔형 지붕 건축물로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건축 되었으며 공사 기법은 직사각형의 구조물 위에 철근 구조물이 없이 타원 형의 돔을 올리는 방식으로 건물의 무게를 기둥이 받치는 것이 아니고 돔 지붕이 버텨 내는 특별한 건축물로 이 초대형 성당의 건축기간은 단, 56개월 만이 소요되었다 하여 현존하는 세계 7대 불가사의의 건축물로 꼽히는 것이다.

 

  현재에는 이스탄불의 상징물이 된 아야소피아(성소피아 성당)은 비잔틴 시대의 대표적 건물로 비잔틴제국(동로마)의 성당양식과 오스만제국의 이슬람양식이 섞여 있다. 비잔틴 로마시대 주스티니안 황제가  "아담 이후로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볼수 없을" 교회 건설을 명하였고, 건축가 안테미우스와 수학자 이시도로스에 감독하에 537년에 완공되었다. 비잔틴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건축물로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 건축 되기 전까지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성 소피아 성당은 이스탄불이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불리고 있을 때인 서기325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의 대성당으로 지은 것을 532~537년에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에 의해 비잔틴 양식의 대성당이 완공되었는데 건물이 완성되자 헌당식에 참석한 주스티니안 황제는 마차를 타고 건물안으로 들어가서 "솔로몬 왕이시여 내가 당신을 이겼 나이다"라고 외쳤다 한다.




도이도이 식당에서 먹는 방법도 모르는 케밥을 두서 없이 먹고

아야 소피아 성당(박물관)을 만나러 이동하는데

식당가와 아야 소피아 성당은

히포드럼 광장을 가운데 두고 대칭적으로 끝에 위치해 있기에

히포드럼 광장 옆을 스치듯 지나야 했다.


예의 비슷하게 생긴 입장권을 받아 들고,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서기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이곳도 검문검색을 통과해야 입장이 가능하였다.



박물관 입구의 이 건물도 무엇이라 했는데 기억이...???



이스탄불을 점령하여 그리스도교 교회를 모스크로 변모시킨 증거는

외관상으로도 잘 나타나고 있는데 이슬람 모스크에나 설치되는 저 첨탑이 그 사실을 잘 알려 주고 있다.




우리처럼 패키지가 아닌 일반관광객들은

매표소 앞에 달라 붙든한 모양새로 타켓팅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박물관 내부 탐방을 시작한다.








내부로 들어 가기 전에 문사이로 보이는 박물관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저 모습만으로도 탐방을 시작도 하기 전에 감동이 밀려 오는 듯 하다...




일단 건물내부로 들어 서면 회랑이라고 표현해야 하는 것이 많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마치 회랑 같은 복도가 등장하고

본 건물과 회랑은 목재로 된 문으로 구분이 되어 있다.

세례를 받지 않는 사람들은 이 회랑까지만 출입이 가능했단다.


그 회랑을 잠시 동안 먼저 만나 보고,





회랑과 박물관 내부를 구분하고 있는 벽면에 설치된 문이 여러개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큰 문이 :황제의 문"으로 황제 전용출입 문이었지만

지금은 관광객들이 마치 황제가 된양 자유스럽게 출입을 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박물관 내부와 만날 시간이 되었다.



박물관 내부로 들어 서자

엄청난 높이의 돔 천정괴 샹들리에 불빛에 압도 당하는 분위기인데

설명 자료와 같이 건물을 받치고 있어야 할 기둥이 보이지 않아 시원한 모습인데

다만 수리중인 시설물들로 인하여 어수선한 분위기가 아쉬웠다.







중앙 바닥의 오른쪽으로 둥근 큰 원이 있고,

그 주위로 녹색, 붉은색, 흰색 등의 작은 원이 있는데,

큰 원은 당시 황제가 앉아서 예배를 드리던 곳이란다.

황제가 앉은 의자에서 발을 내린 부분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성소피아성당은 대단한 신전이었으며,

비잔틴황제들의 대관식이 거행된 장소이기도 했다.




이슬람 사원으로 바꾸면서 천정 중간 쯤에는 둥근 원판에 알 수 없는 글들이 씌여 있는데

알라신과 모하메드, 알라 등 이슬람교 성직자들의 이름을 금으로 새겨 넣었다.



돌로 조상된 길을 이용하여 2층 갤러리로 오를 수 있었는데

바닥의 돌길은 수 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의하여 들맨들하게 닳아져 미끄러웠고,



계단이 아니고 경사로인데 왕비를 가마태우고 오르고 내릴때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위함이었단다.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며 덧칠해진 것을 벗겨 낸 흔적이 적나라 하게 들어 나고 있고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천정이 매우 가까워진 모습이다.



2층 홀 중앙는 여왕이 예배를 드리는 장소가

둥근 원으로 표시되어 있었고,


중앙 갤러리를 지나 오른쪽으로 가니 대리석으로 조성된 천국의 문이이 나오고,


이 그림은 아야 소피아의 백미라 일컬어 지고 있는 황금모자이크 벽화로

그리스도와 성모마리아, 세례요한의 벽화로

 최후의 심판에서 성모마리아와 세례요한이 탄원하고 있는 장면이고.

이 그림은 모나리자에서 보듯 어떤 방향에서 보아도 예수의 눈이 따라 다닌다.

그. 런. 데


그런데 오스만 제국이 이스탄불을 점령한 후

그리스도의 흔적을 없애기 위하여 이 그림 위에 회칠을 하였다.

후에 박물관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그 회칠을 벗겨내려 하자 그림들이 함께 떨어져 나간 것이고, 

원래는 이런 그림이었다고 한다.


이 벽화의 제목은 "간청 또는 탄원"이 말해 주 듯,

 세 사람 모두 밝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특히, 요한의 표정이 매우 수심에 가득 찬 모습이다  






이것은 2층 벽애 설치된 지진탐지기라하는데

터키는 수 년전발생한 지진으로 많은 재산과 인평피해를 본 경험이 있는 나라이다.


2층 난간에서 돔 천정을 자세히 관찰해 볼 시간을 갖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황금 모자이크로 장식한 벽화이다.

훼손된 다른 벽화들도 있는데

이 그림은 중앙의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를 중심으로,


요하네스 2세 황제와 이레네 황후의 모자이크 그림으로

각각 성금주머니와 봉납 명세서를 들고 있다.


그림 하단부가 훼손된 것은

이슬람에서의 훼손이 아니고 사람들이 하도 많이 만져서 훼손된 것이라 한다.





콘스탄틴 모누마쿠스 황제, 예수님, 죠여왕 모자이크 화!!





고해성사를 보던 곳인데

가림막 구멍이 넓어누구인지 다 알아 볼 듯하니

죄질이 불량한 사람들은 꽤나 괴로웠을 듯 하다.



그리고 돔 지붕을 제대로 만나 볼 수 있었다.


대형 돔 지붕 4곳에는 천사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얼굴이 모두 훼손되었고다한 곳만 원래의 모습을 하고 있다.









채광창을 가까이서....



4개의 천사 그림중 하나만 남아 있는 모습이다.



이 사진상 돔 천장 가운데 채광창 위에 있는 그림은

성모 마리아께서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그림이다.



그리고 전시된 용기와 사진들을 만말 수 있었는데

어떤 사연, 어떤 그림인지는  알 수 가 없었다!!

설명자료라도 있었으면...


작년 말 대만의 국립박물관 탐방시

현지 가이드인 유 육명 부장님은 풍부한 지식으로

작품 하나 하나 마다 모든 설명을 해 주었던 기억이 회상되었다.













이리 생긴 길로 1층으로 되돌아 내려 간다.










이것의 이름은 소원 손구멍??

이것의 정식 칭은 "기적의 기둥"으로 

 저청동판 구멍에 엄지 손가락을 넣고

 나머지 가락 4개를 떨어지지 않게 360도 돌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데

관광객들이 줄지어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 실패를 하고 마는 고난이도의 손돌리기인데


나도 실패를 했다는....

끙!!




우리가 입장할 때 보다 관람객들이 뜸해지어

황제의  문도 다시 확인하고




1층 중앙홀에도 한산함이 깃들여져 그틈을 타서

돔 천장 지붕을 나홀로 즐길 시간을 갖게 되었다.

쎌카노리~~~~


지상에서 솟아 있는 저 수리장비를 좀 어찌 해주실 분 엄나요??




입구 양쪽에는 1250L의 물을 담을 수 있는 대리석 항아리가 있었는데,

이것은 고대 페르가몬왕국에서 가져온 것으로 조명용 기름을 보관하였다 한다. 

대리석으로 이만한 크기의 항아리를 만들 생각을 했다는 것이 놀라웠는데

이 항아리에 대한 설화가 있어 여기에 옮겨 본다.


  기름 항아리 이야기

: 농부가 밭에서 항아리 3개를 발견하여 황제의 신망을 받기위해 수레에 실어 황제에게 바쳤다.

황제는 2개만 취하고 하나는 농부에게 가져가라고 하여 수레에 싣고 가던중 떨어뜨려 항아리가 깨졌는데 여기서 보물이 가득 나왔다.

농부는 황제에게 준 항아리에서 보물이 나오면 목숨이 위태로울 것 같아 이 보물을 황제에게 바치게 되었고, 황제는 보물을 취하고는  나머지 2개의 항아리 입구를 깨고 열어보았는데 빈항아리로 황제는 농부를 그냥 돌려보냈단다  


그 항아리 사진을 찍는 찰나 무심코 지나던 이 아저씨 !!

무지하게 미안한 표정으로 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1층 오른 쪽 끄트머리에는 수 많은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사연을 모르니....










그리고 한쪽에는 기념품점이 성업중이였다.








그리고 외부 마당 안쪽에는 이 대리석들이 보이는데

이에 대한 사연 역시 알지 못하였다.

수리중 인건지....??







밖으로 나와 블루 모스크 전경과 함께,


아아 소피아를 다시 한번 담아 보며

이 7대불사의한 건축물을 파괴시키지 않은

슐탄 마흐맷 1세에게 경의를 표하는 심정으로 탐방을 마치고

블루 모스크를 향해 이동을 한다.

그러나 저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다는 돔의 모습 전체를 지상에서는 확실히 잡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