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일(5월 2일 일정) - 여강 ˜ 성도 ~ 인천공항
05시 48분 기상
06시 45분 조식(호텔식)
07시 15분 호텔출발
08시 16분 여강공항 도착
10시 52분 성도공항 도착
11시 40분 중식(현지식)
12시 32분 무후사 및 금리 거리 관광
15시 00분 문수원 및 문수방 관광
16시 32분 성도 중심가(번화가) 관광
17시 38분 석식(한식)
19시 52분 천극(변검) 관람
21시 20분 공항으로 이동
22시 02분 성도공항 도착(이상 중국 현지시간)
04시 19분 인천공항 도착(한국시간)
04시 56분 워커힐행 리무진 버스 탑승 (공항의 리무진 버스는 05시부터 운행)
06시 10분 광장동 경유하여 귀가
채운남현(彩雲南現) : 오색 구름이 머물러 있는 곳이라는 의미의 채운남현 네글자에서 유래한 지명 운남(雲南)성.
전체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2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 되어 있으니 산 하나를 넘으면 다른 종족, 다음 산을 또 하나 넘으면 전혀 다른 복색과 습관을 가진 또 다른 종족을 만날 수 있는 땅!!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의 남만(南蠻) 토벌에 얽힌 맹획의 칠종칠금(七從七襟) 고사가 유래한 이 땅!!
사람 머리를 잘라 제사를 지내야 건널 수 있다는 강 앞에서 밀가루로 사람 머리 형상의 만두를 빚어 제사를 지낸 뒤에야 공명 역시 강을 건널 수 있었다는 땅!!
그 후 만두가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전설의 땅은 위도 상으로 적도에 가깝지만 좁고 깊은 협곡들에 고도가 높아 4 계절이 공존하고 험한 지세 때문에 현재도 정확한 인구 조사 역시 불가능하다고 하는 땅!!
그 땅에서 한 이방인은 4박 5일간의 짧은 시간을 보내고 이 아침에 떠나려고 한다.
설악처럼 웅장했던 옥룡설산, 지리처럼 다정 다감하게 포근히 감싸주던 하바설산!!
그 옥룡과 하바 틈바구니에서 포효하듯 흐르던 금사강, 그리고 그 금사강을 보듬고 있는 호도협!!
이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 06시 : 해뜨기 전 여강의 모습.(객실에서....)
▼ 호텔식으로 아침 해결.
▼ 드디어 여강을 떠난다....
▼ 8시경 여강공항에...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
성도(成都)는 사천성의 성도(省都)이며, 중국 삼국시대 촉한을 통일한 유비가 수도로 삼았던 성도(成都)는 중국에서도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가 많은 지역으로 서남지방을 대표하는 풍요로운 도시이로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볼거리가 많은 지역중 하나이며 네 강(양자강, 민장강, 퉈장강, 자링강)이 흐르고 있어 사천성(四川省)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또한 이곳은 중국의 역사 삼국지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유비가 촉나라의 도읍으로 정했던 곳이기도 하며 평원과 구릉, 산지, 고원이 어우러져 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데 빼 놓을 수 없는 물과 함께 전국시대 때부터 있어온 이천년 문화 유적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한편, 유네스코지정의 세계문화유산인 구채구, 황룡, 낙산, 아미산, 티벳자치구 관광지등과 인접하여 내국인은 물론 전세계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중
국최대의 관광도시라 할 수 있으며 연평균 기온은 약16도(1월평균-6도,7 월평균-26도)이며, 연강 우량은 약967mm이며 기상상태는 항상 구름이 끼어 있어 가끔
해가 뜨는 날이면 적응을 못하는 개들이 짓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나 나의 친구 보현이의 말을 빌자면 수 년전 사천지진 사태 이후 맑은 날이 많아 지는 기후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 중이라 하며 중국에는 인구가 많아 미인과 추녀도 낳은데 특히 성도에는 미인이 많아 부자들의 첩살이를 많이 하기도 한단다.
▼ 10: 52분 성도공항으로 귀환...
▼ 무후사 인근의 점심식사 장소
▼ 여행의 끝이 다가 왔음을 알리려는 듯 이 이스리도 마지막 남은 것이다.
▼ 식당 종업원의 만두 빚는 모습.
만두란 것이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전래 되었으니 원조만두인가??
▼ 식사후 무후사로 이동.
청두 무후사 (成都 武侯祠)
- 한소열묘(汉昭烈庙)라고도 부르는 무후사는 유비와 제갈량의 제사를 모신 사당으로 1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무후사의 무후는 제갈공명이 죽은 후 시호인 충무호에서 따온 것으로 6세기 초 당시에 유비를 모신 소열묘와 나란히 세워졌다고 한다. 그 후 14세기 말에 무후사는 소열묘와 병합되어 현재의 정식 명칭은 한소열묘이지만 주군인 유비를 능가하는 제갈량의 재덕을 기려서 지금까지도 이곳을 무후사라고 부른다. 국보 무후사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것이 삼절(문장, 서법, 석각기술)로 이름이 높은 당비, 촉한시대에 유비를 받들던 문, 무관 28인의 소상, 제갈량이 남쪽을 정벌할 때 낮에는 밥을 짓고 밤에는 두드려 경보를 보냈다는 제갈고, 유비의 묘인 혜능 등을 들 수 있다.
- 북쪽에 위치한 본당을 중심으로 남쪽을 향해 하나의 축을 이루는 구조이다. 본당 아래에 따먼[大門,대문], 얼먼[二門, 이문], 유비전(刘备殿), 꾸어팅[过厅,과청], 제갈량전오중(诸葛亮殿五重)이 있다. 서쪽에는 유비의 묘(刘备陵园)가 있으며 얼먼에서 유비전과 동서전(东西殿), 꾸어팅에서 제갈량전(诸葛亮殿)의 동서방향으로 각각 두 개의 곁방이 붙어있는 구조로 형성되어 있다.
- 사당 내부에는 촉한(蜀汉 : 삼국의 하나로 유비가 세움)의 역사적 인물들을 상징하는 토우가 41점에 달한다. 토우들은 청대(清代)의 조각가들이 만들었으며 촉한(蜀汉)의 군신서열에 의하여 배치되어 있다. 이 밖에 탕뻬이[唐碑, 당비]는 사당 내의 중요한 문화재 중 하나이다. 이 비석에는 제갈량의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이 적혀있으며, 명대(明代)에 이르러 '삼절비(三绝碑)'라고 불렸다.
▼ 12 : 31분 무후사에 도착
카메라 밧데리 문제로 무후사 내부와 금리거리 사진을 찍지 못하였다.
문수원 (文殊院)
- 사천성 대부분 절이 문화혁명 때 파괴된 탓에 문수원은 현재 성도에 남아 있는 유일한 절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은 성도시 서북쪽에 위치한 저명한 불교사원이다.
- 이곳의 전신은 당대의 묘원탑원(妙圓塔院)으로 송나라때 신상사(信相寺)로 불리웠던 곳이다. 명대에 전쟁의 여파로 소실되었으나, 전설에 따르면 이곳에서 청나라 때 어떤 사람이 밤에 붉은 빛을 보고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니 붉은 기운 속에서 문수보살을 보았다고 하여 청대 강희 삼십육년에 문수원으로 다시 개명 재건하였다.
- 문수원의 건축면적은 11,600㎡로, 절입구를 통과하면 천왕전(天王殿), 삼대사전(三大士殿), 대웅전(大雄殿), 설법당(說法堂), 장경누장, 엄숙목(藏經樓庄嚴肅穆)등 전형적인 청대 건축양식을 볼 수가 있다. 특히 삼대사전 안에는 관세음 문수 보현보살등의 불상이 있으며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의 본존불이 안치되어 있고 양옆 벽에는 16존자의 상이 있다.
그중, 관음대사상(觀音大士像)은 청동으로 만든 것으로 정교함이 돋보이며, 청도 9년에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또한 광희제가 말한 공림의 8가지 볼거리 중 하나로 여겨지는 옥불은 1922년경에 만들어진 것이다. 또 이밖에 문수원에는 300여개의 많은 귀중한 문화재와 경전이 있는데, 그 중 승려당증의 두개골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1942년 남경에서 3조각이 발견되어 현재 한조각은 남경에 있고 다른 한조각은 서안에 있으며 마지막 한조각은 당증이 출가하게 된 곳이 성도이기에 성도 문수원에서 소장하게 되었다.
- 들어가는 곳부터 한 100m가량 흑단으로 만든 것 같은 기와집 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온통 까만색으로 칠한 그 까만 색상이 아주 고급스럽다는 느낌을 준다. 발길에 부딪치며 가슴으로 전해오는 길바닥에 깔아 넣은 보도를 밟는 감촉은..., 돌을 재료로 사용하여 정교하게 그리고 정성껏 마무리를 하는 중국의 돌문화와 동시에 중국 노동자의 땀 냄새를 느낀다.
▼ 15 : 01분 문수원 관광시작
▼ 천불탑 : 불교에서는 과거를 장엄겁(莊嚴劫), 현재를 현겁(賢劫). 미래를 성수겁(星宿劫)이라 하고 이 삼겁(三劫)에 각각 나타나는 1000의 부처를 천불이라 한다. 단순히 천불이라 할 때는 현겁의 천불, 즉 구류손불, 구나함모니불, 가섭불, 석가모니불, 미륵불에서 천 번째 누지불 까지를 말한다고 사전은 전한다.
이러한 천불 중에서 대부분은 현세를 표현하는 천불탑이리라. 이 세상 온갖 것은 그 받는 것을 엄밀히 따지고 보면 고통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며, 고통의 원인은 모두가 번뇌이고, 번뇌가 모여서 고통이 일어나는 것이고, 번뇌에는 탐. 진. 치. 만. 의 등 8만4천 번뇌가 있다고 한다.
번뇌를 깨달아 고통이 없어지고, 평온 안온한 경지에 들어가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의 또 다른 욕망일진데..., 이것을 불교에서는 열반이라 한다. 번뇌를 멸하려면,
1. 모든 것을 바로 보고(正見)
2. 바로 생각하고(正思)
3. 바로 말하고(正語)
4. 바로 행동하고(正業)
5. 바르게 살고(正命)
6. 바르게 노력하고(正進)
7. 바른 정신으로(正念)
8. 바르게 몸과 마음을 안정하라(正定)란 것이다.
▼ 문수방(文殊坊) : 문수원 입구에 위치하였는데 당나라 시대의 거리를 재현해 놓은 곳으로 이곳도 대지진후 새로 지은 건물들이 대부분인데 옛 모습을 고증을 하여 잘 살려 당나라 시대의 거리를 걷는 느낌이 들게 조성해 놓은 곳으로 무후사 옆 금리와 비슷한 곳으로 보이는데 어찌보면 우리의 인사동 골목길처럼 이리저리 돌고 돌아 가는 골목, 골목마다에는 상점들이 늘어 서 있었지만 우리의 시선을 끌만한 상품은 눈에 띄지 않았다.
▼ 15 : 19분 문수방 거리 관광시작
▼ 16 : 32분 성도의 번화가로 이동....
▼ 17 : 38분 한식집에서의 삼겹살 파티!!
▼ 길거리의 잡상인에게서 산 오디를 먹은 후유증!!
저녘 식사후 천극관람 장소로 걸어서 이동...
▼ 변검(變臉)
변검은 사천극(四川劇)의 특수한 예술 표현 기교 중의 하나로 그것을 한번 보면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극중 인물의 내적 심리를 표현하는 일종의 낭만주의 수법이며 눈앞에서 순간적으로 얼굴 모양을 바꾸는 거의 마술과 같은 연기 기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명한 영화 ≪변검≫을 통해서 그 진수가 소개되어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변검의 기법은 "말검(抹臉)", "취검(吹臉)", "차검(扯臉)", "운기변검(運氣變臉)"이 있다.
1.말검은 얼굴의 특정 부위에 분장용 분을 묻혀놓았다가 필요할 때 손을 얼굴로 가져가 그것을 문지르면 다른 색깔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얼굴 전체를 바꾸려면 분장용 분을 이마나 눈썹에 묻혀두고 얼굴의 하반부만 바꾸려면 분장용 분을 뺨이나 코에 묻혀둔다. 그리고 어떤 한 부분만 바꾸려면 분장용 분을 바꾸고자 하는 부위에 묻혀두면 된다. “백사전(白蛇傳)” 중의 허선(許仙), “방배(放裴)” 중의 배우(裴禹), “비운검(飛雲劍)” 중의 진륜노귀(陳侖老鬼) 등이 모두 이러한 "말검"을 사용한다.
2. 취검은 금분(金粉), 은분(銀粉), 묵분(墨粉) 등과 같은 분말식 화장품에 적합하다. 무대 바닥 위에 아주 작은 상자를 준비해 둔 다음 그 안에 분말을 넣어둔다. 배우가 바닥에 엎드리는 춤 동작을 취하면서 얼굴을 상자에 대고 휙 불면 분말이 얼굴에 묻어 즉시에 다른 색깔의 얼굴로 바뀌게 된다. “활착자도(活捉子都)” 중의 자도(子都), “치중산(治中山)” 중의 악양자(樂羊子) 등이 모두 이러한 "취검"을 사용한다. “활착자도” 중의 취검은 분말을 술잔 속에 넣어놓고 사용한다.
3. 차검은 비교적 복잡한 변검 방법이다. 사전에 미리 가면을 비단에 한 장 한 장 그린 다음 그것을 잘 잘라서 각각의 가면마다 실을 연결하여 그것을 얼굴에 한 장씩 붙인다. 그리고 그 실을 손이 가기 쉬우면서도 사람들이 잘 알아볼 수 없는 곳(의복의 어느 한 곳, 예를 들면 허리띠 등)에 연결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춤동작 등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돌린 다음 그것을 한 장씩 떼어낸다. 이때 가면을 붙이는 접합제를 너무 많이 사용하여 한 번에 가면이 다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고 기술적으로 거짓 동작을 잘 연기하여 관중들의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데 유의해야 한다. “과백사전” 중의 발동(鉢童)은 녹색, 홍색, 백색, 흑색 등 7~8종의 가면을 사용한다. “구정루(舊正樓)” 중의 적(賊), “망낭탄(望娘灘)” 중의 섭룡(聶龍) 등도 이러한 "차검"을 사용한다.
4.운기변검은 이미 고인이 된 사천극의 명배우 팽사홍(彭泗洪)이 “공성계(空城計)”의 제갈량(諸葛亮)을 연기할 때 기공을 운용하여 얼굴을 홍색에서 백색으로, 다시 백색에서 청색으로 바꾸는 데 사용한 기법이다.
▼ 19 : 50분 변검관람 극장에 도착.
2010년 김 용식 사장님과 구채구 여행시 한 본 보았던 경험으로 인하여 무척이나 지루 했다.
▼ 21 : 20분 관람 을 마치고...
▼ 22 : 02분 성도공항에 도착하자 홍경채, 깨등을 파는 상인에게서 농산물 구입...
▼ 중국공항의 직원들 짐 다루는 솜씨가 거칠기에 베낭을 잘 꾸며야 한다.
▼ 드디어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는데 출국장의 시계가 04시 19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 이제 18명의 트레커들은 5박 7일간의 일정을 뒤로하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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