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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 키

터 키 33. 톱카프 궁전(Topkapi Palace) 탐방


터 키 33. 2017. 04. 08(4) 톱카프 궁전(Topkapi Palace) 탐방

탐방시간 : 1시간 20분 소요


<이스탄불 관광지 위치도>





<톱카프 궁전 이동경로>


이스탄불에서의 첫번째 식사를 마치고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톱카프 궁전을 만나러 이동을 하는데.

구시가지의 뒷골목쯤으로 상상하면 되는 이동경로로

블루모스크 뒷쪽 골목길을 지나게 되었다.


굴다리를 지나,




블루모스크 뒷편 모습을 만나고,



이중구조의 계단을 올라서면,


히포드럼 광장 옆길을 만나 계속 직진을 하게 된다.


광장이 끝나면 다시 좁은 골목길을 만나게 되고,


좌측으로 아야 소피아 성당을 만나게 된다.


아야 소피아 성당 앞에서 바라 본 히포드럼 광장 모습...


그리고 정면에 톱카프 궁전이 저 먼발치로 시야에 들어 온다.


관광지 답게 기념품점 몇 개가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아아 소피아 성당의 첨탑모습을 바라 보며 톱카프 궁전 정문앞에 도착하게 된다.


톸카프 궁전 앞에  대포는 없었고

튤립시대에 건축된 슐탄 아흐메트 분수(Sultan Ahmet Cesmesi)가 보이는데 

 물나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톱카프 궁전(Topkapi Sarayi) 

  세계 최강대국으로 명성을 떨쳤던 오스만제국의 정복자인 술탄매흐메드 2세가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후 재위기간 중인 1460~1478년에 건축하여 오스만 제국의 주요 회의장과 오스만 술탄의 주요 주거지로 사용하였다. 24명의 오스만 제국의 술탄(황제)들이 거주 하였으며, 5백년간 유럽을 호령했던 오스만 대제국의 사령부로 마호멧 2세가 이스탄불을 점령한 이후 1856년 보스포로스 해변가의 돌마바흐체 궁전으로 이동해갈 때까지 380년간 유럽 정치의 중심지로 성 소피아 성당 뒤편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즉, 이곳은 보스포러스 해협과 이스탄불을 두 지역으로 나누는 길고 좁은 바다인 골든혼, 그리고 보스포루스 해협과 에게해를 이어주는 마르마라 해를 바라 볼 수 있는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또한, 톱카프 궁전은 (외궁)과 엔데룬(내궁), 하렘(궁정 여인의 주거 공간)으로 구성됐고 그 안에 5만 명이 함께 거주했다고 전해지는 도시 안의 도시. 성 안은 공원처럼 가꾸어져 있고 각 건물은 진귀한 물건으로 가득한 박물관이다.

 

   이 궁전을 처음 건설 했을 때 이 궁전은 새로운 궁전혹은 단순히 궁전으로 불리웠는데 19세기 중반부터 톱카프 궁전으로(대포문 궁전) 불리게 되었는데 터키어로 톱은 대포, “카프는 문을 의미하는데 옛날 이 궁전의 문 앞에 항상 커다란 대포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이 궁전에는 예언자 모하메드의 유적이 있어 지금도 이슬람교에서는 신성시 되고 있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세 대륙을 정복한 술탄이 전리품과 진상품을 모으던 곳으로 지금도 세계 최대 보석 박물관이 관광객의 발길을 끌고 있다. 세계3대 클랙션에 들어가는 실크로드를 통해서 모아진 도자기 박물관을 비롯하여 이슬람 선지자의 유물을 모아놓은 성물관이 그 중요성을 더하고 있으며 마르마라 해와 보스포로스 해협, 골든혼을 끼고 절벽에 만들어진 톱카프의 전망은 최고의 아름다움이다.

 

고전적인 오스만 풍의 건축양식을 가진 이 궁전은 중국의 자금성의 구조와 비슷한데 1856년 돌마바흐체 궁전이 지어지기 전까지는 이스탄불 최대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전체면적이 21만평이나 되는 톱카프 궁전은 4개의 문에 의해서 4개의 정원으로 나누어지는데 이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제1정원과 제2정원을 이어주는 경건의 문이다. ‘중앙 문이라고도 불리는 이 문은 오스만 터키 제국 시절에 황제인 술탄과 그의 어머니만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던 문이다

 

오스만 제국이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함으로써 정치, 경제, 문화, 유통 모든 면을 독점했고 톱카프 궁전은 제국의 심장과 같은 곳이다. 무기, 직물, 보석등 볼거리가 많은 곳으로 유명하며 현재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스탄불을 대표로 하는 관광지 답게 탐방객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으로

우리도 저 대열에 합류를 해야 한다.


궁전 정문앞에 있는

슐탄 아흐메트 분수(Sultan Ahmet Cesmesi) 윗부분 모습만 잡아 보었다.





약 5분여간 줄을 서서 대기한 후 드디어 성문안으로 입장을 하여 제1정원을 만나게 되는데,



돌마바흐체 궁전과 마찬가지로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며,

이곳에서 가방 검색을 받게 되는데 아라빅들은 몸수색도 한다고 한다.


검색대를 통과하여 제1정원에 들어 서게 되었다.

 예전에도 이곳까지는 일반인도 출입이 가능하였다고 한다.




현지 초딩들이 격하게 반응을 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말을 타고 가는 경계병들은

관광객들이 빼먹지 않는 인증샷 재료가 된다.


제2 정문은 왕족이 다니던 문으로 이 문을 통과하려면 입장권이 있어야 했고,

가이드에게서 편안하게 입장권을 전달 받았으니

패키지 여행의 장점중 하나가 이런 것이 되겠다.


또한,, 이 제 2 정문은 미국의 디즈니 랜드 로고에 응모하여 당첨되어

디즈니랜드의 로고가 이문을 모티브로 제작 되었단다.




성문 우측에 있는 매표소 모습!!


제 2정문에서 본격적인 줄서기를 해야 했는데,



우리 김 강민 가이드는 태극기로 자기의 위치를 알려 주고 있어

편안하게 그의 위치를 확인 할 수 있었으니

좋은 아이디어라 할 수 있었고,


줄을 서서 대기하면서

두 번째 성문 이곳 저곳을 관찰 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제2 정원에는 마굿간이 있고 국무회의가 열렸던 장소이며,

교육장소로 사용되었고 주방과 식자재 창고가 있는데

주방에는 1200여명의 조리사들이 있었단다.



왕족만이 거닐었던 성문 안 정원에서 잡은 검색대 모습...



왕족 전용공간에 들어 섯으나~~~

이런 불행한 사태가 발생했을 줄이야~~~~

이곳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보석관이 수리중으로 개방을 하지 않는단다.


이 궁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슐탄의 단검과 스푼다이어를 만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헐....


슐탄의 단검은 18세기 터키 보석 세공업의 뛰어난 걸작품으로

손잡이는 네개의 에메랄드로 장식되었고, 끝에는 시계가 박혀 있단다.


또한, 88캐럿짜리 스푼메이커스 다이아몬드(Spoonmaker’s diamond)는 그 무게가 3kg이나 되는데 

 주변에 황금테를 두르고,

그 테안에 49개의 작은 다이아몬드를 두 줄로 박아 만든 것으로

 세계에서 5번째로 큰 다이아몬드다.


한 어부가 이 다이아몬드의 원석을 주워 시장에서 숟가락 3개와 바꾸었다 해서  스푼 다이어몬드라는 붙여졌는데

1744년 인도에서 피고르라는 프랑스 장교에게 팔렸고 그때부터

이 다이아몬드는 "피고르 다아아몬드"라 불리웠다.


나폴레옹의 어머니와 오스만 제국의 장관들의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오스만제국의 보석관으로 오게 된것은

 대페델렌 출신의 알리파샤가 반역죄로 1844년에 사형을 당한 후 모든 재산이 압수 당하면서 라는데

이 두개의 진귀한 보물을 보지 못하게 되었으니

경주에 가서 불국사를 보지 못한 것과 무엇이 다를쏘냐....??


이 톱카프 궁전은 1924년부터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3정원에 있는 보석 관에는 진귀한 보석들이 진열되어 있어

당시 절대 권력자였던 술탄의 생활상과 함께 과거의 번영과 영광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이 보석관에는 190여 점의 보물들이 4개의 전시관에 주제별로 전시되어 있는데,

  이스탄불은 오스만 왕조시대부터는 침략을 당한 적이 없기 때문에

 많은 보물들이 약탈당하지 않고 잘 보존될 수 있었다.

이 중 네 번째 방에 위의 톱카프의 단검과,

 스푼메이커 다이아몬드가 전시되어 있는 것인데 수리중이라니....

  

한편, 톱카프 궁전의 전시물 중에는 중국과 일본에서 들여온 동양의 도자기들이 유명한데

동양도자기 12천여 점 중 3,000여 점만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단다.


* 인터넷에서 찾은 톱카프의 단검과 스푼다이아 몬드 이미지 사진을 첨부한다!!



제3 성문 직전 좌측에 있는 왕실 주방 건물로

높은 굴뚝이 인상적인데 이 주방에 근무하던 조리실 직원규모를 살펴보면

평상시에는 수 천명, 큰 행사시에는 만여 명에 가까운 사람 수의 음식을 장만했다는데,

18세기 기록에 의하면 주방장만 20여명, 조리사가 200여명, 특별한 행사가 치루어질 경우 특별 요리사 100여명이 별도로 있었고,

디저트만 담당하는 조리사가 100여명, 써빙하는 직원만 300여명이 있었으며

이 주방을 지휘하는 총주방장은 국무장관급의 대우를 받았다고 하니 실로 엄청남 규모의 주방이 되겠다.


보석관의 아쉬운 마음을 안고

제3의 성문입구에서 가이드에게서 주의사항을 듣고

이 문을 통과하여 마지막 정원을 만나게 되는데

이 제3의 성문은 행복의 문이라고 한다.




요거슨....?

무엇인지...??


요 수도꼭지는

비밀회담시 이 수돗물을 틀어 대화 내용을 못듣게 하는 용도였다라는...






슐탄과 그의 가족들의 공간이었던 맨 안쪽의  제3정원으로 이동을 하는데

이곳에서는 골든혼, 에게해, 그리고 마스마라해 3개의 바다가 보인다.

즉, 슐탄과 왕족들의 휴식터이자 조망터인 곳이다.



이 바다 건너편에 보인 것은 아시아 땅이고,

지금 나는 유럽땅에 서 있는 것이다.







저 멀리 갈라타 다리가 보인다.




갈매기가 창공을 가르는데

바다에서는 상선들이 오가는 전경이 착하다!!





조망터에서 3개의 바다 구경을 마친 후

일행들을 뒤로 하고 나홀로 반대편으로 가 보았는데

오호라?? 이건 무슨 정자...??

출입금지인 것으로 보아 무슨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나는 웬지 자꾸자꾸 요정자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잠시 후 경비원이 차단선을 제거해 주어 정자 안에 들어 갈 기회를 얻게 된다.



아타튀르크 다리를 만나고...


인근의 궁전건물로 들어가 보았는데

타일 한조각 한조각으로 치장된 화려한 이슬람 문양이 탄성을 자아내는데

이 타일은 모두 수제품으로 타일예술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었다.


궁전 앞에 있는 해설판을 해석해 보면

 Circumcision Room(Summer Pavilion) 우리말로 "할례의 방"에 관한 설명으로

1649년 슐탄 이브라힘에 의해 건축되었고

왕자들의 할례를 거행하던 장소로 할례의 방으로 불리운다.


또한, 건물 내부의 타일은 오스만 제국의 희귀 광물로 제작된 타일로 덮혀 있는데

특이한 것은 1529년 먼 동방의 나라(중국으로 판단함) 왕궁의  침실 외관에 있는

도자기에서 영향을 받아 파란색과 흰색의 타일 패널로 제작된 것이다.





다시 그 정자로 되돌아 와보니

히잡을 두른 처자들도 나와 같이 정자에 관심이 있는 듯 한데...

경비원이 차단줄을 흔쾌히 치워준다.


탐방후 가이드에게 이 정자에 대한 질문을 하였으나

모른다는 답변이었다.


이 정자에 대하여는

슐탄이 전쟁에서 승리한 함대를 이곳에서 기다렸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으나,


정자 아래에 있는 해설판을 해석하면

라마단 기간 즉, 금식주기에 들어가면 나무 밑에서 휴식을 취하는 풍습이 있었으니

이곳은 슐탄이 라마단 기간에 휴식을 취했던 장소이며,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이곳은 달빛이 비치는 곳으로 슐탄의 휴식공간으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 정자는 슐탄 이브라힘(1640 ~ 1648)에 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한다. 




톱카프 궁전 맨 안쪽을 탐방한 후

성문으로 되돌아 나오며 이곳 저곳을 둘러 보게 되는데...



오스만제국의 술탄이 누린 권력과 영화의 규모를 알수 있는 유적지가 이스탄불에 두 개 있는 바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해 동로마 제국을 무너뜨린 메흐메트 1세가 지어 400년간 건재했던 이곳 톱카프 궁전과,

19세기 중반에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을 본떠 지은 돌마바흐체 궁이다.  


그런데 이 두 곳의 경비원들이 짜고 하는 것인지....??

돌마바흐체 궁전 검색요원이 나와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더니

이 톱카프 궁전의 경비원도 똑같이 사진을 찍자고 요청을 해온다.


좀전에 만났던 정자 경비원은 흔쾌히 개방을 해 주었었는데....


이 경비원은 한 술 더 떠 옆 동료에게 셔터맨을 시키더니

자기 핸드폰으로도 동일한 사진을 찍어갔다.


내가 혼자 다녀 외로워 보였는가??

아무튼 이번 터키 여향에서는 기분 좋은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으니

여행의 묘미에 흠뻑 취해 본다.









오스만 제국시대의 무기 전시관도 둘러 보았으나 사진 촬영 불가로 흔적을 남길 수 없었고,

제한된 탐방시간으로 뛰다시피 이곳 저곳을 둘러 보았다.

그러나 대부분 사진 촬영을 불허하고 있었다.


하여 슐탄의 알현장소였다던 제3정원을  잡아 보았다.













여기 저기 동분서주하며 탐방을 하던중

우리 일행들이 줄지어 서서 퇴장을 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 온다.

아~~

나가야 하는 구나....


한편 이 톱카프 궁전에는 보석관 말고도 또 하나의 명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하렘(Harem)이다.


아라비아어의 하람(성역)과 하림(금지하다)을 어원으로 하는 하렘은 술탄의 여인들의 거처인데.

곳에는 400여개의 방이 있으며, 13~14세의 소녀 약 500명이 있었다.

하렘은 남성의 출입금지구역으로 오직 술탄을 제외하고는 거세한 환관뿐로

하렘의 입구에는 환관의 방을 먼저 만난단다.

 

환관은 대부분 이집트에서 데려온 흑인들이었는데,

그들의 임무는 하렘(여성의 방)의 경비였다.

하렘은 술탄의 어머니가 지내던 곳 첫 번째부터 4번째 부인(가장 먼저 남자아이를 낳은 순서)들이 살던 곳,

그 밖의 여인들이 살던 곳으로 나누어 진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술탄은 4명의 부인을 가질 수 있으며,


첩에 대하여는 그 수에 제한이 없었다.

네 명의 부인은 자신만의 거주공간과 하인을 소유하며 생활도 보호 받았다 하는데

이 하렘을 만나기 위하여는 별도의 입장료를 내야 하는 곳으로

우리는 이곳도 보석관과 함께 탐방을 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