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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발칸4국

40. 프라하 야경투어

제 7 일차 (2019년 11월 6일)

프라하 야경투어후 듀오 호텔(Hotel Duo) 입실

 

 

제 7 일 전체일정(2019년 11월 6일)

1. 슬로베니아(Slovenia) 머큐어 마리보르 씨티쎈터(Mercure Maribor City Center)에서 오스트리아 빈(Austria, Wien/Vienna) 으로 이동

2. 벨베드레 궁전(Schloss Belvedere) 탐방 옵션

3. 중식후 쉔부른 궁전(Schönbrunn Palace, Schloß Schönbrunn) 탐방

4. 게른트너 거리(Kerntner Street) 및 슈테판 성당(Domkirche St. Stephan) 탐방

5. 체코 프라하(Czech Praha)로 이동

6. 프라하 야경투어후 듀오 호텔(Hotel Duo) 입실

 

 

프라하에 봄은 오는가!!??“

그리고 공산국가!!

프라하 하면 그냥 떠 오르는 단어는 달랑 이 두개 뿐이였었다.

거기에 한가지 더하면 일제 강점기때

우리의 독립군들이 만주벌판에서 일본군에게 맞서 싸우기 위해

'체코제 총을 구입해서 사용하여 청산리 전투 등에서 대승을 얻었었다' 라는 것만이

체코에 대한 나의 전부였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중 첫 번째 일정으로 만난 체스키 크롬로프 성을 만나

그 아름다움에 반하게 되었고,

체코의 오래된 문화와 역사 등에 대하여,

최팀장의 체코에 관한 설명을 들으며

이들의 앞선 문화와 우수한 민족성 그리고 예전부터 상당히 발달한 공업기술에 놀라기도 했었다.

 

한 마디로 체코에 관한 정보가 전무한 상태에서 현지를 방문한 이후

체코에 관한 이미지가 180도로 바뀌게 되었는데

이번 여행의 시작과 끝을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하게 된다.

 

특히, 체코는 전체 산업중 관광산업 비중이 15%에 달하는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니

관광산업만으로는 이태리와 프랑스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관광대국으로

그 중심에는 오늘 만나게 될 프라하가 있는 것이다.

 

이 프라하의 관광객 수는 연간 2천만명을 상회 한다 하는데

그 인원수에 나도 한몫하여 프라하를 오늘밤 만나게 되는 것이다.

 

 패키지 여행에서 야경투어는 대체로 옵션으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프라하 야경투어는 여행 기본상품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 여행상품을 보며 의아해 했었는데

오늘밤 프라하를 만나고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프라하 야경은 너무나 아름답고 황홀하여 이 투어는 필수적이다.

그러니 이 필수적 투어를 옵션으로 진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프라하 관광 개념도>

<프라하 구시가지에서 호텔 듀오 이동경로>

 

 

프라하 Praha

위치 : 체코 중서부

인구 : 1,280,508(2017)

면적 : 496.0

 

  19세기에 제조업 분야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체코의 경제를 주도하는 도시가 되었다.

주요공업은 중·정밀기계 제조업과 프라하 맥주를 비롯한 식품류 및 전자·화학제품 제조업이다.

블타바 강이 프라하 중앙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른다.

 

  강의 서쪽과 동쪽 모두 역사적 기념물들이 많으며 프라하 궁은 강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도시 전체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세워진 스바티이르지 교회부터 신고전주의 양식인 국립박물관까지

갖가지 양식으로 세워진 건축물 유산이 풍부하다.

 

  문화의 도시로도 유명하여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다.

프라하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로는 프란츠 카프카,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이 있다.

 

  9세기부터 세워진 건축물 유산이 풍부한 도시이다.

작은 정착촌들에서 비롯되었으며, 점차 확장되어 지금은 시가지가 구릉지대,

타바 강 지류의 유역들,

강 연안의 계단식 대지까지 펼쳐져 있고,

19세기에 직물과 기계류 제조업 분야가 급속도로 발전한 이래 프라하는 체코의 경제를 주도하는 도시가 되었다.

 

  블타바 강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면서 프라하 중앙을 가로지른다.

강의 서쪽 기슭에는 왕립 정원, 흐라트차니(프라하의 성), 정원과 공원으로 이루어진 말라스트라나[小地域] 등이 있다.

 

  강의 동쪽 기슭은 주로 12세기에 조성된 스타레메스토(구시가지)

14세기의 노베메스토(신시가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두구역 모두에 역사적 기념물들과 교회들이 많이 있다.

 

특히, 노베메스트의 건축물들로 인해 프라하는 '100개의 뾰족탑을 가진 도시'로 묘사되기도 한다.

오래된 구역들의 좁은 거리들, 작은 선술집들, 식당들과 넓게 트인 바츨레프스케 광장 및 현대적인 공원,

주택단지 들이 대조적인 모습을 연출하고 있으며,

주택난의 해소를 위해 시의 변두리 지역에 신주택촌이 계속 조성되고 있다.

 

  10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세워진 스바티이르지 교회를 비롯하여

고딕 양식의 성 비투스 대성당과 틴 교회, 바로크 양식의 발트슈테인 궁과 츨람갈라스 궁,

로코코 양식의 골스킨스키 궁,

고전주의 양식의 베드르지흐스메타나 박물관과 벨베데레 궁,

신고전주의 양식의 국립박물관과 국립극장 등에 이르기까지

프라하에는 갖가지 양식으로 세워진 훌륭한 건축물들이 많다.

 

유대인들이 오래전부터 프라하에 깊이 뿌리를 내렸는데,

이는 구예배당, 신예배당과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구유대인  묘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프라하는 문화의 도시로 유명하며

특히, 음악과 문학 분야에서 훌륭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체크의 위대한 작곡가인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안토닌 드보르자크, 레오슈 야나체크를 기념하는

음악제가 매년 봄축제 때 개최되며,

프라하가 자랑하는 관현악단인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다. 한편, 프라하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로는 프란츠 카프카, 라이너 마리아 릴케, 야로슬라프 하셰크 등이 있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를 끼고 있는 보헤미아 지방은

오랜 전부터 동서남북을 잇는 유럽의 길목으로 앞선 문화와 여러 사상들이 모이는 중심지였다.

과학자인 케플러와 아인슈타인, 음악가인 모차르트와 드보르자크, 소설가 카프카 등

역사상의 훌륭한 인물들이 이곳에서 활동하고 배출되었다.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다운 세계 야경 명소 BEST 10

  1. 일등 낭만 여행지 프라하 :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듯한 풍경을 자아내는 프라하 구시가지의 야경은

중세 시대 모습을 간직하여 프라하를 한층 더 분위기 있게 만들어 준다.

까를교를 건너면 없던 썸도 생긴다는 마성의 여행지 프라하에서 어둠이 내려와 조명이 하나둘씩 켜질 때

까를교 전망대(Charles Bridge)에 올라가 구시가지, 프라하 성을 바라 보거나 프라하 도시의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페트린 타워(Petřínská rozhledna)를 방문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멋진 추억이 될 것이다.

 

  2. 예술의 도시 파리 : 한번 보고 두 번 보고 어느 각도에서 봐도 예쁜 에펠탑과 함께라 더욱 황홀한 야경을 보여 준다. 저녁 9시부터 자정까지 매 시간마다 2만 개의 전등이 빛이나 더욱 낭만적인 에펠탑을 만들어 준다. 센 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파리의 명소들을 둘러 본다면 더욱 가까이서 멋진 파리의 야경을 만날 수 있다. 라파예트 백화점 옥상, 몽파르나스 타워, 개선문, 샹젤리제 거리 등 어느 곳을 방문해도 최고의 야경을 볼 수 있다.

 

  3. 유럽 야경 명소의 일등 공신 부다페스트 : 다른 여행지의 야경과는 차원이 다른 아름다움으로 인해 부다페스트에 도착해 야경을 본다면 모두 다 잊을 정도로 마음을 뺏기고 만다. 부다페스트의 랜드마크 국회의사당은 최고의 야경명소다. 도나우강에 비친 국회의사당은 강 건너편 둑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토카이 와인을 마셔도, 유람선을 타고 가까이 보더라도 모두 최고의 추억을 만들어 준다, 부다페스트의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겔레르트 언덕, 부다 왕궁, 어부의 요새를 방문해 세체니 다리와 국회의사당, 성 이스트반 성당까지

 

  4. 중국에서 야경하면 빼놓을 수 없는 상해 : 야경을 보기 위해 상해를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국적인 풍경과 건물은 상해의 야경을 한층 더 빛나게 만들어 준다. 유럽에 있는듯한 풍경의 와이탄은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가득하며 황푸강에서 페리를 타고 바라보는 상해의 고층 건물들은 야경을 감상하기에 제격이다. 미래도시와 유럽의 도시까지 모두 만날 수 있는 상해는 우리나라와 가까워 주말여행으로도 안성맞춤이다.

 

  5. 화려한 야경의 도시 홍콩 : 홍콩에 간다면 매일 야경을 보러 밖을 나가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황홀한 야경을 자랑한다. 홍콩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빅토리아 피크에서 홍콩의 시내를 내려다 본다면 세계 3대 야경을 몸소 느낄 수 있다. 침사추이 역시 홍콩 야경 명소인데 이곳에서는 저녁 8시부터 약 15분간 화려한 레이저쇼가 음악과 함께 어우러지는 심포니 오브 라이트 공연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방문한다.

그 외에 스카이 100, 뤼가드로드 등 다양한 명소에서 아름다운 홍콩의 야경을 즐길 수 있다

 

  6.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있는 두바이 : 최대, 최고의 계획도시인 만큼 멋진 고층 빌딩은 물론 여행하기에도 안성맞춤인데 부르즈 칼리파에서 바라보는 두바이의 전경은 마치 발밑에 별빛이 있는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부르즈 칼리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세계 3대 분수쇼는 두바이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코스이다. 매일 저녁 30분 간격으로 반짝이는 불빛, 레이저, 신나는 음악과 함께 어우러져 더욱 장관을 이룬다. 두바이 마리나에서는 높은 빌딩 숲 사이를 마리나 워크를 따라 걸으며 그 웅장함을 느낄 수 있으니 하늘과 땅, 모두 빼놓지 않고 봐야 할 두바이의 야경 명소다.

 

  7.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폭포 나이아가라 : 밤에 본다면 더욱 특별할 텐데 13층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폭포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물줄기에 조명에 비쳐 더욱 웅장하고 색다른 야경을 보여 준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스카이론 타워에서 보는 것 또한 알록달록 변하는 멋진 폭포의 장관을 볼 수 있으며 금요일 오후 9~10시에 불꽃놀이를 하여 밤하늘을 수놓아 더 기억에 남는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다.어요

 

  8. 잠들지 않는 도시 라스베이거스 : 낮보다 밤이 더욱 빛나는 화려한 야경을 상상한다면 라스베이거스를 빼놓을 순 없다. 오감만족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라스베이거스는 카지노, 멋진 호텔, 각종 공연 등 24시간이 부족한 여행지이다. 라스베이거스의 파리스 호텔, 골드 너 깃 호텔, 벨라지오 호텔 등 멋진 호텔을 투어 하더라도 그 야경을 즐길 수 있으며 하늘에서 감상하는 헬기 투어와 멋진 야경을 안주 삼아 칵테일 한잔 마시는 루프탑 바까지 모든 유흥이 밀집되어 있는 만큼 밤이 더욱 화려한 라스베이거스는 해가 질수록 더욱 빛나는 여행지이다.

 

  9. 가장 화려한 호주를 보고 싶다면 시드니 : 시드니의 랜드마크 오페라 하우스와 고층 빌딩, 하버브리지에 어둠이 내리면 더욱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페리를 타고 배 위에서 시드니의 야경을 본다면 바다 위에 비친 불빛과 더해져 더욱 아름다운 야경을 만날 수 있다. 일몰 시간에 맞춰 시드니 타워의 레스토랑을 이용한다면 360도 회전하는 식당에서 어둠이 내리며 하나둘씩 불이 켜지는 반짝반짝한 시드니를 내려다보며 맛있는 밥을 먹는 멋진 저녁식사가 된다.

 

  10. 세계 3대 야경을 만날 수 있는 북해도 하코다테 : 일본의 작은 소도시인 만큼 크고 화려한 고층 빌딩은 없지만 양옆으로 바다가 있는 독특한 형태의 야경을 만날 수 있는데 하코다테의 야경을 보기 위해선 로프웨이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가야 하며 실내외 모두 전망이 가능하다. 북해도에 여행 간다면 삿포로만 다녀오지 말고 은은한 도시에 별빛이 내린 하코다테에 가서 야경을 보는 것도 추천한다.(펌글)

 

 

 

<프라하의 야경명소>

  1. 프라하 패들보트 타고 보는 야경 : 프라하 패들보트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중에 오리배처럼 발로 굴려서 움직일 수 있는 보트가 300코루나이다. 사람 인원수에 상관없이 최대 4명까지 300코루나이기 때문에 동행을 구해서 여러 명이서 함께 타면 더 이득이다. 패들보트는 제한시간이 한 시간이기에 노을 시간에 맞추어 타야 한다.

(술 같은 것을 들고 탈 수는 없고, 일행 중 한명의 여권이 필요함)

  프라하 패들보트는 슬로반스키 섬(Slovanský ostrov)에서 탈 수 있는데 지도를 기준으로 왼쪽에 있는 가게는 밤늦게까지 안한다. 그래서 야경보려면 오른쪽에 있는 패들보트 가게에서 타야 됨!

  2. 프라하 루프탑(T-anker)에서 보는 야경 : 프라하 루프탑 T-anker는 바츨라프 광장에서 굉장히 가깝기 때문에 프라하 한복판에서 즐길 수 있는 야경이다. 분위기가 굉장히 로맨틱해서 무슨 영화 속 한장면에 들어와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 맥주 한 잔 마시면서 동화 속 모습 같은 프라하를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추천하지 않을 수 없는 장소다.

꼭 이곳이 아니더라도 프라하 루프탑 이외에 아무 곳이나 가서 꼭 해가 지는 모습을 즐겨야 한다.

 

  3. 프라하 리에그로비사디(Riegrovy sady)에서 보는 야경 : 이미 노을이 완벽하게 지기 전부터 사람들이 돗자리 펼치고 앉아 있는 노을전망터이다.

 

 

9시가 다 된 시간!!

드디어 역사와 문화의 도시 프라하에 재입성 하게 된다.

여행 첫날 밤 잠시 스쳐 지나갔었던 프라하를 제대로 만나게 되는 것이 되겠다.

 

구시가지 볼타바 강 건너편 레트나 공원 인근의 “Kaple svate Mari Magdaleny” 교회 앞에서 하차하여

프라하의 밤을 만나게 된다.

구시가지에는 대형버스 진입이 불가하기에 볼타바 강 건너편 '체흐프교' 앞에서 탐방을 시작하는 것인데

체흐프교 건너로 보이는 프라하의 야경이 건너다 보인다.

코앞에 보이는 이 체흐푸 교(Čechův most)

레트나 공원과 유대인 지구를 이어 주는 다리로 프라하 지구와 구시지가지를 연결해 주는데,

볼타강이 곡선으로 휘어지는 곳에 위치하며 볼타바 강의 교량중 가장 짧고, 프라하의 10번째 다리로 알려져 있다.

이 다리를 건너 법학대학 앞을 통과하면 유대인 거주지를 만난다.

 

최 낙진 팀장을 선두로 그 체흐프교를 건너면서 볼타바 강의 정취를 만끽 하게 되고,

오래전부터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했었다는 말답게 우선 유대인 집단 거주지와 연이어 법대 앞을 지나게 된다.

아직은 프라하 관광지 직전인지라 유대인 거주지와 법대앞 도로는 한가 하지만

가을 낙옆을 품고 있는 가로수들과 도심의 모습이 프라하의 야경을 즐기기 위한 전주곡으로 느끼게 할 만큼

고즈녘하고 서정적인 밤풍경을 만나게 된다.

드디어 저 멀리 2개의 뽀족탑이 바라다 보인다.

프라하의 구시지가지를 대표한다는 말이 실감나게 멀리 서도 바라다 보이는 '틴 성당'이 되겠다.

프라하와의 만남은 이 '틴성당'을 만나면서 시작한다.

구시가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물인 틴성당의 뽀족탑은 탐방객들의 이정표처럼 하늘 높은지 모르고

높게 조성되어 있는 것에 더하여 조명을 받고 있었다.

 

이 조명 빛에 어우러진 틴 성당의 모습을 어찌표현해야 할기 모르겠다.

아담과 이브를 상징한다는 2개의 탑으로 쏘아지는 조명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하다고 부족한 것 한 점 없는 은은한 조명을 받고 있는 이 성당의 모습은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뒤지지 않는 모습으로 다가 왔으니 저절로 손에 쥔 휴대폰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된다.

 

황홀하며 몽환적인 틴성당의 모습에 한 동안 넋을 잃게 되는데

2개의 탑중 높은 것을 아담, 낮은 것을 이브로 부르고 있는  틴 성당의 탑이다.

 

틴 성당(틴 성모 마리아 성당,  Church of Our Lady Before Týn)

아담과 이브라는 이름을 가진 두 개의 첨탑이 인상적인 곳으로

1365년에 건립되기 시작해 17세기까지 다양한 건축 양식을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인 고딕 양식이 되었다.

하지만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고딕 양식의 외관과는 다르게

성당 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되어 있어 분위기가 어두운 편이란다.

 

프라하 성의 '성 비트 대성당'과 함께 프라하를 대표하고 있는 이 성당은

15세기~16세기까지 후스파의 본거지로 이용되기도 했으며,

동화 속 공주가 살고 있을 것만 같은 화려한 성으로 

야간에 조명을 받고 있는 모습에 홀려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고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80m 높이의 2개의 뾰족한 첨탑이 인상적으로 다가 오는데

전통적 고딕 양식의 두 탑은 아담과 이브를 상징한다고 하고,

아담 탑이 조금 더 높은데 그 이유는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을 그림자로 가려 보호해주기 위해서라 한다.

 

두 첨탑 사이엔 보헤미아 왕의 조각상과 후스파를 상징하는 금으로 만들어진 성배가 있었으나

30년 전쟁 후 가톨릭이 정권을 잡으면서

왕의 조각상을 녹여 성모 마리아의 초상으로,

성배는 후광으로 제작했다 한다.

 

성당 내부에는 루돌프 2세 아래서 일했던 덴마크의 천문학자 티코브라헤(TychoBrahé)가 잠들어 있는데

현재 관광객들에게는 완전 개방은 하지 않고 미사시간 전후로만 개방하고 있으며,

80m에 달하는 첨탑과 제단화, 티코 브라헤의 묘비

그리고 파이프 오르간으로 유명한 성당이 되겠다.

 

<바츨라프 광장 "틴성당, 얀후스 동상 등" 동영상>

 

발걸음 떨어지지 않는 틴 성당을 뒤로 하고 얀후스 동상을 만나게 된다.

얀 후스(Pomní Jana Husa) 동상

내일 다시 만나기로 한 천문시계탑을 지나 구시가지 광장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얀 후스 동상을 만난다.

체코의 종교 개혁가인 얀 후스의 순교 500주년을 맞아 세운 것이라고 한다.

 

얀후스(Pomní Jana Husa)는 최초의 종교 개혁가이며 카토릭의 부정부패를 지탄하며 종교개혁의 선지자였다.

15세기 종교 개혁자인 얀 후스는 가톨릭의 타락을 앞장서서 알리다 로마에서 화형 당했고,

그 후 그의 추종자들 역시 처형되었다.

 

이 얀 후스 동상은 세계인들에게 프라하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많이 알려져 있으며 동상 주변은 이곳을 약속 장소로

삼거나 잠시 쉬어 가는 여행자들로 늘 붐빈다.

그러나 오늘 밤은 한가하였다. 

 

우리팀에게 모두 양보한 분위기인데 천문시계탑이 코앞이고, 구시지가지 광장과 맞물린 이곳의 정취를 

마음껏 감상하며 여유롭게 즐기게 되니 이곳이 바출라프 광장이 되겠다.

▼ 얀후스 동상을 지나치자 천문시계탑(Pražský orloj)을 만나게 된다.

이 천문시계탑은 매시 정각이 가까워지면 시계가 작동하는 모습을 보기 위하여 수 많은 관광객들이

우르르 몰리는 곳이다. 즉,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구시청사에 있는 '프라하 천문시계 오를로이'는 세계에서 3번째로 오래 된 천문시계로

지금까지 작동하는 것 중에는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이 천문시계가 작동하는 모습은 다음날 낮에 만날 수 있으니 오늘밤에는 그냥 여기서 안녕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오늘은 틴성당의 감흥에서 빠져 아직 빠져 나오지 않았고 어차피 작동도 하지 않으니 이 천문시계는 찬밥 신세였었다.  

 

 

천문시계(Pražský orloj) :

구 시청사 외벽에 걸린 천문시계(天文時計)는

 매시 정각 약 20초간 재미있고, 신기하고,  놀라운 움직임을 보여주어 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정각이 되면 죽음을 의미하는 해골 인형이 종을 치고두 개의 창문에서 12사도가 등장한다.

돈에 혈안이 되어 지갑을 움켜쥔 유태인과 음악을 사랑하는 터키 사람,

허영에 빠져 거울을 보는 자의 인형도 등장한다.

이 모든 것들이 죽음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울림을 남기고

20초간의 퍼포먼스가 마무리 되는데 세종대왕때 장영실이 만들었다는 우리의 자격루가 연상된다.

 

천문시계는 얀후스의 군상 옆에 프라하 구시청사 벽에 걸려 있다.

1410년 시계공 미쿨라시(Mikulas of Kadan)

뒷날 카를 대학의 수학 교수가 된 얀 신델(Jan Sindel)이 공동으로 제작하였다.

 

오늘날 프라하의 명물로 손꼽히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시계를 보기 위해 몰려든다.

시계는 상하 2개의 큰 원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위쪽 시계를 Astronomical Dial(천문시계),

아래쪽을 Calendar Dial(달력시계)라고 부른다.

천문시계는 천동설의 원리에 따른 해와 달과 천체의 움직임을 묘사하였다.

 

일반적으로 1년에 한 바퀴씩 돌면서 연, , , 시간을 나타낸다.

아래쪽 원은 12개의 계절별 장면들을 묘사하여 제작 당시 보헤미아의 농경생활을 보여준다.

 

매시 정각이 되면 Astronomical Dial(천문시계) 오른쪽의 해골 모형이 움직이면서

12 사도들이 2개의 창을 통해 천천히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이어서 시계 위쪽의 황금색 닭이 나와 울면서 시간을 나타내는 벨이 울린다.

이 장면을 보기 위해 매시 정각이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오고,

그 주변에는 관광객들의 지갑을 열게하는 카페와 맥줏집 들이 

장사진을 펼쳐 놓고 고객을 유혹하고 있다.

  바츨라프 광장(Wenceslas Square)

구시가지 광장과 함께 프라하를 대표하는 광장 중 하나인 바츨라프 광장은

체코 국립 박물관에서부터 무스테크 광장까지 이어지는 길로 750m, 너비 약 60m에 달하는 긴 대로이다.

 

국립 박물관 앞에는 체코의 첫 왕조인 프르셰미슬 왕가의 왕으로

 체코인들이 수호성인으로 여기고 있는 '성 바츨라프의 기마상'이 서 있으며,

 

이에 바츨라프 광장의 명칭이 유래되었다.

 

기마상 앞쪽은 1968프라하의 봄이 좌절되고,

1969년 소련군의 침공에 맞서 학생이었던

얀 팔라크가 분신 자살을 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 독립선언이 선포되었고,

1968년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외치며 알렉싼더 두브첵이 앞장 섰던 민주혁명과

1989년에는 '프라하의 봄'으로 불리는 민주화 운동을 일으켜

공산정권을 종식시킨 벨벳혁명이 일어난 장소이다.

 

1968년 체코인들의 자유 · 인권 · 민주를 향한 외침인 프라하의 봄

이 광장에서 시작되었으나 구소련의 탱크에 무참히 짓밟혔다.

 

코인들의 자유에 대한 이런 열망들이 바탕이 되어

198911월 극작가이자 인권 운동가였던 하벨(Václav Havel)

반체제 연합인 시민 포럼을 조직해 공산 독재 체제를 무너뜨리며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 시민 혁명을 이룩하였다.

 

시민 혁명이 성공한 뒤, 체코의 대통령이 된 하벨은 한 연설에서

우리는 평화적으로 혁명을 이루어냈다. 이는 "벨벳 혁명이다!!"라고 말하였는데,

여기서 벨벳 혁명이란 말이 비롯되었다.

 

현재 바츨라프 광장의 양 대로엔 호텔과 레스토랑, 서점, 여행사, 쇼핑센터들이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지만,

14세기에는 말을 파고 사는 우시장과 곡물식당이 있었으며,

프라하 중앙역이 인근에 위치하며,

2개의 지하철 역, 시내를 관통하는 트램과 버스가 지나는 교통의 요지이며

광장의 들머리에는 세계 10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프라하 국립박물관'이 있다.

바츨라프 광장을 지나 틴성당 건너편의 골목길로 진입한다.

넓은 광장 그리고 유명 관광지도 볼만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골목길이 더 마음에 닿은다.

웬지 어린 시절 골목대장 노릇을 하던 시절도 떠 오르고 말이다.

 

화장품 상점, 간식거리를 파는 곳, 기념품 상점 등등을 교대로 만나며 발걸음 속도가 빨라진 최팀방 뒤를 쫓게 된다.

급한 발걸음을 옮기며 여기 저기 관찰하는라 이 골목길에 '마뉴 팍튜라' 매장이 있는 것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맥주 샴푸로 알려진 마뉴 팍튜라 샴푸를 사기 위하여 다음날 헤메이지 않았을 터인데... ㅠㅠ

좁은 골목갈을 지나 황제의 길 또는 '왕의 길(The Royal Mile)'이라 불리우는 거리를 만난다.

이 왕의 길은 프라하를 유럽 종교ㆍ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었던 보헤미아 왕과 왕비들이 대관식 때 지났던 길이어

붙여진 이름으로 카를로바(Karlova)거리, 카를교, 모스테카(Mostecka) 그리고 네루다(Neruda)거리를 지나

프라하 성(Prazsky Hrad)까지 이르는 길을 일컬으며 프라하 관광의 백미로 알려져 있는 곳이 되겠다.

 

왕과 왕비 들이 지나던 길을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것이고, 고개를 들자 유명짜한 화약탑이 시야에 들어 온다.

화약탑(火藥塔: Prasna Brana)은 까를교 다리 입구 양편에 있는 탑으로 구시가를 지키기 위한 성문(城門)의 하나이다.

1475년 고딕양식으로 건립된 후 18세기 중반에 전쟁으로 피해를 입었고, 1875년 지금의 모습으로 개축되었다.

높이 65m, 185계단이 있다.

17세기에는 오늘날의 과학자라 할 수 있는 당시 연금술사(鍊金術士)의 연구실 겸 화약창고로 쓰였다고도 한다.

까를교 입구에 다다르자 강 건너편으로 프라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프라하 성이

황홀한 조명을 받으며 한 눈에 조망이 되고 있었다.

저 프라하 성은 내일 주간투어로 진행될 곳인데 오늘 구시지가지에서 미리 탐색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까를교 동영상>

 

 

▼ 얀 네포무크 동상(사진내용 : 야경투어시 촬영한 사진이 훼손되어 다음날 주간투어시 촬영한 사진임)

까를교에 다다르자 커다한 동상이 우선 시선을 끌어 모은다.

이 동상의 주인공은 '네포무크 성 요한으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에 옮겨 본다.

 

얀 네포무크의 성 요한(라틴어: Sanctus Ioannes Nepomucenus, 1345년경 - 1393년 3월 20일)

네포무크의 요한은 보헤미아 왕국의 작은 시장도시 포무크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나중에 인근에 시토회 수도원이 들어서면서 네포무크라는 명칭으로 개명되었다.

 

요한은 1340년~1349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며,

프라하 카렐 대학교에서 공부하다가 나중에 교회법을 공부하기 위해

1383년부터 1387년까지 파도바 대학교에서 유학하였다.

그곳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요한은 보헤미아로 돌아와

1393년에 프라하 대교구장 요한 젠슈타인 대주교의 총대리로 임명되었다.

같은 해 3월 20일, 요한은 로마왕 벤첸슬라우스에 의해 체포되어 고문을 당한 후에

프라하의 카를교에서 거꾸로 떨어져 블타바 강에 내던져져 죽임을 당하였는데

거기에는 하나의 사연이 있다.

 

그 사연인즉슨 1393년 ‘네포무크’는 보헤미안 국왕인 ‘벤첸 슬라우스’에게 잔인한 고문을 받게 된다.

그가 고문을 받게 된 경위는 왕비때문 이었다.

왕비는 왕의 사랑을 받지 못하자 외로운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고,

왕이 전쟁터에 나간 사이 장군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이에 왕비는 자신의 고해신부인 네포무크에게 죄를 고하고 용서를 구했다.

네포무크 역시 고해성사 비밀을 지켜줄 것을 약속했다.

 

그런데 며칠 후 전쟁터에서 돌아온 왕 앞에 한 시녀가 찾아와 왕비의 비밀을 말했고,

이를 알게 된 왕은 크게 분노했다.

하지만 왕비는 ‘그런 일이 없다’고 잡아뗐고 결국 시녀는 처형을 당하고 말았다.

 

이후 왕비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던 왕은 왕비가 네포무크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한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왕은 네포무크에게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추궁했지만 네포무크는 절대 발설하지 않았다.

 

결국 왕에게 끔찍한 고문까지 당한 네포무크!!

하지만 그는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비밀을 밝히지 않았다.

이에 분노한 왕은 사지를 묶게한 후 네포무크를 카를교 아래 강으로 던져버렸다.

며칠 후 발견된 그의 사체는 부폐됨이 전혀 없이 발견 되었고, 

이후 네포무크는 목숨까지 버린 최초의 순교자이자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지켜주는 수호성인으로 추앙 받게 되었으니

네포무크가 처형당한 카를교의 난간에 십자가 표식을 새겨 놓고

1683년에는 카를교의 네포무크의 동상을 세웠다.

 

그런데 그 이후 신기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단다.

이는 동상 앞에서 소원을 빈 사람들이 소원을 이루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네포무크는 떨어지기 직전 ‘내 마지막 소원을 이 다리에 바치노니

이 다리에 선 자는 모두 소원을 이룰 것이다’라고 유언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현재도 카를교에는 네포무크의 등판을 만지면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상 스럽게도 까를 4세 동상이 계속 나의 시야에 들어 오는데

    비록 동상이지만 잘 생긴 얼굴이다. 완전 호남형이다...

 

카를 4세(Karl IV, 1316. 5. 14 ~ 1378. 11. 29)

출생 : 프라하, 국적 : 신성 로마

 

카를 4세는 신성로마 국적으로 프라하에서 태어난 인물로

당대의 가장 교양 있고 외교술에 뛰어난 군주로 알려진 인물이다.

무력 사용보다는 외교로 원하는 바를 얻었으며,

그의 재위 때 프라하는 신성 로마 제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의 업적을 요약하면 프라하를 유럽 최고의 계획도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곳이 바로 바츨라프 광장을 필두로 하는 신시가지로

나 푸르지코페(수로위의 길)’는 신시가지를 조성하면서 매몰된 해자가 있던 곳이다.

그리고 신시가지를 계획한 후 성 비투스 대성당을 축조하고

까를교를 조성하고 1348년에 카롤리눔(프라하 대학)을 설립하였다.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까를교 입구에

그의 동상이 서 있는 것이다.

 

 

볼타바 강 건너편의 프라하 성과 야경을 감상한 후 까를교에 올라 서게 된다.

 

까를교 (Charles Bridge,Karlův most) :

프라하의 유일한 보행자 전용 다리이자

체코에서 가장 처음 만들어진 석조 다리로 프라하 성, 그리고 천문시계와 함께 프라하를 대표하는 관광의 중심이다.

 

까를교는 9세기 초 처음 나무다리로 놓여져 상인들이 프라하 성까지 드나들던 곳이었다. 
그러나 홍수로 인한 여러 차례 유실이 있었고
까를4세 (1316 ~ 1378)의 지시로 다리 밑을 거대한 교각으로 받치고

달걀노른자를 섞어서 돌과 돌 사이를 접착시키는 공법으로  50년 공사 끝에 1407년에 완공되었다.

 

S자로 흐르는 볼타바(도나우 강)위에 전체 길이는 약 520m, 폭은 약 10m이며,

다리 교각 위로는 모두 30개의 조각상이 있는데,

이 30개의 성상들이 좌우 난간에 각각 마주 보게 배치되어 있는바

이 성상들은 17세기 후반부터 250년에 걸쳐

체코출신 조각가들이 성서 속 인물들과 체코 성인들을 재현하여 작품으로 완성한 것이란다.

 

이 까를교 위의 성상들은 원본도 있지만, 복제품도 마치 원본처럼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으며

복제품의 원본은 국립 박물관 등에 보관 중이다.

특히, 만지면 소원이이루어 진다는 '얀 네포묵 신부의 성상'은

수 많은 사람들의 흔적으로 동판이 닳고 닳아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다리 양끝으로는 고딕 양식의 교탑이 각각 서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다리를 건너면 영원히 아름다운 사랑으로 남는다 하여,

이 다리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초상화와 캐리커처를 그리는 화가들,

아기자기한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 발길을 멈추게 하는 거리의 음악가들이 관광객들을 즐겁게 해주는
까를교는 예술과 낭만이 깃들기까지

무려 6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낮에는 거리의 악사와 화가들이 예술을 만들고,
저녁에는 프라하 성의 야경으로 낭만이 가득한 프라하 까를교가 되겠다.

 

예전에는 트램과 버스도 다녔다 하지만 지금은 붕괴의 위험 때문에 도보 통행만 이루어지고 있다.

500미터 다리 위에 조성된 30개의 석상들을 바라 보며 프라하의 밤을 즐긴다.

하나 하나 마다에 각각의 의미를 갖고 있는 석상들을 감상하면서 인증을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최팀장의 리딩으로 다시 화약탑으로 되돌아 가며 까를교와 헤어지게 된다.

아쉬운 감이 있지만 내일 다시 오게 될 것이니 참아 내기로 하고

얀 네포무크 동상 인증하는라 잊고 있었던 화약 탑 전경을 제대로 잡아 보았다.

이제 볼타바 강변에 조성된 프라하 음악학교 앞을 지나면서 야경투어를 마무리 하게 된다.

 

유대인 지구를 한번 더 만나게 되고, 볼타바 강 전경을 바라 보며 강변길을 걷게 된다.

음 ~  지금 이 길은 우리네 강변 북로인가??

많은 유람선과 레스토랑들이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 모습들을 자연스레 관찰하며 이번에는 반대 방향에서 체흐푸 교(Čechův most)교를 건너

전용버스와 만나게 된다.

체흐프교에서 프라하 성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만나고 호텔로 이동을 한다.

오늘 신세질 호텔 듀오까지는 비교적 짧은 거리에 있었음에도 호텔에 도착한 시간이 1030분다.

슬로베니아 마리보르 호텔에서 비엔나로 3시간 30분 이동,

비엔나에서 이곳 프라하까지 6시간에 가까운 이동을 하였다.

그 중에 비엔나와 이곳 프라하 야간투어까지 하였으니 육신의 고단함을 이야기해서 무엇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