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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발칸4국

36. 비엔나 벨베드레 궁전(Schloss Belvedere) 탐방

 

제 7 일차 (2019년 11월 6일)

비엔나 벨베드레 궁전(Schloss Belvedere) 탐방 “옵션”

 

 

제 7 일 전체일정(2019년 11월 6일)

1. 슬로베니아(Slovenia) 머큐어 마리보르 씨티쎈터(Mercure Maribor City Center)에서 오스트리아 빈(Austria, Wien/Vienna) 으로 이동

 

2. 벨베드레 궁전(Schloss Belvedere) 탐방 옵션

3. 중식후 쉔부른 궁전(Schönbrunn Palace, Schloß Schönbrunn) 탐방

4. 게른트너 거리(Kerntner Street) 및 슈테판 성당(Domkirche St. Stephan) 탐방

5. 체코 프라하(Czech Praha)로 이동

6. 프라하 야경투어후 듀오 호텔(Hotel Duo) 입실

 

  오스트리아 Austria 수도 : 빈 / 언어 : 독일어 / 시차 : 한국과 -7시간 차

면적 : 83, 한반도의 0.38배 인구 : 875만 명, 세계 98

GDP : 4,5958천만 달러, 세계 28위 통화 : 유로 1 EUR=1357.68(2019.08.09 20:07)

 

  빈 = 비엔나 (Wien / Vienna) 오스트리아의 수도 인구 : 190만 명(2018)

  독일어식 명칭인 빈 대신 흔히 영어식 명칭인 비엔나로도 불린다.

과거 오스트리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헝가리 왕국의 주요 도시였으며,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 아래 오스트리아가 주요 국가였을 때는 많은 인구를 가진 유럽의 대도시였다.

 

  1440년 합스부르크 왕가가 이곳을 도읍으로 정하면서 정치와 예술,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동유럽의 중심도시로써 수많은 음악적 예술적 유물과 합스부르크 왕가의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들이

여행자들의 눈길과 마음을 잡아 끄는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다.

 

  오스트리아의 수도이자 대표 도시로 1세기에 로마 제국의 군영지가 축소된 이래 20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켈트 족이 정착하며 형성되었으며 합스부르크 왕가가 집권하면서 중부 유럽의 정치, 문화, 예술, 과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브람스, 하이든 등의 음악가들을 배출한 음악의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단과 빈 소년 합창단으로 유명하니 가히 예술과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라 할 수 있다. 

 

유럽의 다른 이웃 도시들보다 거리가 매우 깨끗하고 치안이 잘 되어 있으며,

지하철이나 대중 교통도 유럽 치고 굉장히 깨끗하고 노선망도 우수하다.

 

 

 

 20대 초반시절 명동의 모 다방에 들르면 입맛을 가셔 가며 항상 즐겼던 비엔나 커피를 마시며

상상했었던 그 비엔나를 실제로 만나게 되니 신기한 마음이 절로 베어나온다.

비엔나 커피를 즐기던 청춘시절에 이런 순간이 오리라고는 상상은 커녕 꿈도 못꾸었던 일이니 말이다.

 

그 비엔나의 첫 일정은 굴림트의 키스로 유명한 벨데드레 궁전을 탐방하게 된다.

본디 한진관광의 일정에는 없었던 것으로

두브로니크에서 강풍으로 유람선을 타지 못하게 된 것을

약간의 웃돈은 얺어 주고(40유로 ??)이 벨베드레 궁전으로 대체하게 되었었다. 

나 개인적으로 해안가 유람선 타는 것 보다는

이곳 벨베드레 궁전 탐방이 훨 남는 장사로 인식되었으니

강풍의 효과를 톡톡히 보게 된 것이다.

 

 

 

벨베드레 궁전(Schloss Belvedere)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가 전시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한 벨베데레라는 이름은

이탈리아어 bel(예쁘다)vedere(보다, 보이다)가 결합된 것으로, "예쁘게 보이는 궁전"이라는 뜻이다.

bel은 라틴어 bellus(아름다운), vedere는 라틴어 동사 video(videre-visi-visum, 보다)에서 각각 파생된 단어이다.

 

벨베데레 궁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벨베데레"라는 건축용어부터 이해해야 한다.

사전적인 의미는 "아름다운 경치"이며 보통 "좋은 경치를 내려다볼수 있도록 높은 곳에

세운 건축구조물"을 일컫는 말이다.

구체적인 건축기법으로는 "꼭대기에 지붕은 있지만 벽은 한쪽 면이나 여러면이트여있는곳"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건물의 가장 위층에 지어지거나 독립적인 형태를 갖기도 한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실용화되기 시작했지만 야외가 트여있다는 점에서

날씨가 추운 북유럽 지역에서는 건축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벨베데레 궁전은

대표적인 바로크풍의 궁전 건축양식과 정원형태를 갖추고 있다.

궁전이 지어진 시기는 1714년 부터 1722년까지이며 그계기는 16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터기군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유럽 제일의 강국으로 부상하게 됐다.

따라서 건축양식에 있어서도 힘과 권위를 내서우는 경향이 매우 강했다.

특출한 예술적 감각을 타고난 건축가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는

벨베데레 궁전설계를 통해 자신의 건축세계에 하나의 획을 그었다.

 

큰 정원으로 에워싸여진 채 서로 바라보고 있는 대칭형 벨베데레 형식의 벨베데레 궁전은

전통적인 요소와 이국적 요소들, 그리고 18세기에 나타난 공간에의 새로운 접근방법이 결합되어 건축되었다.

 

상궁은 19555월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개국의 외무 장관이 모여

오스트리아의 자유와 독립을 부여한 조약을 체결한 장소로 유명하며,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페르디난트가 잠시 거주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을 가장 많이 전시하고 있는 곳으로,

가장 유명한 작품인 키스를 보기 위해 찾아온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구스타프 클림트 이외에 오스트리아가 낳은 또 다른 대표 화가인 에곤 실레의 작품과 함께

 르느와르, 모네, 마네, 고흐의 그림도 볼 수 있다.

 

하궁은 오이겐 왕자의 별궁으로 현재는 바로크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상궁의 인기에는 못 미치지만 다비드의 나폴레옹은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이다.

 

하궁 옆에 있는 오랑게리는 아열대 식물을 보관하던 식물원인데 오스트리아의 중세 작품 등을 전시 중이다.

21er Haus는 오스트리아 조각가인 프리츠 보트루바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현대 조각 미술관이다.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웠던 17세기 후반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에서 빈을 구한

오이겐 공의 여름 별궁으로 쓰이던 이곳은 벨베데레 궁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탈리아 어로 전망이 좋다는 뜻의 벨베데레 궁전은 궁전 테라스에서 보이는 경치가 아름다우며

상궁과 하궁 사이에는 프랑스식 정원이 있어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화려한 황금빛 색채 속 묘한 표정의 여인, 마치 서로 사랑하는 남녀의 꿈 속에 나올 법한 키스!!

누구나 한 번은 본 적 있는 클림트의 작품 「유디트Ⅰ」과 「키스」이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한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흥분되고 설레는 일인가.

때문에 클림트의 두 작품이 한곳에 존재하는 빈 벨베데레궁전 상궁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빈에서 금세공사의 아들로 태어난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는

동양적인 장식 양식을 바탕으로 추상화에도 관심을 가지며

템페라(계란이나 아교질, 벌꿀, 무화과나무의 수액 등을 용매로 하여 

색채 가루인 안료와 섞어 물감을 만들고 이것으로 그린 그림),

금박, 은박, 수채를 함께 사용한 다채로운 기법을 구사한 화가이다.

 

특히 클림트는 여성을 묘사한 작품들에 금박을 많이 사용하여 화려함을 더했고

세세한 장식을 치밀하게 겹쳐놓는 화법을 구축하였다.

「프리차 리들러」, 「부채를 든 여인」, 「에밀리에 플뢰게」 등 대표 작품 속 여인들은

그가 만든 다양한 색채와 화려한 기법의 꾸밈 속에 더욱 더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벨베데레 궁전은 오스트리아 바로크 건축의 거장 힐데브란트가 세운 오이겐 왕자의 여름 궁전으로서

먼저 1716년에 별궁으로 하궁이 세워지고

1723년에는 연회장으로 이용할 상궁이 완성되었다.

 

오이겐 왕자는 루이 14세의 사생아라는 이야기도 떠도는데

프랑스에서 오스트리아로 망명하여 국가를 위한 업적을 많이 남긴 위인이다.

 

상궁과 하궁 사이에는 완만한 언덕을 이용해 분수와 잔디밭, 프랑스식 정원이 꾸며져 있다.

프랑스 베르사이유궁전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름답고 격조 있는 궁전으로 유명하다.

 

오이겐 왕자가 죽은 후 합스부르크 왕가에서는 궁을 사들여 미술작품을 보관하기 시작했는데

상궁은 19, 20세기 회화관으로, 하궁은 바로크 미술관으로 쓰이게 되었다.

클림트의 작품들은 바로 이곳, 상궁에 소장되어 있다.

 

관람객들은 입장을 하자마자 가장 먼저 클림트의 전시실로 향하는데

키 작은 풀, 꽃밭 위에서 서로에게 의지한 채 입맞춤을 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세계 최고 걸작품 중의 하나인 「키스」는 실제로 보면

그 오묘한 색과 화려한 기하학적 무늬들의 조합이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답다.

 

<비엔나 관광 개념도>

 

슬로베니아에서 3시간 30분 가까이 지루한 이동을 해서야 벨베드레 궁전을 만나게 되는데

전용버스에서 하차하여 우선 가로수가 양옆으로 도열된 진입로를 통과해야 했다.

정문을 통과하면 드넓은 정원을 지나서 정면에 보이는 벨베드레 궁전 건물을 향한다.

이 벨베드레 궁전은 상궁과 하궁 2개의 건물로 조성되어 있는데 우리는 상궁에 전시되고 있는

미술품들만을 만나게 된다. 아쉬운 대목이다...

 

벨베드레 궁전 홀에 들어서자 천장에서 부터 흘러 내려 온 듯한 네 개의 남상주(男像柱)가

건물 전체를 버티고 있는 듯 하였는데 매우 역동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고개를 꺽어 푹 숙이고 있는 모습이 천정의 무게에 힘겨워 하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중앙 홀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이것은 얼핏 보면 우리나라의 반가유사유상비스무리 하여

나의 시선을 멈추게 했었다. 자세히 보니 어떤 인물이 머리에 왕관을 쓴 모습이었지만...

중앙홀에서 2층 전시실로 이동을 하는데 벽면부터 천장까지 모두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되어 있었는데,

특히 천장에는 이태리풍 고가구의 색채를 느낄 수 있는 회화(??)로 꾸며진 모습도 화려하기만 하였다.

저 그림에 등장하는 하나 하나에 마다에 각 의미가 있을 터인데 그 내용이 자못 궁금해 지지만 해결 방법이 없었다.

드디어 전시실로 들어 서자 세계적인 명품이라 할 수 있는 미술품들을 만나게 된다.

 

 그 중에서 관람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고, 가장 유명하고, 값어치가 가장 뛰어난

굴림트의 키스란 작품앞에서 발걸음이 저절로 멈추게 된다.

 

그림 한 폭의 가격이 우리돈으로 1,700억원 이상을 뛰어 넘는다 하는 이 키스는

남자의 남성 권위를 강조하고 여성의 순종을 표현하고 있는 그림이다.

 

종 모양을 띄고 있는 듯 한 남자 등의 윤곽은 모든 힘과 권력이 남성에서 시작됨을 표현하고 있고, 

연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여자의 자세는 남성에게 수동적이며 순종을 표현하는 것이란다.

 

또한, 연인의 얼굴은 사실적으로 표현했지만, 

그 주변은 장식성을 강조했기 때문에 남성성과 여성성을 구별짓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작품이 되겠다.

요즘 여성의 못소리가 하늘 높은 지 모르고 큰  여성상위 시대를 살아 가고 있는 모든 남성들은

이 그림의 의미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듯 하다.(이 글은 나의 아내가 못 본척 해주었으면 좋겠다. ㅠㅠ)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는??"

그림 "키스"는 역사상 가장 많이 복제된 그림이다.

다 빈치의 모나리자나, 밀레의 만종보다 훨씬 많이 복제되어

엽서나 카드 그리고 심지어 불을 켜고 끄는 버튼의 장식으로도 쓰인다.

 

남성의 손은 한 손은 여성의 머리를 잡고 있고, 다른 한 손은 뺨을 어루만지고 있다.

단지 손을 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뺨을 어루만지고 있는 모습이다.

그렇게 뺨을 만지고 있는 손 위에 여성이 왼손을 덧대고 있다.

살며시 얹은 손가락이 남성의 손을 쓸고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그대로 전해 준다.

 

여성의 나머지 한 손은 남성의 목을 두르고 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그냥 두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손목과 손가락 마디마디가 기대감으로 비틀려 있다.

어깨는 잔뜩 움츠려 남성에게 밀착시키고 있다.

두 남녀의 팔과 손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관능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작품은 남성이 여인의 머리를 잡아 자신을 향하게 하여 볼에 입을 맞추고 있어 지배적인 남성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남성의 등에서부터 흘러나와 여인을 감싼 나선형의 금빛 후광과 무릎을 꿇고 있는 여인의 모습도

여성성을 강조하고 있다.

 

클림트는 두 연인의 옷 속에 그려 넣은 도형과 색채를 통해 남성성과 여성성을 구별시키고 있다.

남성의 옷엔 무게감 있는 검은색 직사각형을 사용하여 남성스러움을 표현하였으며,

여성의 옷엔 화려하고 여성스러운 색채로 이루어진 원과 곡선을 사용함으로 여성스러움을 표현하였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 너무나도 다르지만

그 어떤 그림보다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옷에 그려진 무늬들도 서로 상반되는 패턴이지만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꽃이 흩뿌려진 작은 초원 위에 서 있는 두 연인은 주변과 분리되어

그들을 마치 후광처럼 둘러싸고 있는 금빛 아우라 안에서 서로에게 황홀하게 취해 있다.

또한 절벽 위의 여인은 까치발을 하고 있다.

 

"키스를 보지 못했다면 비엔나를 떠나지 말라!!"

 '키스(The Kiss)'라는 그림은 적어도 1,700억 원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에 팔릴 수 있는 인기 있는 그림이라고 한다.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출생 : 1862/ 사망 : 1918/ 국적 : 오스트리아

대표작 :유디트 1, 사랑, 키스, 처녀, 죽음과 삶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에 태어나 1918년에 죽은 빈에서 활동한 화가로 수수께끼 같은 화가이다.

그는 생전에 자신의 그림에 대해 한 번도 설명한 적이 없고, 인터뷰도 하지 않았으며, 사생활은 철저히 숨겼다.

사후 50년 후부터 재평가되기 시작하더니 언제부턴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화가로 손꼽히게 되었다.

 

굴림트의 키스를 만난 후 등장하는 작품은 굴림트의 제자로 알려진 에곤 쉴레의 포옹이란 작품인데

그 스승에 그 제자로 스승인 굴림트의 화법이 녹아 있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는 그림이란다.

 

굴림트와 그의 제자를 만나고 복도를 거쳐 다음 전시실로 이동을 하자

우리가 어디선가 많이 보아 왔던 나폴레옹을 만난다.

 

이 작품은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나폴레옹 하면 떠 올리게 만드는 그림으로 사진으로 사방에 널리 퍼져 알려진 친숙한 그림이 되겠다.

전시실을 뒤로 하고 벨베드레 정원을 가로질러 다음 일정을 준비하게 된다.

상궁, 하궁에 전시된 작품들을 모두 관람하여면 상당한 시간을 요하는 곳을

우리는 달랑 1시간여 만에 베베드레 궁전 탐방을 마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오에 이르는 시간인지라 강한 자외선을 머금은 햇쌀로 눈뜨기 조차도 버거운 실정이었다.

그 강한 햇쌀을 피해 가며 인증 작업을 하느라 멋진 정원 모습을 카메라에 제대로 담지 못한

아쉼움이 또 남게 되는 벨베드레 궁전 탐방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