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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장가계

제1일 11월 26일 (수요일) 북경 왕부정거리

 

11126(수요일)

 

<여행 전체 일정> - “하나투어 일정상의 예정

2014. 11. 26 13:05분 인천국제공항 출발

                  14:05분 북경수도동항 도착

                                   왕부정 거리 및 홍극장 소림무술쇼

 

2014. 11. 27 만리장성 및 이화원 관광후 장가계로 이동

2014. 11. 28 장가계 국가삼림공원  보봉호, 원가계 풍경구

2014. 11. 29 황룡동, 천문산, 천문동 관광후 북경으로 이동

2014. 11. 30, 천안문 광장, 자금성, 십찰해 투어 후 귀국

2014. 11. 30. 21:50분 김포공항 도착

 

 여  비 :  1인당 1,322,790 * 9= 11,905,110원(풀 옵션)

              추가비용 : 만리장성 팔달령 케이블카 및 장가계 십리화랑 전동차 별도!!

 

 

  에필로그 : 청일회란 모임을 시작한지 어언 20여년이 흘렀다.

20여 년 간 회원 한 분을 먼저 보내 드린 것 이외에는 별다른 문제없이 유지, 발전을 시켜온 것이다.

그런 청일회원들과 해외여행을 하게 되었다.

 

  수년전 금강산 관광을 하고자 하였으나, 의외의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고 한 동안 잃어 버렸던 해외여행을 계획했다.

여행지로 황산 등을 대상에 올려놓았으나 최종적인 장소로 장가계를 확정지었다.  가는 길에 중국의 수도인 북경을 추가하게 되었으니 북경과 장가계를 연계한 여행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은 김 행형님 부부에게 감사를 드린다.

 

  수 차례 해외여행을 하면서 부부모임, 동창회, 산악회등 각종 모임에서 단체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 청일회도 저런 시간을 갖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이제야 실현된 것이다.

그러나 이 영재, 안 봉윤, 김 태섭 세 분이 개인적인 사유로 참석을 하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김 태섭회원이 불참을 하게 되어 그의 아내 김 미옥님과 미옥님의 친구 이 도연씨가 합류하게 되어 총 9명이 여정이야기를 이제 시작해

본다.

 

참석자 명단 : 우 경환, 김 행형 부부, 최 승기, 김 학인 김 창주 부부, 김 미옥, 이 도연 (9)

투어 합류자 : 주 철웅 부부 (총인원 11명)

 

 

   

 

 

 

< 중국 전도및  명산 위도 >

 

 

 

 

 

 

 

 

<중화인민공화국>

  국명의 약칭은 중국이고 미화해서 중화, 낮춰서 지나(支那)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밖에도 국외에서는 중공(中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공은 본래 중국공산당의 약칭이지만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에서 중국 공산당을 중화인민공화국의 집권 정당이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 정부의 의미로도 사용한다.

한국의 언론에서는 중국을 중화인민공화국을 뜻하는 말로 쓴다.

 

  건국 초기에는 청나라, 중화민국 통치 시대를 구중국(舊中國),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를 신중국(新中國)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해 타이완으로 후퇴한 중화민국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 본래의 영토라는 뜻의 중국 본토라고 칭한다.

 

<중국의 역사>

  황하문명 탄생 이래 중국대륙에서는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 이래 약 5000년 동안 수많은 왕조가 흥망을 반복해 왔다.

그 동안 중국은 동아시아의 맹주였다. 한나라때 중화민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족의 기틀을 세웠고, 송나라 때에는 중국 중세 문화가 전성기를 이루었다. 명나라, 청나라 시대 때 최대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 1차 아편전쟁과 제2차 아편 전쟁에서 청나라가 대영제국에 패배한 결과 중국대륙은 서구 열강의 반식민지로 전락했고 홍콩은 대영제국에 넘어갔으며 마카오는 포르투갈에 넘어갔다.

 

  청나라의 무능에 반발하여 태평천국 운동이 일어났으나 진압되었다.

그 후 한족의 개혁파 관료들에 의해 양무운동과 변법자강 운동이 차례로 일어났으나 열강의 간섭으로 실패했다.

한편 서태후 등 보수파의 사주로 반외세 운동인 의화단 운동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그 후 신해혁명이 일어나 1912년에는 아시아 최초의 공화제 국가 중화민국(중국어:中华民国)이 탄생했다.

하지만 각지의 군벌에 의한 내전이나 몽골, 티베트의 독립 운동 등으로 말미암아 중화민국은 분열되었다.

또한 1930년대에는 국공내전(중국에서는 보통 해방 전쟁이라 칭함)과 중일전쟁(중국에서는 보통 항일전쟁이라 칭함)이 발발하여 중국 각지가 전장이 되었다. 이 시기에는 중앙 정부가 2개 이상인 때에도 있었다.

 

  그 후 중일 전쟁 중에 세력을 늘려 온 중국공산당1945년의 일본(日本) 패배 이후 국공 내전에서 승리를 거두어 1949101일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세웠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매년 101일을 국경절로 정하고 이를 기념한다.

한편 내전에서 패한 중국국민당은 타이완으로 도피하여 중화민국 정권을 유지하였으나, 공식적으로 중화민국의 정통성을 계승하였다고 주장하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타이완 정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또한, 1992 824일에는 중화민국이 대한민국과 단교되면서 아시아계 수교국을 모두 중화인민공화국에게 빼앗기고 고립되었다.

 

 

 

 

11126(수요일)

 

<실 제 일 정>

 

 

08:40분 워커힐(공항버스 리무진) 출발

10:10분 인천공항 도착

12:51분 보 딩

14:22분 북경 수도공항 도착 이하 중국현지 시간으로 기록

16:01분 왕부정 거리 관광

 

 

16:38분 홍극장 도착

17:16분 소림무술쇼 관람

18:57분 저녘식사(베이징 덕)

20:43분 춘휘원(숙소) 도착

23:10분 취 침

 

 

<북 경> - 베이징(北京, Beijing)

베이징(北京, Beijing)은 말 그대로 '북쪽의 수도' 인데, 일반적으로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수도의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 다른 도시들인 일본의 교토(京都, 경도), 대한민국의 서울(漢城)이 단순히 수도를 뜻하는 것처럼, 중국의 난징(南京, 남경)은 남쪽의 수도를 의미하고, 일본의 도쿄(東京, 동경), 베트남의 통킹(東京: 오늘날 하노이)은 둘 모두 동쪽의 수도를 의미한다. 여기서 '북경'(베이징)'남경'(난징)은 중국 내륙에 있는 장안(시안)을 중심으로 지은 이름이다.

 

  페킹(Peking)은 우정식 병음(郵政式拼音)에 따른 이름이고, 영어로는 전통적으로 베이징(Beijing)이라고 불린다.

'페킹'이라는 이름은 400년 전 프랑스 선교사에 의해서 유래되었고, [kʲ]에서 [tɕ]의 변화는 표준 중국어에서 나타나는 과거의 발음과 일치한다([tɕ]는 병음으로 j). 그리고 '페킹'이라는 명칭은 여전히 영어를 제외한 유럽 대부분의 언어에서 사용된다(: 포르투갈어:Pequim).

 

  베이징(北京, Beijing)의 이름은 여러 번에 걸쳐 바뀌었다.

명나라 초기였던 1368~1405년 사이, 그리고 중국국민당 정부 때인 1928~1949년 사이에는 베이핑(北平: 북평)으로 알려졌는데, 두 번 모두 난징(南京: 남경)으로 수도가 옮겨져 더 이상 수도()가 아니게 되었기 때문에 대신 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이 도시의 이름을 1949년에 다시 베이징이란 이름으로 바꾸었는데, 이 도시가 다시 수도로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중화민국 정부는 이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1950~1960년대에 중화민국에서 베이징(북경)을 베이핑(북평)으로 부른 것은 베이징을 수도로 삼은 중국공산당 정권을 폄하하기 위해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따라서 중화민국에서는 경극(京劇)평극(平劇)이고, 북경오리도 '북평오리'로 불린다.

 

  오늘날 타이완에서 발행되는 일부 중국 지도는 여전히 '북평'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만 중화민국 정부를 포함한 대부분은 북경으로 부르고 있다중화민국과 수교했던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초까지는 대체로 북경을 북평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더 많았다.

연경(燕京)'은 지금도 다른 베이징의 비공식적 이름으로 사용되는데 이는 베이징이 전국시대 연나라의 수도였기 때문이다.

 

  <중국관광의 우스개 비유>

북경 관광은 발이 빠지는 관광이고 (많이 걸어 다님)

장가계는 턱이 빠지는 관광이고(감탄하느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음)

서안은 귀가 빠지는 관광이고(볼 것은 진시황 무덤뿐이어서 가이드가 귀가 따갑도록 역사이야기로 시간을 때운다 함)

상해는 목이 빠지는 관광이다(고층건물이 많아 올려다 보느라 목이 빠진다 함)

 

 

 

<실 제 일 정>

08:40분 워커힐(공항버스 리무진) 출발

10:10분 인천공항 도착

12:51분 보 딩

14:22분 북경 수도공항 도착 이하 중국현지 시간으로 기록

16:01분 왕부정 거리 관광

16:38분 홍극장 도착

17:16분 소림무술쇼 관람

18:57분 저녘식사(베이징 덕)

20:43분 춘휘원(숙소) 도착

23:10분 취 침

 

 

< 여  행  사  진>

 

 

 

 

王府井 거리

- 지명의유래 : 청조때부터 황실의 저택이 있었던 곳으로 황실이 우물이 있었던바 그 이름을 따서 왕부정거리라 칭함

- 왕부정 역사를 보면 원나라 시대 이후에 수목이 우거진 거리로 발전되었고, 명나라 때 10군데 왕족이 들어서고 그 이름을 10왕부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 1915년 북경시는 왕부정을 세 군데 구역으로 재편해서 북쪽 부분은 왕부대가(王府大街), 중간지역을 팔면조(八面槽), 남쪽 부분에는 우물()이 있는 지역으로 구분해 놓고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중국의 명동이라 불리는 왕부정거리는 옛날 궁궐(자금성)에서 사용하던 우물이 있던 곳이며 아직도 우물터가 남아 있다. 북경의 화려한 중심 상가 거리이니 서울의 명동거리와 같다는 왕부정(왕푸징)거리에는 먹자골먹이 유명하다.

 

이곳을 둘러 본 결과 중국인들은 하늘에 비행기와 육지를 달리는 기차와 바다의 잠수함을 빼고는 무엇이든지 다 먹는 다는 말 그대로 이었다.

 

중국 각종 음식들을 200~300여 미터 길거리 포장 마차식으로 배열해 놓고 각국의 여행객들과 중국의 젊은이들을 끌어들는 곳이었다. 이곳은 한국에서 먹어보기 힘든 전갈, 메뚜기, 개구리, , 불가사리, 지네, 열대과일 등 이색적인 간식거리를 맛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식습관이 있다는 왕부정 먹자골목이였다.

 

다양한 상점과 백화점 특히, 롯데백화점이 입점하여 있는 곳이기도 했다.

시장 한쪽이 수리 중이어서 우리는 약 20여분 간의 짧은 시간에 이곳을 둘러보기만 하였다.

점심 식사로 기내식을 한후 시간이 별로 지나지 않아 식욕도 없었지만 수 많은 인파에 중국인 특유의 떠들어 대는 소리에 도무지 무언가 먹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서지를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거리에는 개구리 뒷다리, 양고기고치, 순두부 , 야자수 등 무수한 요리들이 진열대위에 진열 되어 있었다.

 

한편, 왕부정 거리 인근에 왕부정 최고의 백화점인 동안시장을 차창 밖으로 보게 되었는데 이 백화점은 개업한지 100년이 넘었다 하며, 베이징에서 가장 일찍 개업한 백화점이다. 이 백화점 지하에는 100년 이상의 신용있는 전통상점인 노북경일조가 거리가 따로 있다는데 우리는 그곳에 가 보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