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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포르투칼

12. 스페인/포르투칼 제 4 일차(2022년 07월 03일, 월요일) 알함브라 궁전 탐방

스페인/포르투칼 제 4 일차(2022년 07월 03일, 월요일) 2. 알함브라(Alhambra) 궁전 탐방

 

 

74일 전체일정 : 1. 그라나다(Granada)로 이동 -휴계소(La Parada Puerto)에서 중식 타파스와 상그리아

                               2. 알함브라(Alhambra) 궁전과 알카사바(Alcazaba)요새 탐방

 

                               3. 헤네랄리페(Generalife) 정원 탐방

                               4. 그라나다 야간탐방후 레예스 시리에스(Reyes Ziries) 호텔 입실

 

<알함브라 궁전 평면도>

 

<알함브라 궁전 탐방 경로>

 

알함브라(Alhambra) 궁전

 

그라나다시 한가운데 솟은 고원에 세워진 이 궁전은

나스르 왕조를 창시한 ’이븐 알 아마르‘와 그 후계자들이 집권한 1238~1358년에 대부분 건설되었다.

궁전의 화려한 내부 장식들은 유수프 1세(1354 죽음) 때 만들어졌다고 추정되는데

1492년 무어인들이 축출된 뒤 대부분의 내부 장식이 없어졌으며 가구들은 파괴되거나 철거되었다.

 

1516~56년에 스페인을 다스린 카를 5세(카를로스 1세)는 궁의 일부를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했고

일부는 허물어 1526년 ’페드로 데 맞추카‘로 하여금 이탈리아풍 궁전으로 짓게 했다.

1812년 나폴레옹 군대 침략 때 탑 몇 개가 파괴되었고 1821년 지진으로 많은 손실을 입었으며

1828년에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알함브라에선 이슬람, 카톨릭, 르네상스 양식의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무어왕조 때 지어진 부분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알카사바 즉 성곽인데지금은 거대한 외벽과 탑, 방벽들만이 남아 있다.

알카사바 안쪽에 알람브라 궁전이 있고, 그 안쪽에 알람브라 알타(상부 알람브라)가 있다.

알람브라 알타는 원래 관리와 시종들이 살던 곳으로 정부 소재지인 국왕 도시의 일부였다.

 

이 궁전에서 으뜸가는 중정은 파티오 데 로스 아라야네스(Patio de los Arrayanes 도금양중정)

파티오 데 로스 레오네스(Patio de los Leones사자중정)‘이다.

파티오 데 로스 레오네스는 중정 가운데 힘과 용기의 상징인

12마리 흰 대리석 사자상으로 떠받친 설화석고 수반인 '사자분수'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이름이 붙었다.

 

알람브라 궁전에서 가장 중요한 방은 널찍한 접견실인

’살라 데 로스 엠바하도레스(Sala de los Embajadores:외국 사절실)‘와

널찍한 대 접견실인 ’살라 데 로스 아벤세라헤스(Sala de los Abencerrages)‘이다.

이 방의 이름에 얽힌 전설에 따르면 그라나다의 마지막 왕 보아브딜이

아벤세라헤 일족의 우두머리들을 초대하여 이 방에서 연회를 열고 그들은 몰살시켰다고 한다.

그밖에 빼어나게 아름다운 종유 장식이 있는

’살라 데 라스 도스 에르마나스(Sala de las Dos Hermanas:두 자매방)‘가 유명하다.

 

알람브라 외곽에 있는 건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헤네랄리페(Generalife'건설자의 정원'이라는 뜻의 Jannat al Arῑf에서 유래)‘ 별장이다.

여름궁전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별장은 13세기 말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스페인의 마지막 이슬람 왕조인 나사리 왕조의 번영기인 14세기에 지어졌다가

1492년 스페인 기독교인들에게 넘겨준 후,

카를로스 5세에 의해 르네상스 스타일로 다시 지어졌지만,

이슬람 양식이 그대로 살아남아 있다.

 

 

  ▼ 전용버스에서 하차 하자 마자 뜨거운 열기의 환영을 받게 된다.
차내부에서는 에어컨 영향으로 더위를 느끼지 못하였었는데 그동안 경유했었던
바르셀로나나 발렌시아에 비하여 훨씬 남쪽에 위치한 그라나다는 매우 강열한 열기를 내뿜고 있었으니
내가 준비한 의복중 가장 시원한 것을 입었음에도 더위에 헉헉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상상만 해왔던 알함브라 궁전을 마주 한다는 기대감으로 열기를 이겨 내며 궁전으로 이동을 하게 된다.
 

  ▼  안녕 아가씨들??
티켓을 기다리면서 궁전 입구를 감상하는 시간이 만들어 지는데 휴식을 취하고 있던 처자들이 반갑게 미소를 보여 준다.

  ▼  김신웅 과장의 리딩으로 알함브라 탐방에 나서는데 예의 강한 햇쌀과의 전투를 치루게 되니,

나무그늘을 만날때 마다 저절로 환호를 하게 되는 실정이었다.

한편, 이 알함브라 궁전은 궁전 최근부터 시설물 보호를 위하여 탐방객을 제한하고 있는데

특히 아시아계 탐방객 숫자를 줄이려는 정책을 펼치고 있어 재수 없으면 탐방이 불발 되기도 한다 하고,

입장시 티켓과 여권을 함께 제시해야 출입을 허락 받게 되고 탐방중에도 이런 확인 절차를 거쳐야 했다.

 

그리고 가방은 절대로 뒤로 메서는 않되고 앞으로만 메야 하는데

이는 탐방객이 뒤돌아 서면서 시설물에 손괴를 입힐 수 있다는 가정하에 이루어 지는 규칙이 되겠다.

아래 사진상에서 보듯 삼거리 길이 등장하는데 좌측은 헤네랄리페 정원으로 직접가는 경로로 우리는 우측으로 진행했다.

  ▼  잠시 이동을 하자 알함브라 궁전의 벽면을 만나게 되는데,

궁전 건물을 돌과 흙으로 조성을 한 흔적이 확연하고 하얀 대리석에 'Alhambra'라는 안내판이 우리를 맞이 하고 있다.

 

  ▼  그런데 이어서 등장하는 궁전들은 흘과 돌이 아니었으니 축조시기 마다 그 건축 재료들이 달라진 것으로

이곳은 '까를로스 5세 궁전' 외벽으로 카톨릭 시대에 축조된 것이 된다.

  ▼ 그 스페인식 건물 앞을 지나자 알함브라를 수비했었던 포대를 통과하고,

  ▼  잠시 후에 알함브라 궁전으로 진입을 하게 되는데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나사리 궁전'이다.

이 나사리 궁전은 왕이 집무를 보던 '메수아르 궁'과 '외교 사신을 영접했던 접견실인 '코마레스 궁'

그리고 왕의 숙소가 있는 '사자의 궁 ' 3개로 구성되어 있다.

 

아래 사진은 그 나사리 궁전 입구의 모습이고, 이 나사리 궁전은 입장시간이 정해져 있어

만약, 지각을 한다면 입장이 불가하게 된다면서 우리 김과장이 수 차례나 계속 시간을 확인하면서 이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나폴레옹이 이곳을 점령했던 시기(1796~1815)에는 이곳을 포로수용소로 쓰이기도 했으며

그 후에도 여러 곳에서 출몰한 사상가와 도둑, 거지들의 거주지로 방치 되었었다.

그라나다의 통치자들은 이 궁전의 아름다운 타일을 팔아 유흥비로 사용하기도 했었다 하고,

심지어 초기 관광객들은 장식을 뜯어내어 기념품으로 갖고 갔으며, 

19세기 말에 이르러 전반적인 복원계획이 착수되기 이전까지 알함브라 궁전은 수난이 시대를 거치게 되었다 하는

그 알함브라 궁전의 속살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나사리 궁전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이 왕의 집무실이었던 '메수아르 궁(Sala del Mexuar)'이다.

이 집무실 윗쪽에는 이슬람 특유의 잔잔하고 세밀하게 새겨진 코란 문구와 하얀 돌을 석고 조각하듯 새겨 넣은

문양들이 황홀하게 보여 진다.

  ▼ 특히 눈에 띄는 것이 있었으니 화려한 왕관 아래 타일로 만든 작품으로 후에 알아 본 결과 여기에 적혀 있는 글자

'PLVS VLTRE"는 라틴어로 이 글을 영어로 표현을 한다면 'Plus Ultra',  Further Beyond '로 표현 할 수 있는바

이는 '보다 더 멀리 나아가라'라는 뜻으로 카톨릭을 국교로 한 스페인 대항해 시대의 모토로

이슬람 궁전의 흔적이 아님과 동시에 무어인들을 몰아낸 스페인 왕조의 의지를 보여 주려는 듯 

가장 첫 번째 방을 장식하고 있다.

  ▼ 왕의 집무실을 벗어나면 접견실인 '코마레스 궁'으로 이어 지는데 화려한 벽면의 모습을 마주 할 수 있으며,

연결통로에서는 하늘로 개방된 장소를 만나기도 한다.

  화려한 문양이 아로 새겨진 벽면의 연속으로 이곳은 '대사의 방(Hall of Ambassod)'이다.

이 대사의 방은 화려한 아라베스크 장식의 벽면 위쪽에 5개의 창이 있어 은은한 빛이 실내로 비추어 지고 있었다.

 

이 '대사의 방'의 조도는 밝은 곳에서 점점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는 효과를 내면서

그 중앙에는 대사들을 기다리는 왕이 앉아 있게 되는데 이런 빛의 효과는

가우디가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짓는데 영감을 줬다고 한다.

그리고 창문의 설계를 어느 곳에서 봐도 왕의 얼굴을 역광이 지게해 표정을 보이지 않게 설계한 방이라고 한다.

  13세기에 만들기 시작하여 260년이나 걸린 알함브라 궁전의 멋진 장식무늬 들은 과연 놀라움의 연속이다.

궁전은 유약 처리된 타일과 조각된 벽토 그리고 조각하거나 맞붙인 나무 등의 소박한 자재로 건물의 안팍을 장식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사의 방(Hall of Ambassod)"에는 바닥에 금줄을 쳐놓고 탐방객의 통행을 제한한 곳이 있는데

그 중심에는 오리지널 나사리 궁전의 모자이크로 추정되는 장식이 보이고,

그 바깥 부분은 일반적인 타일로 되어 있어 확연히 비교가 되고 있다.

  ▼ 코마레스 탑(Toore de Comares) 아래에 있는 대사의 방 천정 모습이 예사롭지 않은데

짙은 갈색을 바탕으로 하여 밤하늘의 별들을 형상화 하여 삼나무 89017개를 짜 맞추어 제작한 것이라 하고, 

이슬람 특유이 말굽형 아치로 되어 있는 입구와 길이 방향으로 길게 만든 갈색천장에는 또 다른 별들이 새겨져 있다.

 

이 대사의 방은 1492년 알함브라이 마지막 군주였던 보압딜이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여왕에게 항복한 장소이자,

콜럼버스가 이사벨 여왕에게 신대륙 탐험을 위한 허가를 받은 장소로 알함브라  궁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이 되겠다.

  ▼ 이슬람 특유의 말발굽형 아치 문을 나서게 되면,

▼ 나사리 궁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사자의 궁과 이슬람 건축의 백미를 만나게 된다.

사자의 궁(Palacio  de los Leones)은 나사리 궁전의 남아 있는 3개의 궁전에서 가장 보존상태가 좋고

예술성이 뛰어난 궁으로 사자의 안뜰로 이어지는 회랑에 서면

처마 밑을 장식하고 있는 124개의 대리석 기둥과 회랑을 만날 수 있고, 

말발굽 아치 윗쪽으로는 그 표면이 마치 우리나라 투각청자 도자기를 연상시킨다.

 

여기서 사자의 궁과 사자의 안뜰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기둥은 대추야자 나무를 표현 하고 있다 하고,

대추야자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이미 재배되었던 나무이자 가장 오래된 식물로

주로 건조하고 더운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자라는 것인데 이곳에 적용을 한 것으로

무어인들 조상에게 대추야자는 바로 오아시스가 있는 곳 

즉, 건조한 사막에서 만나는 파라다이스와 같은 상징적인 나무이기에

물이 항상 귀했던 무어인들은 궁전에도 물길을 만들어 이처럼 분수와 연못을 조성하게 된 것이다.

 

  ▼ 은은함이 화려하게 보이는 타일 벽면에서 차분함 감정을 되살리게 되기도 하면서, 

  아라야네스 정원(Paito de lds Arraynes)을 만나게 된다.

이 정원의 원 이름은 '심지어 초기 관광객들은 장식을 뜯어내어 기념품으로 갖고 갔으며, '이다.

그런데 안뜰에 있는 35m × 7m 크기의 이슬람식 사각형 연못가에 '아라야네스'가 심겨져 있어서

원래 이름보다 아라야네스 정원(Paito de lds Arraynes')'으로 더 많이 불리우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장소는 실외인 것처럼 보이고 느껴지지만 엄연히 알함브라 궁전 내부에 조성된 곳으로

외부와 차단이 되어 있다. 실내외를 이어 주는 수로와 분수는 경계를 허물듯 유연함이 녹아 있고

방과 방사이는 끊어지듯 하면서 이어진다. 그 구조가 신기하게 다가 온다.

   코마레스 궁이 마주 보이는 연못 가장자리에서 그 궁이 연못 물에 비추어 지는 모습이 뷰포인트라 하며

김신웅 과장은 물빛에 반사되는 코마레스 궁의 풍치를 잘 살리게 하면서

참석자 모두의 모습을 일이이 직접 카메라에 담아 주는 수고를 마다 하지 않았었다.

나도 이 장면을 카메라의 조도를 조정해 가면서 가장 잘 나온 사진이 나오기를 희망하며 여러 장 촬영해 보았다.

 

한편, 이 연못은 물이 고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흐르고 있으며,

다만, 그 흐름이 잔잔하여 고여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고 물의 깊이가 13m에 달한다 한다.

 

무어인들은 물길을 만들어 다로강으로 부터 물을 끌어와

나사리 궁전 곳곳에 있는 분수와 수로의 경사면을 치밀하게 계산해서 만든 계단 가운데를 뚫고

압력을 조절해 물을 가두어 두고 흘려 보내는 이슬람의 물 공급방식은

물이 귀했던 조상들의 땅 아프리카에서 부터 전해져 내려 오는 그들만의 노하우를 이처럼 갖고 있었다.

그렇게 형성된 이 연못은 건물을 2배로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어 뷰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나사리 궁전의 핵심은 바로 이 코마레스 궁으로 유수프 1세 때 짓기 시작하여

그의 아들인 무함마드 5세가 1370년애 완공하였다고 하고, 이 코마레스 궁 아래에 대사의 방이 위치한다.

   왕의 방(Sala de los Reyes)이 위치한 사자의 안뜰(Patio de Los Leones)을 바라 보며 코마레스 궁쪽으로 보면

천장의 화려함을 만나게 되고 대추야자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수 많은 기둥이 연속으로 등장한다.

  다음엔 '왕의 방(Sala de los Reyes)이 기다리고 있고 이곳에도 물의 흔적이 존재하였다.

   사자의 안뜰을 둘러싸고 있는 124개의 기둥과 회랑에 둘러  쌓인 중앙에는 12마리의 사자상 분수가 더위를 식혀 준다.

이 12마리 사자상은 모두 제각각의 모습으로 조성되어 있고, 이 분수로부터 물이 흘러 나와

사자의 안뜰을 두르고 있는 4개의 방앞에 조성된 원형 수반의 작은 원형분수로 흘러 드러가는 구조로 조성되어 있다.

 

한편, 이 사자상 분수는 단순한 분수가 아니라 물시계 기능고 했다 하는데

12마리의 사자중 입에서 물이 흘러 나오는 갯수로 시간을 확인했었다 한다.

   이어서 사자의 궁과 코마레스 궁과 연결되는 화려한 처마가 있는 곳을 이유하여,

왕의 방을 거쳐서 두 자매의 방으로 가게되는데 여성들 특유의 암투가 벌어졌었던 하렘이 되겠고,

왕의 방으로 가는 길목에는 미세기둥으로 지지되는 개방형 다이아 몬드로 장식되어 있었다.

  왕의 방(Sala de los Reyes)은 왕의 휴식을 왕의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30m가 넘는

대형로비를 중심을고 구성되어 있는데 다양한 리쎕션과 축제 공연을 위한 무대 역할을 했었다 한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만나는 곳마다 열변을 토하듯 설명을 해주던 우리 김신웅 과장은

이 왕의 방에서는 말수가 줄어 들며 그냥 스쳐 지나가듯 비교적 이른 시간안에 통과하게 된다.

 

아래 사진은 왕의 방 천장에 그려진 그림으로 타원형 공간을 중심으로 대칭되게 배열하여 고급스런 옷을 입고

방석에 않아 서로 대화하며 황금빛 배경에 서서  축에 별장식이 있는 10명의 무슬림 인물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 끝에는 뱀의 머리와 사자가 그들을 지키고 있는 방패도 찾을 수 있다.

  이 사진의 그림은 마호메트가 알라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동굴의 종유석을 표현하고 있는데

별 모양의 모서리 벽에는 작은 채광창이 두개씩 모두 16개가 있어 빛이 안으로 은은하게 비추어 주고 있으며,

천정에는 5천개 정도의 별집 모양의 장식이 붙여 놓아 은근한 화려함이 돋보이게 된다. 

   아벤세라헤스 방과 두자매의 방은 천장이 나르스 양식의 걸작인 폭포식으로 떨어지는 5천여 개의 프리즘으로 형성된

모카라베(Macarabe) 천장이다.  모카라베는 모하메드가 코란을 받은 동굴을 상징하는 건축양식으로

무수한 종유석 문양을 새겨 놓은 장식이고, 여러가지 빛깔의 색은 돌을 갈아 만든 가루를 붙여 효과를 낸 것이라 한다.

특히, 푸른색은 당시에 금보다 비쌌던 아프카니스탄의 청금석 가루란다.

  아벤세라헤스의 방(Sala Sala de los Abencerrahes)은 겉보기에는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이슬람 궁전이지만

그 내부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엿보게 되는데

장에는 모카라베 문양이고, 벽면에는 온통 아라베스크 장식이 흘러 넘치는 방으로

이런 무늬를 일일이 손으로 새겨 만든 것이 아니고 아라베스크 문양을 틀에다 석고를 부어 만든 것인란다.

 

한편, 이방의 명칭이 '아밴세라헤스 방' 이라 불려진 사연이 있었으니 그것은 마지막 무어 왕인 보압딜과 대립했던

강력한 왕족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그라나다의 유력한 세력이었던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한 청년이 왕실 여름별장인 헤네랄리페의 안뜰에서 왕비와 사랑에 빠지게 되자 

보압딜 왕은 연회를 구실로 왕비와 청년의 애정 행각을 목격한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청년 36명을 초대하여

모두 참살한 사건에서 유래한 것이란다. 

그때 청년들이 흘린 피가 사자의 안뜰까지 넘치고 분수 입에서 피까지 흘러 나욌었다 하고,

그래서 이 방을 '비극의 방'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 두 자매의 방은 하렘으로 불리우기도 하며 왕 이외에는 그 어떤 남자도 들어 갈 수 없었던 공간이고 이는 터키의 톱카프 궁전의 하렘도 똑같은 규정을 적용하였다.

아래 사진은 그 두 자매의 방에서 바라다 보이는 '린다라하 정원(Paito de Lindaraja)으로

왕의 총애를 받던 여인들의 방인지라 정원을 바라 볼수 있게 한 것으로 보이는데

저 정원의 비석에는 아랍어로 적힌 글귀가 있으니 그 내용은

 

"이 얼마나 아름다운 정원인가??

땅 위 꽃들이 하늘의 별들과 겨루는 곳~~

수정같은 물이 가득찬 더 설화석고 수반은 세상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가운데 빛나는 꽉찬 보름달 말고는 아무것도 비할수가 없네"

  ▼ 두 자매의 방에서 '카를로스 5세의 방으로 이어진다.

카톨릭 국왕인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여왕에 의해 마지막 격전지 그라나다에서 무어인들을 완전 축출한 후

그들의 외손자인 까를로스 5세가 사촌인 포르투칼의 이사벨과 결혼식(1526년 3월 10일)을 을 올리고

이곳 그라나다로 신혼여행 왔을 때 이교도의 방에 묶는 것을 꺼려 해서 만든 방이라 한다.

 

그런 사연이 있어서 인지 실내는 이슬람 장식 없이 비교적 단순하고 담백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까를로스 5세가 신혼여행 이후 이곳에 다시는  오지 못하게 되고, 

알함브라는 세인들에게 잊혀져 버려졌다가 지붕도 나중에 만든 것이라 한다.

   그리고 이방에 스페인 주재 미국 공사로 '워싱턴 어빙'이 약3개월간 머물며

이 알함브라 궁전에 대한 이야기와 구전으로 내려 오던 이야기를 한데 엮은

에세이 모음집 '알함브라의 이야기(The Alhambra, 1832)'를 저술하였는데 이 책으로 인하여

한때 과걱의 역사 속에 묻혀 잊혀졌었던 알함브라 궁전이 근세기에 들어 다시 세상밖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한다.

그 워싱턴 어빙이 이방에 묶었다 하여 이 방에 그의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져 있었다.

신혼여행을 위하여 급조한 건물 답게 이 방에는 이 워싱턴 어빙의 현판 이외에는 별로 흥미 돋울만한 것이 없었다.

  ▼ 그리고 이 까를로스 5세의 방 창밖으로는 '알바인신 지구'가 한 눈에 보여지고 있었으니 

그 동안 지나 왔던 각 궁궐의 방들에 비하여 시원한 전경을 품고 있는 것이 특색이었다.

   이어서 두 자매의 방에서 창밖으로 내려다 보았었던는 '린다라하 정원(Paito de Lindaraja)으로 내려서게 된다.

무어인들은 물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이 산 정상에 위치한 궁전에 저수지를 만들고

'다로 강'으로 부 터 물을 끌어 와 나사리 궁전 곳곳에 이처럼 분수와 수로에 물을 공급했다 한다.

  ▼ 린다하라 정원을 마지막으로 나사리 궁전 탐방을 마치게 되는데 무어인들의 마지막 왕이었던 보압딜 왕이

혹시나 궁이 파괴될까 염려 되어 전쟁을 빨리 끝내고자 눈물을 흘리며 투항을 했었고,

그라나다를 정복한 스페인의 카톨릭 왕조는 알함브라가 너무 아름다워 

차마 파괴하지 못했다 알려진 나시리 궁전과 이별을 고하게 되는 것이다.

 

궁전의 건물을 벗어나자 예의 강한 햇쌀과의 전투를 이겨 내야 하는데, 탐방객들과 어우러져 잠시 기다리는 시간을 갖는다.

 

  ▼ 그 잠깐의 시간에 현지 가이드인 '빠코'와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김신웅 과장은 이 빠코가 개인적으로 헬기도 보유하고 있다며 띄워 주는데 독학으로 공부했다는 우리말도 잘하고 있었다.

성격도 상당히 친화적으로 스스름 없이 농을 주게 받게 된다.

   잠시 한담을 나누던 우리는 이제 '알카사바'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한다.

   궁전 건물 등에 대리석 현판으로 이정표를 대신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왔었던 길을 잠시 되돌아 걷게 되고,

  알함브라 매표소에서 입장권과 여권을 확인 받았었는데 이곳에서 한번 더 확인을 받게 된다.

   알카사바(ALCAZABA) 현판을 다시 한번 만나게 되는데 성벽들은 모두 흙으로 축성된 것이 확연히 드러나는데

알카사바 성벽은 흙을 구워서 만든 붉은 벽돌로 쌓은 성벽으로 이처럼 축성되어  있다.

성벽이 붉은 색이어서 아랍어인 "(al Hamra) : 붉은 것"이라는 글에서 "알함브라"라는 지명이 유래 한 것이란다.

 

그리고 이 알함브라 궁전은 이베리아 반도를 수백년간 통치하던 이슬람 세력의 무어인들이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곳으로

알함브라 궁전을 둘러 싸고 있는 성벽과 요새 또한 이중, 삼중의 성벽을 축성하여 매우 견고하게 조성한 곳이다.

   성벽 계단밑으로 이동을 하면서 '큐브의 탑(TORRE DEL CUBO)'이라는 현판을 지나게 되고,

  셩벽위에 조성된 경비 초소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어?? 아니다. 아니지!!

저 녀석이 벨라의 탑인가??

헷갈린다~~~

  이어서 예전에 지하감옥이었다는 시설물을 지나친다.

  ▼ 성벽안에 조성된 병사들의 숙소, 무기 제작소와 대장장이들의 주거지, 목욕탕, 우물등의 유적의 건물터들이 자리하고 있는 아르마스 광장을 지나는데 이곳에는 약 4만여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한다.

 

그 위로 보이는 벨라의 탑(Torre de la Vela)을 올려다 본다.

저 벨라의 탑은 알카사바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망루 역활을 하는 곳이며,

그 아래에 유럽 연합기, 안달루시아기, 스페인 국기 그리고 그라나다 시 깃발이 펄럭이고 있는 모습이다.

  ''TORRE DE LAS ARMAS"  = 직역하면 '포탑'이니 성문을 통과하여 포대로 조성된 벨렘탑으로 향하였더니

사위가 트이면서 무어인들의 주거지인 '알바이신 지구'를 협곡 건너편으로 만나게 된다.

 ▼ 건너편의 산 정상부터 사크라몬테 언덕까지 시원하게 한 눈에 보인다.

당연히 뷰포인트로 강한 햇쌀을 무심하게 받으며 삼삼오오 인증샷에 여념이 없는 시간을 보낸다.

  ▼ 지금 이 자리에서 건너다 보이는 하얀 집들이 늘어선 예쁜 마을 알바이신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문화유산이다.

이 알바이신에 집시들이 많이 살고 있다. 집시들에 대한 여러 설이 있지만15C 무렵 인도나 루마니아, 헝가리 등

동유럽에서 쫓기고 쫓겨 이베리아 반도에 정착한 소수 유랑 민족인데 어디서도 천대를 받아 왔다.

 

  1492년 이사벨 여왕이 무어인들의 마지막 왕궁이었던 그라나다를 함락할 때, 그 지역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집시들이 많은 정보를 제공하면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 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기에 이곳에 정착하는 것을 승인했다.

 

한편, 그러한 집시들이 사는 동굴 집을 꾸에바(Cueva)라고 하는데 알함브라 궁전 진입로 부근 산자락에는

현재에도 많은 꾸에바가 있는 것을 차창 밖으로 보았으며, 이 집시들은 국가에서 집을 마련해 주어도 거부하고

지금도 꾸에바 생활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크로몬테에 집시들이 사는 동굴 Cueva에서 춤을 추기 시작하였고 전용 선술집인 타블라오(Tablao)

마루바닥 위에서 추던 플라멩코가 오늘날 오페라, 발레, 탱고와 믹싱되어 대형 예술극장의 공연으로 발전하면서

스페인을 상징하는 종합예술이 되었는데 찰리 채플린이 스페인을 방문하여 이 플라멩고 춤을 알게 되었고

미국으로 돌아가 무성영화에 적용함으로서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그 플라멩고 쇼를 내일 세비야에서 관람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건너편에 보이는 건물들중에 이 건물을 눈에 익혀 유심히 바라다 볼 필요가 있으니

그라나다 야간탐방시 저 건물 앞마당에서 이 알함브라 궁전을 거꾸로 바라다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니꼴라스 전망대'로 부르는 곳인데 우리는 몇시간 뒤 해가 진 그라나다의 밤을 즐기면서

오늘 밤 저곳으로 가서 이곳을 바라 보며 알함브라의 야경을 즐기게 된다.

 

아래 사진 맨 뒤로 보이는 산줄기가 스페인 남부를 가로 지르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고,

이 지명이 미국의 '네바다 사막'의 원조가 되는데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스페인 사람들이

미국 서부의 지명을 지으며 자기들 본국의 지명을 갖다 부치게 된 결과이니 '로스엔젤레스(LA)'가 그 대표가 되겠다.

▼ 알카사바의 성벽과 망루를 잡아 보았는데

좌측으로 보이는  사크라몬테 언덕 아래로는 그라나다 성벽도 함께 보이는데 저 성벽도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이라니

우리나라 '한양순성길'을 떠 올려 본다.

   알바이신 지구를 배경으로 한 인증샷을 마지막으로 알카사바 와도 안녕을 고하게 되고

이제는 마지막 장소인 '헤네랄리페' 정원을 만나기 위해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동영상> - 아라야네스 정원(Paito de lds Arrayne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